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조세희작가가 발표한 단편소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1970년대를 배경으로 난장이 가족이 겪는 비극적인 삶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한 작품으로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리고 수능문제로 출제될 정도로 고전이 되었다. 난장이 아버지로 대표되는 도시빈민 다섯 가족은 마지막까지 지옥 같은 삶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들 가족에게 다가온 비극의 시초는 이들이 살고 있는 집을 철거한다는 구청의 계고장이 도달되면서 시작되었다. 어쩔 수 없이 공권력에 굴복한 난장이 가족들은 아파트 입주권을 받았으나 입주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방법이 없어 결국 입주권을 투기꾼들에게 헐값으로 넘겨주고 만다. 절망한 난장이 아버지는 공장 굴뚝에서 투신하여 생을 마감하고 자신의 순결과 바꾸어 입주권을 찾아온 딸 영희는 아버지의 자살소식에 절망하게 된다. 지옥에서 살면서 천국을 꿈꾸었던 난장이 가족의 비극적인 삶의 모습은 50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있다.

 

난장이 가족이 받은 입주권

 

난장이 가족의 불행은 살고 있는 집이 공권력에 의하여 강제로 철거되면서 시작된다. 1970년대 이후 국내에서 시작된 재개발사업은 강제철거를 통하여 진행되었다. 강제철거의 보상은 아파트 입주권이 전부였다. 아파트 입주권은 말 그대로 아파트에 입주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한다. 새로운 주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분양대금을 납부하고 입주할 수 있는 권리다. 입주금을 납부할 수 없는 철거민들은 이 권리를 팔고 다른 곳으로 이주할 수밖에 없었고, 입주권의 대부분의 투기꾼들에게 넘어갔다. 소설에서는 입주가 다가오면서 입주권은 17만 원에서 하루 사이에 18만5000원으로 또 며칠이 지나서 25만 원으로 올라갔다. 난장이 가족들은 입주권을 25만 원에 팔았으나 전세보증금 15만 원을 빼고 10만 원이 수중에 남았다. 이 돈으로 가족들의 거처를 마련할 방법은 없었다.

 

당시 재개발사업에서 아파트 입주권은 주택소유자에게만 주어졌다. 한집에서 옹기종기 모여 살던 세입자는 보증금을 돌려받는 것 이외에 다른 대책은 전혀 없었다. 난장이 가족은 입주할 수 없는 입주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세입자는 그저 보증금을 돌려받고 떠나는 것이 전부였다. 소설에서 난장이 가족과 그 집에 세 들어 살던 세입자는 경제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입주권을 매각하여 받은 돈은 집주인과 세입자 모두 자신의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러한 현상은 1980년대 합동재개발사업이 도입된 이후 극적인 변화를 맞이하게 된다. 주택소유자로 구성된 재개발조합은 고밀도개발과 주택시장의 가격상승으로 막대한 개발이익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집주인이나 세입자나 경제적으로 큰 차이가 없었던 상황은 변했다. 집주인은 재개발사업으로 가격이 오른 집을 비싸게 팔거나 원가로 공급되는 아파트를 분양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세입자의 처지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작은 보증금을 돌려받고 다른 거처를 찾아 쫓겨났다. 경제적 지위에 큰 차이가 없던 집주인과 세입자의 처지가 변하면서 재개발사업을 대하는 태도도 180도 바뀌었다. 1980년대 이후 재개발사업으로 터전을 잃고 거리로 쫓겨난 세입자들은 치열한 생존권 투쟁을 전개하였다.

 

1983년 이후 재개발구역에서는 강제철거에 맞선 세입자들의 생존권 투쟁이 이어진다. 강제철거와 이에 맞선 생존권투쟁은 경찰과 조합이 고용한 용역에 의하여 엄청난 희생자를 양산하였다. 1984년 이후 철거민들 20여 명이 목숨을 잃고 수많은 구속자가 발생하였다.

 

이 시기 서울의 철거 문제는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기에 이르고, HIC(Habitat International Coalition) 총회에서는 한국을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철거를 하는 나라”로 비난하였다.

 

잔인하고 무자비한 강제철거에 대항하는 도시빈민의 생존권 투쟁의 결과 재개발구역에 세입자를 위한 임대주택 건립의무가 도입되었다. 재개발구역에 세입자를 위한 임대주택은 1989년 도입된 영구임대주택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재개발사업의 시행을 위해서는 재개발구역에 거주하는 세입자를 위하여 전체 건립세대의 일정비율 이상을 임대주택으로 건립하고 공공기관이 이를 매입하여 저렴한 임대주택으로 공급하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1990년대 이후 재개발사업에 임대주택 건립의무가 적용되면서 아무런 대책 없이 거리로 내쫓기던 세입자들은 최소한의 안정장치가 생겼다. 재개발 임대주택은 도시빈민이 목숨을 걸고 쟁취한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집’이다.

 

사라지는 재개발 임대주택

 

앞서 살펴봤듯 재개발사업에 임대주택의 건립의무비율을 적용하여 세입자를 위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것은 도시빈민의 오랜 생존권 투쟁의 결과물이다. 또한 도시빈민의 생존권 투쟁의 결과로 『공익사업 보상법』이 개정되어 세입자에 대한 이주대책 수립의무가 도입되었다. 재개발사업은 사업시행자가 정비구역 내 미동의자가 소유하고 있는 토지를 강제로 수용할 수 있는 공익사업으로 사업시행자는 이주대책 수립의 의무를 지게 되었다.

 

재개발사업의 임대주택 건립의무비율은 몇 번에 걸쳐 그 내용이 변했다. 최초 전체 건립세대의 17% 이상으로 비율이 정해졌으나 2012년 수도권과 비수도권 지역에 비율을 차등 적용하는 기준이 도입되었다. 2015년 종전 기준을 대폭 완화하여 15% 이하의 범위에서 시도지사가 별도의 기준을 고시할 수 있도록 기준이 변경되었다. 국토부 기준으로 서울은 15%, 경기는 5~15%, 인천은 0~15%로 적용되고 있다.

 

 

2015년 발표된 국토부의 재개발 임대주택 건립의무비율은 하한선을 폐지하고 상한선을 정하는 방식이었다. 또한 국토부가 제시한 상한선 범위에서 시도지사가 범위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인천시는 0~15% 범위에서 사업시행자가 그 범위를 정하도록 규정을 고시하였다. 이 규정에 따르면 재개발 임대주택을 공급하지 않아도 된다. 경기도의 경우도 하한선을 5%로 규정하여 사실상 재개발 임대주택 건립의무비율이 5%가 적용된다.

 

재개발사업 시행자에게 임대주택건립 의무는 비용의 문제로 인식된다. 따라서 0~15% 범위에서 사업시행자가 그 범위를 결정하면 열이면 열 임대주택을 건립하지 않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재개발사업은 공익사업적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재개발조합은 민간사업자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사업자에게 자발적인 선택으로 공공의 복리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건립을 기대하는 것은 장사꾼에게 공익사업을 맡기는 것과 같은 일이다.

 

재개발 임대주택 건립의무 기준

 

재개발 임대주택 건립의무 비율을 바라보는 기준은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논쟁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2015년 국토부가 임대주택 건립의무비율을 완화한 것은 재개발사업의 사업성을 개선하여 사업자를 지원하겠다는 인식에서 출발하였다. 임대주택을 건립하는 비율을 줄이고 그 만큼 분양주택을 건립하여 매각하면 사업성이 개선되어 사업이 활성화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인식은 철저하게 개발사업자의 관점이다. 재개발구역에 거주하고 있는 세입자들에 대한 고려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주대책의 대상이 되는 세입자가 얼마나 존재하고 있는지 또한 임대주택에 입주하여야 하는 저소득층이 얼마나 살고 있는지 관심조차 없는 것으로 보인다. 법리적으로도 재개발사업은 사업시행자가 토지를 수용할 수 있는 공익사업으로 구분되고 사업시행자는 정당한 보상과 이에 따른 이주대책을 수립할 의무가 있다.

 

재개발 임대주택은 난장이로 대표되는 도시빈민의 엄청난 희생으로 쟁취한 사회적 합의이다. 사회적 합의를 무력화시키고 공익사업인 재개발사업을 민간개발사업으로 변화시키는 시도는 중단되어야 한다. 사회적 합의를 지키고 확대하여야 할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남아 있다. 재개발 임대주택 건립의무 비율은 재개발구역에 거주하는 가난한 세입자를 보호하는 기준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