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펀치(601) 1992년, 2000년의 빛이 2018년을 비춘다

By | 2018-07-03T13:24:15+00:00 2018.03.12.|Tags: , |

요즘 한글이 뛰어난 조형미 덕분에 문자로서가 아니라 시각 디자인용으로 세계 곳곳에서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런던에서 개최된 패션쇼에서는 한 모델이 들고나온 가방에 ‘긴장하라’는 한글 도안이 새겨져 있었다. 의미와 관계없이 순수하게 디자인용으로 새긴 것이겠지만 묘하게 뇌리를 때린다.

긴장하라! 요즘 한반도 정세 돌아가는 양상을 보면 긴장을 아니 할 수 없다. 입안 침이 마르고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가고도 남음이 있다. 4월 말 남북 정상이 만나 어떤 합의를 할까? 이어지는 5월에는 김정은과 트럼프가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을 하기로 되어 있는데 과연 어떤 결과를 만들어낼까? 전 세계 관심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충격을 넘어 경악을 자아낸 일련의 사태에 대한 해석을 최대한 단순화시키면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

먼저 미국을 중심으로 진행된 최대한의 압박과 제재가 북한을 굴복시킨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자면 북한의 행보는 진정성을 인정하기 쉽지 않다. 북한의 속뜻은 제재를 완화하고 시간을 벌면서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데 있는 것으로 의심될 수밖에 없다. 남북·북미정상 회담 모두 알맹이 있는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정반대의 시각이 가능하다. 평창 올림픽 참여를 거쳐 북미 정상회담을 제안한 일련의 행보는 북한이 애초부터 품고 있었던 복안이 현실화된 과정일 수 있다. 이 관점에서 보면 북미정상회담에서 북미 두 나라의 종전과 관계 정상화, 실질적인 비핵화를 향한 큰 그림을 합의할 개연성이 매우 높다.

과연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울까? 그 해답을 찾자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먼저 2018년과 매우 유사한 상황이 펼쳐졌던 2000년으로 되돌아 가 보자.

1999년 8월 북한이 장거리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면서 북핵 위기가 불거졌다. 김대중 정부는 위기를 기회로 간주했다. 김대중 정부는 클린턴 미 행정부를 집요하게 설득함으로써 북한과의 빅딜에 나서도록 유도했다. 같은 해 10월 클린턴 행정부는 북미 관계 개선 프로그램을 담은 페리 보고서를 채택했다.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이 보였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고 6.15공동선언이 발표됨으로써 남북 관계가 획기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얼어붙은 한반도에 훈풍이 부는 것에 발맞추어 북미 관계 개선을 위한 움직임이 탄력을 받았다. 같은 해 9월 북한 군부 실세인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을 전격 방문했다. 조명록과 클린턴은 회담을 가진 뒤 북미 관계 개선을 천명하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어서 울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평양을 방문했다. 북한은 장거리 미사일 발사 실험을 유예하기로 약속했다. 마지막 남은 순서는 클린턴이 평양을 방문해 북미 정상회담을 갖고 관계 개선을 확정 짓는 것이었다. 하지만 클린턴의 평양 방문은 성사되지 못했다. 당시 클린턴은 임기 말기를 맞이하고 있었는데 그즈음 치러진 대선에서 공화당의 부시가 당선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부시 측이 북미 관계 개선을 반대하면서 클린턴 평양 방문이 무의미해지고 말았다.

20001년 부시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북미 관계는 다시금 대결 국면으로 치달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0년도에 벌어진 일련의 움직임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 개발을 통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늠하게 해 준다. 북한은 핵 프로그램을 협상 지렛대로 북미 관계를 개선하고 이를 통해 체제를 보장받고 경제 도약을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 사실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 개발에 본격 착수하기로 결심했던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한층 분명하게 확인된다.

1991년 소련 사회주의권 붕괴는 북한에게 심각한 위기로 다가왔다. 중국이 건재한 상태이기는 했으나 얼마 후 한국과 수교하면서 북한을 일방적으로 편들지 않았다. 북한으로서는 국제적 고립 심화로 체제 유지가 어려울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1992년 북한은 미국을 향해 관계 개선을 희망하며 특사 파견을 요구했다. 미국은 이를 매몰차게 거절했다. 미국은 북한이 계속해서 악의 축으로 남아 있는 게 유리하다고 보았다.

북한이 이러한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한 것이 핵 프로그램 개발이었다. 동기와 목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2018년 북한은 1992년 핵 프로그램 개발을 결심했을 때 품었던 목적을 전격 실현하고자 시도할 것이다.

북한은 최적의 시기가 왔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11월 중간 선거에서 패배하면 탄핵 위기로 내몰릴 수도 있는 트럼프는 매우 다급해져 있는 상황이다. 어떤 고깃덩이를 던져도 덥석 물 기세이다. 다가오는 5월 북미 회담에서는 한반도 지형을 180도 바꾸어놓은 합의가 이루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엄청난 변화가 몰아친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최고도의 긴장감을 가져야 할 때이다.

‘긴장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