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사연은 2008년부터 매 년 진보 정책 연구소 최초로 <전망 보고서>를 발간하고 있습니다. 경제, 주거, 노동, 복지 분야를 중심으로 세계의 흐름 속에서 한국 사회를 진단하여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사회로의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2016년 전망 보고서 역시 총 8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정부-대기업-기성언론이 ‘사이비 언론 척결’ 나선 까닭
“그러니까 네이버 밑에서 어뷰징이나 하고 있지”
지난 1월 20일 IT 전문 매체 ‘아웃스탠딩’(http://outstanding.kr) 기사가 눈길을 끈다. 잘 나가는 IT(정보기술) 업계 전문가와 ‘만세일보’란 가상의 신문사를 등장시켜 기성 언론사의 포털 종속과 ‘어뷰징’ 문제의 본질을 속속들이 꼬집는다. 내용도 재밌지만 글 대신 캐릭터들 대화로 풀어가는 만화 같은 형식도 인상적이었다.
‘아웃스탠딩’은 지난해 1월 ‘뉴스토마토’ 기자 출신 2명이 만든 신생 매체지만 창업 1년 만에 페이스북 ‘좋아요’가 1만3800회를 넘길 정도로 입소문을 타고 있다. 그런데 정작 네이버나 다음(카카오) 같은 포털 뉴스에선 ‘아웃스탠딩’ 기사를 검색할 수 없다. 아직 문화체육관광부 인터넷신문으로 1년 이상 등록되지 않아서다. ‘아웃스탠딩’도 최근 기자 1명을 충원해 나름 자격을 갖췄지만 올해부터 포털 뉴스 문턱은 더 높아질 전망이다.
정부는 인터넷신문 등록 기준을 취재편집인력 3인 이상에서 5인 이상으로 한층 강화했고, 포털도 뉴스 제휴 심사 권한이란 ‘생선’을 ‘고양이들’(신문방송사 이익단체들)에게 맡겼다. 그 배후에는 흔히 ‘사이비 언론’이라 부르는 ‘유사 언론’ 퇴출을 부르짖는 대기업이 있다. 박근혜 정부와 기성 언론, 대기업이 ‘인터넷 신문 통제’에 의기투합한 것이다.
왜 하필 인터넷 언론인가? 그렇지 않아도 지금 국내 미디어 산업은 안팎으로 큰 위기다. 종합편성채널(종편)을 비롯해 언론 매체 숫자는 계속 느는데 광고 시장은 포화 상태고, 독자와 시청자들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신문, 방송 같은 올드 미디어들은 인터넷, 모바일 미디어 환경에서 살아남으려고 너도나도 디지털 혁신을 부르짖고 있다.
그런데 정작 창조경제로 젊은이들의 창업을 유도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던 박근혜 정부는 유독 미디어 시장에서는 ‘신생 매체 창업’의 꿈을 송두리째 뽑으려고만 한다. 미디어산업의 미래도 IT산업과 마찬가지로 당장 큰 자본은 없어도 온갖 아이디어와 패기로 뭉친 작은 인터넷 매체들에 달려있는데도 말이다.
결국 ‘인터넷 매체’가 늘어나는 게 불편해서다. 정부는 인터넷 매체가 너무 많아 정부 비판 기사를 통제하기 어렵고, 대기업도 기업 비판 기사뿐 아니라, 여기저기 광고 달라고 손 벌리는 곳도 많아지니 달가울 게 없다. 기성 언론사도 ‘밥그릇(광고)’이 줄어들 뿐 아니라 독자도 뺏길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미디어 정책을 평가하면서 신문, 지상파 방송, 종편 등을 놔두고 굳이 인터넷 언론에 주목한 것도 앞서 말했듯 가장 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것이 다름 아닌 인터넷 언론이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인터넷신문 등록 요건을 강화한 신문법 시행령 개정안과 포털 뉴스 제휴평가위원회 구성을 중심으로, 박근혜 정부 미디어정책이 내포한 문제점을 짚어봤다.
의문 1. 인터넷신문 기준 높이면 품질도 높아질까?
첫 번째 의문. 정부 주장대로 인터넷신문 등록 기준을 높이면 저널리즘 품질도 따라서 높아질까? 결론부터 말하면 번지수가 틀렸다. 지금 인터넷 저널리즘 품질 하락을 주도하는 곳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5인 미만’ 독립형 인터넷매체가 아니라 누구나 이름 대면 알만한 기존 대형 신문, 방송사의 인터넷판, 즉 ‘닷컴’ 종속형 인터넷매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표현의자유특별위원회 주최로 열린 긴급 토론회에서 박근혜 정부의 ‘인터넷 여론 통제’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대표적인 게 인터넷신문 등록 요건 강화와 인터넷상 명예훼손 제3자 심의 신청 허용, 포털 뉴스 제휴심사평가위원회 등이었다.
이날 김춘효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강사는 ‘청산되지 못한 ‘검열’ 역사, 박근혜 정부 미디어 정책 토대에서’란 제목의 발제문에서 “박근혜 정권의 미디어 정책은 아버지 박정희처럼 ‘채찍’과 ‘당근’을 동시에 사용하지 않고 ‘채찍’ 검열에만 집중하고 있다”면서 “공정성과 객관성이라는 애매한 법적 규정을 근거로 활자 매체보다 방송과 인터넷 통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로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방송통신심의의원회(방심위) 등 정부 산하 위원회를 통한 검열 강화와 ▲신문법 시행령 개정을 통한 인터넷신문 시장 개입, ▲포털뉴스제휴평가위원회 같은 제휴 민간 위원회를 앞세운 간접 검열 등 3가지 방식이다.
김춘효 강사는 박근혜 정부가 인터넷신문 등록 요건을 강화하는 목적으로 ‘유사언론 퇴치’를 앞세운 사실에 주목했다. 김 강사는 “유사언론이라는 용어의 등장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언론 통제정책을 연상시킨다”면서 “이들 독재정권들은 신문 시장에 개입할 때 ‘사이비 언론’ 퇴치를 주요 기치로 내걸었다”고 지적했다.
실제 과거 독재 정권들은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언론인과 언론사를 탄압하고 폐간이나 통폐합시키는 대신 친정부적인 매체에는 온갖 특혜를 베풀어 오늘날 대기업 수준으로 키웠다. 2000년대 민주화 정부를 거치며 이 같은 ‘채찍’과 ‘당근’이 거의 사라지는 듯 했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 들어 조선, 중앙, 동아, 매경 등 보수 매체에 ‘종합편성채널(종편)’이란 ‘당근’을 안긴 데 이어 진보 성향이 강한 독립형 인터넷 매체를 향한 ‘채찍’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8월 22일 인터넷신문의 등록 요건을 강화하는 신문법(신문 등의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발행인을 포함한 취재 편집 인력 기준을 3인 이상에서 5인 이상으로 늘리는 한편, 단순 명단뿐 아니라 상시 고용을 증명하는 서류까지 제출하도록 강화했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 자료인 한국언론진흥재단 ‘2014년 신문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1776개 인터넷언론사 가운데 종사자 5인 미만 언론사는 687개로 37.8% 정도고, 10인 미만 언론사는 1626개로 91.6%에 이른다. 하지만 평균 종사자수가 6.3명인 반면 기자직 숫자는 평균 4.5명에 불과했다. 지역 인터넷언론은 더 열악해 평균 기자수가 3.5명에 불과했다. 새로운 등록 요건에 맞추려면 적어도 1~2명 이상 정규직 충원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인터넷언론사에서 상시 취재편집인력 5명 이상을 유지하려면 최저임금으로 따져도 매출 1억 원 이상이 필요한데, 연매출 1억 원이 넘는 인터넷언론사는 275개로 15% 정도에 불과했다.
한국인터넷기자협회에서 이번 시행령안이 인터넷신문을 최대 85%까지 정리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는 이유다. 2014년 말 등록된 인터넷신문사가 5950개인 걸 감안하면 무려 5000개 정도가 정리되는 셈이다.
과거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언론사 통폐합 규모도 여기에는 못 미친다. 박정희 정권은 지난 1961년 5.16쿠데타 직후 ‘사이비 언론인 및 언론 기관 정화’를 앞세워 자체 인쇄시설을 갖춘 신문사만 인정해 당시 912개에 이르던 언론사를 80여 개로 줄였다.
언론사 숫자가 줄어들면 그만큼 정권에서 여론을 통제하기 쉬워지고, 소수 언론사들이 규모가 커지면 자연스럽게 기득권 세력에 편입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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