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학, 이제 자유? 그럴 리가

‘우아한 A’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겠다는 희망을 품고 서울소재 유명 대학교의 실용미술과에 진학하였다. “세상 물정 모르는 것이 어떻게 혼자 사느냐. 위험하니 기숙사 들어가거라.” 이제 40대 중반에 접어드는 엄마의 목소리가 고리타분하다 못해 사극대사처럼 들린다. 20평생 처음 집을 떠나 사는 게 약간의 두렴도 주지만 가정의 평안함에 비례한 간섭에서 벗어난다는 건 충분히 설레는 일이었는데 김이 샌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얼핏 들은 기숙사 생활은 매력적이지 않았다. 기숙사는 생활관이라고 불리기고 하는데, 점호와 폐문이 있다. ‘(1)점호는 당직조교 및 총장에 의해서 실시. (2)일일점호는 매일 24시 00분에 실시.’ 점호가 무슨 뜻이냐고 선배들에게 물으니 군대에서 잠자기 전 인원점검을 하는 거라 한다. 외출과 외박에 대한 규칙도 있다. 주 3회 이상 외박을 할 경우에는 사감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한 방을 4명이 같이 쓴다. 10살 때 내 방이 생긴 이후, 누군가와 같이 한 방을 쓴 적이 없는데 잘 지낼 수 있을까?

이런저런 핑계거리에도 불구하고 기숙사에 들어가는 걸 고분고분 받아들인 이유는 저렴한 이용료 때문이다. 학교 밖에서 방을 구하는 것에 비해 기숙사 이용에 드는 돈은 절반도 되지 않았다. 집에서 받는 용돈으로 지내야 하는 신입생 처지에 기숙사 신청에서 탈락하지 않기를 바라야 하는 상황이었다.

 

2003년. 기숙사 월 15만 원. <스물, 운수 좋은 가격>

 
 
낭만의 옥탑방? 고양이 얼어 죽는다

기숙사 생활은 의외로 좋았다. 어떤 친구들은 “가증스런 룸메이트 때문에 암 걸리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기도 했지만, 다행히 우리 방 멤버들은 성격도 좋고 적당히 깔끔해서 큰 갈등 없이 지낼 수 있었다. 그리고 A의 바로 위 침대를 쓰는 ‘발랄한 G’와는 꽤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미대생의 일상은 세간의 이미지와 다르게 결코 낭만적이지 않았다. 매주 쏟아지는 과제에 밤샘은 기본이라 학업 이외에 다른 여가를 찾는다거나 동아리활동을 한다거나 따위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당연히 학기 중에는 알바를 하는 것도 어려워서 ‘2학기부터는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리라.’는 다짐의 실현도 요원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도 못한 사이 여름, 가을, 겨울이 지났다.

방학 동안 틈틈이 알바를 해서 돈을 조금 모았지만, 2학년이 되어 다시 기숙사에 들어가지 못하면 방값으로 꽤 많은 지출이 들어서 궁핍한 생활을 감내해야 한다. 하지만 신입생 60%, 재학생 40% 비중으로 사생을 선발하기에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한 경우 기숙사에 다시 들어가기 어렵다. 전교생이 2만 명인데 기숙사 수용인원은 1,500명에 불과하다. 예상대로 A는 선발에서 탈락했다.

대학가의 주거형태는 다양하지만 학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전통적인 하숙이 있고 자취가 있다. 자취의 경우 과거 단독주택이나 다가구주택의 방 하나에 세 들어 살던 것에서 원룸이라는 비교적 독립된 거주형태로 바뀌는 추세였다.

하숙은 숙식을 같이 제공하는 것이 장점이지만 어차피 실습과제 때문에 거의 매일 학교 작업실에서 야간작업을 해야 하는 상황에 하숙집 밥을 꼬박꼬박 챙겨먹을 수 없다. 좋은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눈칫밥 먹게 될 우려도 있어서 하숙은 고려대상에서 제외.

자취방은 하숙과 비슷한 거주환경에서 식사를 알아서 해결하는 형태인데 저렴하면서 깨끗한 방 구하기도 힘들고 집주인과 가까이 지내는 것이 은근히 거슬리고, 방범 등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고려대상에서 제외.

원룸은 그럴듯하게 들리는 만큼 너무 비싸서 일단 제외하고 옥탑방을 알아보게 되었다. 옥탑방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자취방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지만, 옥상에 있어서 좀 더 독립적일 거 같고, 얼마 전에 방영된 TV드라마의 영향으로 왠지 좋은 이미지가 생겼다. 물론 드라마와 현실이 크게 다르다는 건 살아봐야 깨닫게 된다. 정말 싸게 나온 물건이라는 복덕방의 소개에 부모님이 어렵사리 보태주신 3천만 원으로 전세계약을 하였다.

 

2004년. 옥탑방 전세 3천만 원. <스물하나, 속은 듯한 가격>

 

바퀴벌레와 꼽등이는 덤

작열하는 태양, 살을 에는 추위. 이게 무엇인지 드디어 알게 되었다. 좀 덥고 추울 거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남도에서 자란 A’가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어차피 한참 뜨거운 시간에는 학교 작업실에서 지내니 여름에는 견딜 만 했다. 그래도 한참 북쪽의 서울이 남도보다 더 무더운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문제는 겨울. 벽체가 전혀 단열을 하지 못하니 보일러를 적당히 틀면 한기가 가시지 않는다. 11월에는 멋모르고 난방을 돌렸다가 눈이 의심스런 고지서를 받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혹한에 수도관이 터지고 보일러가 고장 나는 불상사도 겪게 되었다.

하지만 A는 자신의 처지가 그나마 호사스런 것이라 여겼다. 고향친구인 ‘용감한 K’는 고시원에서 산다. 면학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이름에 어떤 곳인지 살짝 들려본 후 A는 K가 측은해졌다. 다닥다닥 붙어 있는 좁은, 방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공간들, 옆방에서 볼펜으로 무슨 글자를 쓰는지도 알아챌 수 있을 것만 같은 허술한 간이벽, 수십 명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욕실과 화장실, 지은 지 오래되어 그런지 건물 전체에 퍼져 있는 알 듯 모를 듯한 이상한 냄새. 그리고 왼쪽 책상 사이에서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시커먼 물체. 자세히 보니 바퀴벌레였다. “이런 건 집에서도 보는 건데 뭐. 이상한 거도 있어. 등이 굽은 귀뚜라미 같은데 울지는 않던데?”라는 씩씩한 답이 오히려 애처로웠다. 등이 굽은 그것이 꼽등이라는 건 몇 년 후 연가시를 알게 되면서 같이 알게 되었다.

‘한 달에 25만원이나 내고 이런 곳에 살아야 하나?’ K에게 보증금 5백만 원 정도가 있으면 월세 25만원의 자취방을 구할 수 있었다. 보증금을 1천만 원 정도 들이면 작은 원룸에 월세 사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돈을 구하기 어려운 K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었다. 침침한 복도를 나서며 무심결에 돌아본, 희미한 조명 아래 번호 달린 암갈색 문들이 줄지어 있던 광경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2004년. 고시원 월 25만 원. <스물하나, 바퀴벌레와 친구 맺는 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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