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서클(Circle), 공동체와 관계로 메우는 복지의 빈자리

By | 2019-01-17T09:29:42+00:00 2019.01.16.|Tags: , |

2018년 5월 <오마이뉴스>에 쓴 기사 ‘[사회혁신 길찾기③] ‘노인들을 위한’ 에어비앤비, 늙는 건 슬프지 않다’(http://omn.kr/r6iz)에 A4 2쪽 분량으로 소개한 영국의 공동체 돌봄(복지) 체계인 서클(Circle)을 6쪽 분량으로 보완한 글이다.

무엇보다 서클을 창안했던 힐러리 카텀(Hilary Cottam)으로부터 지역 서클 가운데 한 곳이 아직 건재하다는 소식을 들었고, 그녀가 2018년 6월 『Radical Help – How We Can Remake the Relationships Between Us and Revolutionise the Welfare State』라는 책을 출간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지역 서클 HMR circle과 책에 담긴 평가를 이번 글에 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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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인류가 늙어가는 것을 걱정한다. 과학과 의학의 발달로 더 오래 살게 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나 늘어난 수명을 떠받칠 만큼 인구가 늘지 않아 걱정이다. 언제부턴가 ‘소멸’이란 무시무시한 말들이 떠돌고, 앞으로 얼마나 늘어날지 모를 ‘비용’ 때문에 정부도 젊은 세대도 불안하기만 하다.

2년 만에 다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어수선해진 영국도 마찬가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멋진 말로 ‘복지 국가’의 문을 열었던 이 나라도 더 이상 무덤까지의 삶을 책임지지 못한다. 영국의 60살 이상 노인 3명 가운데 1명은 일주일 동안 단 한 번도 다른 누군가를 만나 말을 하지 않는다. 보다 못한 영국 정부는 2018년 1월 ‘외로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임명했다.

2017년 6월에는 런던의 공공임대주택인 그렌펠타워에 불이 나 70여 명이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안타까운 일도 벌어졌다. 새벽 1시 무렵 2층에서 불길이 시작됐지만 건물이 오래된 탓에 화재경보기조차 제때 울리지 않았다. 입주자들은 오래 전부터 화재 위험성과 소방차량 진입의 어려움 등을 호소해왔지만 묵살 당했다.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이른바 ‘베버리지 보고서’로 복지 국가의 청사진을 그렸던 베버리지(W. Beveridge)도 미처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바야흐로 국가가 모든 것을 해주던 시대는 저물어 가고 있다.

서클, 복지 국가를 뛰어넘는 복지 공동체

2007년 영국의 민간 단체 ‘파티서플(Participle)’이 시작한 ‘서클(Circle)’은 대담한 사회 혁신 프로젝트다. 이들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혁신적 노인 돌봄 체계를 꿈꿨다.

‘노인이 스스로 더 나은 삶을 정의하고 만들어갈 수 있도록 지역 사회가 공공과 개인, 자원봉사자와 공동체의 자원을 어떻게 모을 수 있을까.’

이들은 영국 남부의 서더크(Southwark) 지방정부, 노동연금부(the Departmanet for Work&Pensions) 그리고 스카이 미디어(Sky media)와 함께 ‘지역에 뿌리 내린 복지 공동체’를 만들어냈다. 노인을 복지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며 사회에서 배제시키던 시각에서 벗어나 그들 스스로 삶의 방향을 정하고 길을 찾도록 공동체의 자원을 끌어 모으기로 한 것이다.

먼저 약 250개에 달하는 노인과 그 가족 그룹을 만나 그들이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걱정하는지, 또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살펴 몇 가지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됐다.

첫째, 그들은 살던 곳에 머물며 독립적으로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누군가가 ‘일상에서 부딪히는(Practical)’ 일들을 도와주길 바랐다. 전구를 갈아주거나 은행에 같이 가주는 일들처럼 대개는 별다른 기술이나 힘이 들지 않는 것들이었다.

둘째, ‘마음이 맞는 좋은 친구’를 원했다. 어느 순간 홀로 남겨지게 되면 다시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외로움은 그들도 견디기 힘들었다.

셋째, ‘목적이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했다. 오랜 경험과 기술, 지식으로 공동체에 기여하면서, 죽는 순간까지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길 그들은 바랐다.

‘고령화’나 ‘노인’ 같은 말들이 서비스에 따라붙는 것을 꺼려했다. 무엇을 제공하느냐 만큼이나 어떻게 제공하느냐도 그들에겐 중요했다.

파티서플을 설립하고 서클을 창안한 힐러리 카텀(Hilary Cottam)은 2018년에 출간한 책 『Radical Help(근본적 도움)』에서 서클을 “사회적 클럽이자, 돌봄 서비스이고, 협동조합주의적 자조(self-help) 그룹”이라고 규정했다. 서클이 무엇을 하려고 하며, 서클을 떠받치는 힘이 무엇인지를 잘 드러내는 말이다.

서클은 돌봄이 필요한 이들에게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전통적 돌봄 서비스와는 달리 이웃끼리 사회적 관계를 맺도록 하고, 그렇게 맺은 촘촘한 관계망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돌보도록 한다. 그러니까 서클이라는 관계망 안에서는 돌봐주는 이와 돌봄 받는 이를 나누지 않는다.

힐러리는 서클은 ‘풍부함(abundance)의 모델’이라며 “당신이 무엇을 가졌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서 출발한다”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 나이가 많든 적든, 성별이 무엇이든, 또 몸이 불편하든 그렇지 않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서클은 회원이 늘고 관계망이 넓어질수록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그만큼 쓸 수 있는 시간과 재능 그리고 재원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관료들에겐 복지의 대상이 늘어 그만큼 비용이 늘어나는 일로 비치겠지만 서클에겐 오히려 잠재력이 늘어나는 일인 셈이다.

이들은 ‘관계 복지(Relational Welfare)’라는 새로운 개념도 내놓았다. 관계를 중요하게 여기며, 그러한 관계를 기반으로 ‘제대로’ 반응하고 돌아가는 복지 체계를 일컫는다. “외로움이 수명을 단축시킨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체계이자 “나이가 들어 폭력과 좌절, 분노 등의 모든 문제에 직면했을 때 때 당신 곁에 있어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체계라고도 설명한다.

출발부터 달랐던 서클수혜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이들은 서클이라는 새로운 복지 체계를 만들어내기까지 다음과 같은 과정을 밟았다.

▘협력체계 : 사용자와 일선의 스텝, 다른 이해관계자들 그리고 민간과 공공, 제3영역의 기관들과의 파트너쉽을 구축함

▘사용자 주도성 : 디자인 과정에서 미래의 사용자와 현장 활동가들이 다른 전문가들보다 더 주도적 힘을 가질 수 있도록 함

▘끝없는 반복 : 아이디어는 프로토타입으로 빠르게 실험에 옮겨짐. 빠른 순환으로 여러 아이디어들이 계속 실험으로 옮겨지고 더 나은 모델로 발전해나감

▘결과에의 집중 : 사용자 주도 디자인 기술(user-centred design techniques)로 사용자가 원하고 사용하게 될 서비스를 디자인할 수 있었음. 아이디어가 테스트를 거치면 실행과 서비스 출시에 초점을 두게 됨

그렇게 세상에 없던 새로운 복지 모델이 탄생했다. 처음엔 전화기 몇 대를 놓고, 약간의 원예 장비와 DIY 공구를 마련한 게 전부였다. 그리고는 사람들에게 서클 회원이 되어달라고 요청하기 시작했다.

0800으로 시작하는 무료 번호로 전화를 걸어 가입하겠단 뜻을 밝히고 1년에 30~75파운드(4만5000~11만5000원)만 내면 누구나 서클의 회원이 될 수 있다. 그러면 서클 스텝들이 회원들의 일상적 요청에 응답하거나 회원들끼리 연결시켜줌으로써 서로가 서로에게 손을 내밀고 그 손을 잡아주도록 한다. 정원을 멋스럽게 꾸미거나 전기 설비를 손봐야 한다면 전문 기술을 갖춘 유료 도우미(Helper)를 불러야 한다. 다른 회원을 도우면 이 비용이 상쇄되기도 하고, 핸드폰이나 책을 살 때 할인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

회원의 절반은 50~60대다. ‘젊은 노인(younger old)’을 끌어들이려 꾸준히 애쓰고 있고, 이들이 더 나이가 많은 이웃들을 돌보면서 공동체를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다. 이웃들도 도우미로 힘을 보탠다. 도움이 필요한 일들이 대개 ‘평범한’ 일들이고, 여건이 허락하는 만큼 하루에 1~2시간이라도 참여하면 되기 때문이다. 회원과 회원, 회원과 도우미를 잇고 서비스 시간과 비용을 계산하는 건 서클 스텝들과 시스템(기술)의 몫이다.

“나는 집에만 갇혀 비참하고 외롭게 지냈다. ‘서클’은 내가 필요할 때, 계속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나를 밖으로 이끌어주었다.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들이고, 그들은 못하는 일이 없다.”

누구 못지않게 활달했던 80대 초반의 안토니아(Antonia)는 무릎을 다친 뒤로 외톨이가 되었다. 그런 그녀를 서클은 집 밖으로 나오도록 이끌었다. 이웃과 점심을 함께 먹거나, 극장에 가는 이벤트를 만들어 그녀를 초대했다. ‘소셜 캘린더(Social Calendar)’라 부르는 프로그램들이다. 아침마다 만나 커피를 마시는 모임에서부터 스쿠버다이빙 모임까지 참여자들이 바라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첫 이벤트에 참여한 뒤 그녀는 자신에게 맞는 사람들을 만났고, “내가 빠져들게 만드는, 나에게 꼭 맞는 사람들”이라며 반겼다.

무릎 수술을 받은 뒤엔 서클의 스탭들이 꾸준히 안부를 물었고 회원들도 그가 몸을 추스르는 사이 온라인으로 먹을 걸 주문할 수 있게 컴퓨터를 고쳐주는 등 소소한 도움을 주었다. 서클이 이어준 ‘작은 도움’이 누군가의 삶을 크게 바꾼 것이다.

2012년 9월에는 지역 서클들을 묶어 ‘런던 서클(London Circle)’을 꾸렸다. 마케팅, 콘텐츠 기획 등을 맡아 효율성을 높이고자 한 것이다. 이듬해엔 헤이버링(Havering)을 비롯해 4개의 지역 서클이 더 만들어졌다.

서클이 가져온 변화는 적지 않았다. 2009년 서클이 공식적으로 문을 연 뒤 서더크 지역에서만 1만4600시간의 사회적 활동이 이루어졌고, 17만5000명이 참여했다. 회원의 88%가 새로운 친구(평균 6명)를 사귀었고, 불필요한 공공 서비스 이용도 줄었다. 회원의 26%가 의사를 덜 찾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모두가 다른 누군가의 해법(solution)이 될 수 있다고 믿으며, 매일 매주 그리고 매달 서로가 일상에서 부딪히는 잡다한 일들을 도우면서 그것을 확인하고 있다.”(서클 소개 문구)

성장과 함께 찾아온 위기성패를 가른 세 가지 요인

그러나 2014년 공공의 자금 지원이 끊기면서 몇몇 서클이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그 즈음 힐러리는 “모든 서클이 그런 건 아니지만 일부 서클은 모임을 키워나가는 데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는 능력 그리고 서클 모델을 좀 더 큰 맥락의 공공 서비스 생태계의 일부로 자리매김할 비전을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5년, 처음 문을 연 지 6년 만에 많은 서클들이 파티서플과 함께 문을 닫고 말았다.

‘영국 복권 기금(Big Lottery Fund)’이 서클의 성장을 지원하겠다며 손을 내밀었지만, 8개월간의 긴 검토 끝에 수포로 돌아간 일도 있었다. 꾸준히 성장하며 놀랄 만한 성과를 내고 있음에도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일은 6년을 이어온 서클에게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서클들이 문을 닫은 이유는 무엇일까. 힐러리는 책에서 서클의 성패를 가른 세 가지 요인을 꼽았다. 공유된 비전, 지역 리더쉽(권력) 그리고 핵심 가치에 대한 합의 등이다.

서클이 유지되려면 지역 사회가 서클의 비전에 공감해야 한다. 더 많은 이들과 비전을 공유하고 참여를 이끌어내는 데는 서클 스텝들의 역할도 중요하고 지방정부의 의지도 한 몫 한다. 가령, 노팅엄 서클엔 다른 지역보다 많은 세 명의 전임자와 네 명의 파트타임 스텝이 일을 했는데, 그 덕에 가장 큰 규모의 자원봉사자들을 유지할 수 있었다.

힐러리는 서클은 “지역 공동체가 소유하고 조직해야 하며, 지역 지도자들이 뒷받침해야 한다”는 말로 지역 공동체와 지방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서클과 같은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관계 복지 체계가 뿌리를 내리려면 위와 아래의 역할이 모두 필요하다는 뜻이다.

핵심 가치를 합의하는 일도 만만치 않다. 사회적 관계가 현실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도, 또 모두가 다른 누군가에겐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 것도 생각만큼 간단치 않다.

서더크 서클처럼 대부분의 서클들은 지방정부가 댄 보조금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이러한 초기 투자는 첫 3년 정도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규모였는데, 팀을 꾸리고 참여자를 모집하고 플랫폼을 구축하는 데 쓰였다. 그 뒤엔 회원들의 회비와 행정이 민간에 서비스 대가로 지불하는 비용으로 충당했다.

서클이 초기에 지방정부에 요구한 비용은 약 75만 파운드(약 10억 7000만 원) 정도였다(지역 서클이 늘어날수록 점점 줄어들었다). 처음 서더크 서클이 지방정부와 노동연금부 등으로부터 받은 지원금은 100만 파운드(약 14억 2000만 원)였다. 영국의 진보 싱크탱크인 IPPR(Institute for Public Policy Research)이 그즈음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복지 국가의 탄생지인 영국에서조차 대부분의 노인 돌봄은 국가가 아닌 가족이 제공하고 있었으며,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이 해마다 550억 파운드(약 78조 2800억 원)에 달했다. 이러한 어마어마한 비용에 견주면 정부가 감당 못할 규모는 아니었던 셈이다.

지방정부들은 서클의 잠재력을 눈여겨보았고, 서클에 투자함으로써 앞으로 들어가게 될 더 많은 복지 비용을 아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여기엔 실제로 투입될 정부의 복지 예산 말고도 치료비나 (재)입원비 등이 포함되었다. 국민보건서비스(NHS)의 부담도 덜 수 있을 것이라 내다본 것이다.

서클은 비즈니스 모델 측면에서도 혁신적이었다. 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면서도 복지를 바라보는 틀을 재정(비용)에서 자원으로 바꾼 것이다. 다시 말해, 공공과 민간, 공동체와 개인이 가진 자원을 하나로 묶어 새로운 해법을 찾기 시작했다. 또 서클은 혼합 경제의 실현가능성을 입증해보였다. 어떤 서비스에 대해서는 비용을 지불하도록 하고, 다른 경우엔 시간을 교환하도록 하고, 또 필요하면 공공 서비스와 연결시킴으로써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구성원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모든 서클은 사회적 기업을 표방하는 CIC(공동체이익회사, Community Interest Corporation) 형태로 출발했다. 서클의 미션과 가치에 동의하는 파트너를 확보하려는 의도와 더불어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확신을 주고자 독립성을 확보하려는 의도였다. 서클이 탄생한 때는 사회적 투자와 금융에 대한 관심과 전망이 막 불붙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는데, 서클은 이러한 분위기에서 규모를 키울 수 있었다.

서클은 소셜 액션 펀드(the Social Aciton Fund)로부터 지원을 받아 런던 전체로의 확장을 꾀했다. 런던 서클을 꾸려 효율성을 높이는 등의 비용 절감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단기 비용이 늘어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점점 더 규모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지만 성장은 생각만큼 빠르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 순간 회원들이 관계를 더 이상 진실하게 느끼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다. 투자자들의 요구를 맞추려다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던 것이다. 결국 런던서클은 붕괴했다. 런던 서클이 무너지자 서더크 서클도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첫 번째로 문을 열었던 서클이 문을 닫은 것이다. 힐러리에겐 뼈 아픈 일이었다.

“성장은 더 많은 혁신과 성찰 그리고 협력을 요구한다. 무엇이 작동하고 무엇이 하지 않는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꾸준히 공유해야 한다.”

살아남은 서클진정한 돌봄 문화가 뿌리 내리려면

살아남은 서클도 있다. 헤이우드-미들턴-로치데일 서클(Heywood, Middleton & Rochidale Circle, HMR Circle)은 2012년 문을 연 뒤로 지금까지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고, 노팅엄 서클은 ‘클릭노팅엄(ClickNottingham)’으로 이름을 바꿔 지방정부가 서비스를 이어가고 있다.

HMR 서클은 다른 서클들과 달리 초기에 지방정부가 아닌 로치데일 주택협동조합(RBH, Rochdale Boroughwide Hosing)으로부터 지원을 받았다(이 협동조합은 영국에서 세입자와 피고용인들이 모여 만든 첫 주택협동조합이다). HMR 서클이 살아남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는 뜻은 아니다.

서클이 사라진 지역이라고 관계마저 사라진 건 아니다. 몇몇이 나서서 다시 모임을 꾸리고 힘닿는 만큼 ‘소셜 캘린더’를 이어가려 애쓰고 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하다.

HMR 서클에는 현재 800명이 넘는 노인이 참여하고 있다. 평균 아니는 71.7살이다. 달마다 30~40개의 소셜 캘린더 행사가 진행되며 500~800명이 참여하고 있다. 2012년 11월에 첫 행사를 연 뒤 6년 만인 2018년 11월에 3만 번째 행사가 열렸다.

자원봉사 운전자 계획(Volunteer Drivers Scheme)도 운영하고 있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든 노인들을 병원이나 소셜 캘린더 행사에 차로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을 하는 것이다. 믿기지 않을지 모르지만 달마다 자원봉사자들이 자신의 차로 1500번 이상 회원들을 실어 나르고 있다.

HMR 서클 회원의 79.9%가 서클 덕에 사회적 활동이 늘었다고 답했고, 56.8%는 건강과 삶의 질이 나아졌다고도 했다. 71.6%가 서클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고, 평균 6.9명의 새 친구가 생겼다고 했다. 그리고 친구에게 서클을 추천하겠냐는 물음에는 모두(100%)가 그러겠다고 답했다.

힐러리는 책에서 서클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그대로 옮겨보았다.

“나는 서클이 미래의 모델이라고 믿는다. 서클은 노년층이 더 오래 살 것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새로운 방식으로 자원들을 결합하고, 비싼 의료 체계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인생의 마지막에 대한 더 나은 돌봄에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권력의 변화와 더불어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이 모델은 그 심장에 인류애가 자리 잡도록 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돌봄 문화다.”

우리 정부도 커뮤니티 케어(Community Care, 공동체 돌봄)를 핵심 정책으로 내걸었다. 노인을 비롯해 돌봄이 필요한 주민이 집과 지역 사회에 머물면서 필요한 복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2018년 9월에는 행정안전부와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가 주민 맞춤형 돌봄ㆍ의료서비스를 제공하고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주택의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내용의 업무협약도 맺었다. 복지부의 ‘돌봄’, 행안부의 ‘자치’, 국토부의 ‘재생’을 연계한 ‘부처 협력 시범사업’도 추진하기로 했다.

반가운 일이긴 하나 정작 알맹이가 빠진 느낌도 든다. 노인들이 정말 바라는 서비스가 무엇인지, 지역 주민의 참여는 어떻게 이끌어낼 것이며, 또 관계는 어떻게 만들어나가려 하는지 전혀 보이지 않아서다. 조금 더디더라도 아주 오래 갈 수 있는 든든한 복지 체계를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쌓아올려야 하지 않을까.

[참고한 글]

Hilary Cottam. “Radical Help – How we can remake the relationships between us and revolutionise the welfare state”. virago. 2018

Hilary Cottam and Cath Dillon. “Learning from London Circle”. 2015

David Brindle, “London Elderly Scheme’s Closure Fuels Row over Care Gap Crisis,” Guardian, 24 April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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