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초겨울 찬바람이 불면 2년 전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즈음 광화문 광장을 덮친 초겨울 찬바람은 촛불의 뜨거운 열기로 희미하게 녹아 내렸었다. 촛불 시민들의 소망은 소박했다. 기득권에 맞설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켜 갑질을 근절하고 사회적 양극화를 완화시키면서 복지를 늘리면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라 믿었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 시민의 여망을 실현하는 방향에서 상당한 위지를 갖고 노력했다. 입장과 의지만 갖고 본다면 크게 나무랄 여지가 없었다.

하지만 선한 의지가 선한 결과까지를 보장하지 않았다. 시장에 대한 국가의 우위가 사라진 조건에서 자동화, 해외이전, 사업 축소 등 각종 시장의 역습은 정부의 정책을 무참하게 무력화시켜 왔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참담하게 지켜봐야 했다.

이 시점에서 남북관계 진전에도 불구하고 경제 정책 실패로 정치적 위기에 직면했던 노무현 정부 모습이 새삼 떠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보의 문제 해결 능력 상실로 혼돈 속으로 빠져든 남미 국가들 상황이 오버랩 되는 이유 또한 무엇일까? 지나친 해석이라고 나무랄지 모른다.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고 전제하고 대비하는 것이 현명한 태도가 아닐까?

가장 답답한 지점 중 하나는 문재인 정부가 해답을 제시하고도 그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데 있다. 2017년 7월 21일 국무회의에 제출된 <새정부 경제정책방향>은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 방향으로서 소득주도 성장, 일자리 중심 경제, 공정 경제, 혁신 성장을 제시하면서 종합 타이틀로서 ‘사람 중심 경제’를 천명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시대의 화두로서 사람 중심 경제를 여러 차례 언급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좋았다. 그 다음이 문제였다. 박근혜 정부 때의 일이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하자마자 ‘창조경제’를 새로운 화두로 던졌다. 감은 제대로 잡은 것이었다. 3차 산업혁명(4차 산업혁명은 그 연장이다!)과 함께 가치 창출의 주요 원천이 노동력에서 지식, 감성, 상상력으로 구성된 창조력으로 전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관계자들은 창조경제의 개념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표류하다 좌초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 역시 그 전철을 되밟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가 된다.

필자의 소견을 바탕으로 사람 중심 경제를 최대한 압축해서 표현하면 이렇다. 3차 산업혁명 이후 가치 창출의 주요 원천으로 부상한 창조력의 발산이 극대화되려면 작업자가 자발적 열정을 갖고 몰입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자면 작업자가 경제 활동이 목적이 되고, 조직의 중심이 되어야 하며, 권력 행사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사람을 중심으로 경제가 돌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는 곧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함께 협력할 때 생산성 극대화로 이해당사자 모두가 이익을 누릴 수 있음을 의미한다.

사람 중심 경제는 이해당사자들의 협력을 바탕으로 상생을 추구한다. 소모적 갈등 지양, 협력을 통한 시너지 효과 극대화로 한국 경제의 도약을 약속한다. 사람 중심 경제는 대체 불가능한 창조력을 가치 창출의 주요 원천으로 삼기에 자동화와 해외 이전의 위협으로부터 일자리를 지킬 여지가 크게 늘어난다. 단적으로 창조력을 가치 창출의 원천으로 삼는 벤처기업이 해외 이전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정부의 핵심 과제는 대체 불가능한 창조력을 갖추도록 전국민 교육 훈련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이 된다.

사람 중심 경제로의 전환은 한국 경제의 틀과 기조를 바꾸는 거대한 작업이다. 국민의 이해와 동의, 동참 없이 정부 정책만으로 실현 불가능한 과제이다. 더욱이 사람 중심 경제는 이해 당사자들의 협력을 필수 전제로 한다. 이래저래 사회적 합의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절실한 것은 바로 그 사회적 합의이다. 감히 단언컨대 사람 중심 경제로의 사회적 합의 도출은 문재인 정부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이를 위한 광범위한 시민 토론을 기획해야 하는 이유이다.

뜬금없는 이야기라고 치부할 지도 모른다. 너무 막연하다는 반응을 보일 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우리 모두 익숙한 세계에 갇혀서는 출구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기성의 틀을 뛰어넘는 담대한 상상과 기획 없이 새로운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다.

( 이 글은 <내일신문>에 함께 게재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