지난 9월 17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두 회사 8K TV 성능을 비교하는 행사를 가졌다. 두 회사는 상대방 TV의 약점을 공격하면서 격하게 치고받았다. 그런데 둘 사이의 다툼을 지켜보면서 눈살을 찌푸리거나 짜증을 내는 국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왜 그럴까?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면서 TV를 위시한 가전제품 품질 경쟁에서 치열한 우열 경쟁을 벌여 왔다. 한 곳에서의 품질 혁신은 곧바로 다른 회사에 자극제로 작용해 추월의지를 불태우도록 만들었다. 그러한 과정을 반복하면서 삼성전자와 LG전자는 TV 부문 세계 1, 2위를 차지할 수 있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사이의 누가 누가 잘하나 경쟁은 둘 모두에게 강력한 성장 촉진제로 작용했다. 이를 잘 아는 국민들이기에 심하다 싶을 정도로 격하게 다투어도 좋은 의미로 해석해준다. 그런데 정반대 모습을 보여주는 곳이 있다. 누가 누가 못하나 경쟁을 하면서 갈수록 더 무능해지는 집단이 있다. 바로 정치권이다. 조국 사태를 둘러싼 여야 대표 정당의 대응을 보면 이 점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조국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보수 세력의 격렬한 공격을 조국이야말로 사법개혁의 최적임자임을 입증하는 징표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이는 순진한 생각에 불과할 뿐이다. 자유한국당을 위시한 보수 세력 눈에 비친 조국은 자신들을 집어삼킬 맹수가 아닌 배를 불려줄 먹잇감이었다.

박근혜가 정치 무대 전면에 등장했던 2004년 이후 보수 정치 세력이 전적으로 의존해 온 것은 좌우 진영 대결이었다. 이 구도에서는 좌파에 대한 혐오감만 부추기면 다수를 차지했던 보수 세력이 우파 정체성으로 쉽게 뭉칠 수 있었다. 보수 정치 세력은 좌우 대결 구도에 철저하게 길들여졌다. 절대 다수 국민들의 지지와 동참 아래 이루어진 촛불혁명은 좌우 대결 구도를 일시 해체시켰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좌우 구도를 복원하기 위해 끈덕진 노력을 기울였고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던 차에 조국이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보수 정치 세력은 동물적 본능을 발휘했다. 조국은 자타가 인정하는 강남 좌파의 대표적 인물이었다. 조국의 약점을 드러내기만 하면 좌파 일반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길 수 있었다. 보수 세력이 총력전의 양상을 띠면서 조국을 공격한 진짜 이유였다. 숱한 의혹이 제기되면서 조국은 궁지에 몰렸다. 조국 임명 찬성 여론은 언제나 소수에 머물렀다.

이 과정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극도의 무능을 드러냈다. 더불어민주당은 보수 정치 세력이 던진 조국 사퇴냐 아니냐라는 프레임전쟁 속으로 맥없이 빨려 들어갔다. 조국 사퇴를 둘러싼 시비는 그 진위 여부를 떠나 조국 진영에게 무조건 불리한 프레임이었다. 중간적 위치에 있는 사람 입장에서 볼 때 사퇴 시비가 일어난 것 자체만으로도 후보 자격에 문제 있다고 여기기 쉽게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조국 임명이 불러올 사태를 사전에 충분히 예견하고 준비했다면 나름 고품격 고차원 정치력을 선보일 수 있었다. 조국을 위시한 386 세대가 기득권에 집착해 왔음을 집단적으로 고백하고 자성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서 진보 진영 지지를 결집함과 동시에 보수 정치 세력을 자성 없는 기득권 세력으로 압박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좌우 대결 구도에 날개를 달 기회를 얻은 자유한국당의 성적표는 어떠했는가? 상당한 유권자들이 여당 지지를 철회하고 돌아섰지만 자유한국당을 선택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일부 조사에 따르면 자유한국당 지지율은 도리어 하락했다. 지지자들의 성토대로 자유한국당의 실력이 너무 형편없었던 것이다.

실력 없는 자유한국당 모습을 보고 더불어민주당은 안도의 한 숨을 내쉴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상대의 무능에 위안을 받으면서 자신들의 무능을 극복할 치열한 성찰과 탐색을 게을리 할 가능성이 큰 것이다. 그렇게 정치권은 누가 누가 못하나 경쟁을 통해 서로의 무능을 키워가고 있다. 정치적 무관심과 냉소주의가 확산되면서 자칫 극단주의가 판을 치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 글은 <내일신문>에 함게 게재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