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펀치(609) 한 줌의 주민들이 모이고 모여 마을을 이루고 도시를 이루고 사회를 이룬다.

By | 2018-07-02T22:17:06+00:00 2018.05.08.|Tags: , , |

요즘 ‘작은연구 아카데미’라는 일반회원 대상 학습모임의 가능성을 타진해보고자 마을공동체 지원센터의 활동가들과 텍스트마이닝과 GIS(Geographic Information System)를 공동으로 학습해 보고 있다. 마을공동체의 활성화가 목표이니 마을 현장의 목소리를 좀 더 효율적으로 듣기 위한 수단으로 텍스트마이닝에 관한 관심이 높았고, 마을공동체의 공간이라는 측면을 무시할 수 없기에 GIS에 관한 관심도 높았다. 학습모임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한 시사점을 얻기 위한 기회를 열어준 것에 대해 함께하고 있는 활동가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마을공동체는 현대의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논의되고 있는 사회적경제, 도시재생을 이루기 위한 기본 전제이다. 이윤 동기가 아닌 사회적 이익에 중점을 두는 경제 체계는 지역공동체를 중심으로 순환하는 체계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망상에 불과하며, 시장원리에 따른 자본의 경합에 따라 생겨나는 도시쇠퇴에 대응하는 적절한 방법은 자본을 때려 넣는 것이 아니라 지역공동체의 각 구성원과 구성요소들이 유기적으로 관계를 맺으며 지속가능성을 높여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을공동체가 우리 사회를 구원할 유력한 대안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며, 그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마을 현장의 주민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중간지원조직의 활동가들은 마을공동체를 연구하는 연구자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다. 그러다 보니 마을 현장에서는 행여 말실수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 늘 조심하게 된다. 그리고 마을 현장의 역동성과 복잡다단함에 항상 놀라게 되고, 그래서 아는 것이 별로 없다는 끊임없는 자각과 겸손함을 갖게 된다.

이런 입장에서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존재가 소위 전문가라고 스스로 칭하는 자들이다. 해당 마을의 전문가는 해당 마을의 주민임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량한 지식을 뽐내며 주민들을 가르치려 드는 자들을 보면 참 한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간혹 마을의 활동가들과 구분이 어렵지만,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문제의식이 추상적이고 구체성이 떨어진다. 말이 둥둥 떠다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러다 보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지만 당장 마을 현장의 고민 해결에 별 도움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둘째, 자신의 주장이나 소신을 이루기 위해서 직접 구체적인 활동을 하는 게 아니라 다른 구성원이 이렇게 해야 한다느니 저렇게 해야 한다느니 하는 경우가 많다. 같은 맥락에서, 문제의 원인을 객관적으로 살피지 않고 주변 환경이나 구성원의 탓으로 돌리고, 그러다 보니 이른바 ‘모두까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다른 사람들도 충분히 심사숙고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행동인데, 스스로가 현장의 문제를 충분히 숙고하지 않았거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할 때 더욱 심해진다. 마을공동체 내에서 자기의 역할이나 위치를 제대로 잡지 못할 때도 그러하다.

셋째, 스스로가 공동체 구성원 중 하나라는 점을 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심하면 자신이 특별하다고 대놓고 드러내기도 하며, 흔하게는 자신을 중심으로 일이 되지 않는 것에 불만을 토로한다. 자신에게 뭔가를 묻지 않았다면서 의견수렴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고 우기는 경우가 대표적인 예이다.

현장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여 공동체 내에서 영향력을 갖추게 되었거나 어쩌다 공공조직에 몸을 담게 된 인사들이 자칫 위와 같이 변할 우려가 있는데, 대통령 공약으로 도시재생에 엄청난 예산이 풀리면서 이런 자들이 많아질까 걱정스럽다.

도시재생이라 하면 뭔가 그럴듯해 보이지만, 마을공동체의 주민들과 주민들이 만들어가는 관계망을 제외하면 그냥 건물 몇 개 짓고, 이런저런 개발사업을 벌이는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마을공동체를 기반으로 하지 않고 무작정 예산만 투입하는 한국식 도시재생이 진정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 그러다 보면 도시재생 활성화를 위해 투입되었던 사람 중 일부가 초조함을 이기지 못하고 전문가 티를 내면서 마을공동체를 무식하고, 이기적이고, 비협조적이라고 몰아세우기도 한다.

얼마 전에 공공조직에서 도시재생을 전담하고 있는 한 활동가가 한 말을 우연히 전해 듣게 되었다. 마을공동체와 도시재생의 연계 가능성을 타진해보던 자리에서 그는 “한 줌의 주민들에게 도시재생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운영하게 할 수는 없다. 주민들은 (활동의 주체가 아니라) 소비만 열심히 하면 된다.”라는 말을 쏟아내었다고 한다.

전해 들은 얘기이니 오해의 여지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사람들이 도시재생을 계속 담당한다면 한국의 도시재생 정책은 실패의 길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주민들을 감히 ‘한 줌’이라 폄하하는 오만과 주민들을 그저 사업의 대상 정도로만 여기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으로 어찌 마을공동체와 유기적으로 엮이는 도시재생사업이 가능하겠는가.

어깨에 힘이 잔뜩 든 전문가들에게 한 말씀 남기고 싶다. 그대들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지금은 마을 현장, 주민들의 시대이다.

1 개 댓글

  1. 이일우 2018년 5월 10일 at 8:25 오전

    저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글이네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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