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행정부가 추구한 것은 아시아로의 회귀, 즉 동북아로의 집중이다. 이는 당면과제로는 북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며 전략적 과제로는 향후 부상할 중국을 견제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오바마행정부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지속하기 위해 한-미-일 3각 군사동맹을 전면화하며 한국을 미사일 방어체제에 완전히 편입시키려 하고, 중국에 대한 장기적 견제를 완성하기 위해 중국 포위망을 구축하고 있다. 






이를 위해 미국은 동남아에서 지난 시절 미국의 식민지였던 필리핀과 중국과 분단관계에 있는 대만, 그리고 역사적으로 중국과 대립해 온 베트남을 전면에 내세워 중국포위환을 완성하고자 한다.

남지나해 영토분쟁

중국이 대만,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과 인접한 남지나해 일대에서 공격적으로 진출하며 남지나해 영토분쟁이 불거지고 있다. 아래 그림을 참조한다면 남지나해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그 넓은 바다가 죄다 중국 차지라는 것이다. 이는 흡사 NLL 이하 경기만 수역이 죄다 우리 차지이며 북한의 NLL 무력화시도는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협한다는 국군의 입장과 흡사하다. 중국은 이렇게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국가들을 노골적으로 자극하며 남지나해에서 패권을 형성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이 최근 군사적 충돌조짐까지로 번진 중국과 베트남의 시사군도(파라셀 제도) 충돌이다. 중국은 남지나해 시사군도를 1974년 중국과 베트남 전쟁에서 점령했다는 입장이며 베트남은 그렇지 않다. 문제는 지난 5월 2일, 중국이 시사군도에서 원유개발에 나서면서 불거졌다. 시사군도가 아래 그림과 같이 베트남의 배타적 경제수역 안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은 자기 영토 주변 20해리 근방을 영해로 인정받아 주권을 행사한다. 또한 영토 주변 200해리 근방을 “배타적 경제수역”이라 하여 이 지역의 해양자원, 해저자원을 독점적으로 개발할 권리를 갖는다.

시사군도와 난사군도(스프래틀리 군도)는 인간이 거주하기엔 불가능한 산호초로 이뤄진 무인도들의 집단이라 영해분쟁으로 시달렸지만 첨예한 정치쟁점으로까지 부각되지는 않았다. 70여개의 섬으로 이뤄진 난사군도에서 제일 큰 섬도 여의도의 1/10에 불과해 사람이 살 수 있는 섬은 사실상 없다. 사실상 이들 섬들은 독도와 같이 현지 거주민이 없다는 점에서 영해분쟁의 대상이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중국이 시사군도에서 원유탐사에 나선 이상, 베트남으로서는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중국해양석유총공사(CNOOC)와 중하이유전은 10억달러짜리 이 시추 설비를 지키려 선박 80여척과 항공기, 헬리콥터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베트남은 즉각 “이 지역은 베트남의 배타적 경제수역 안에 있다”며, 해군 함정과 해안경비대 초계정 등 29척을 급파해 저지에 나섰다.

베트남 해안경비대 초계정이 중국의 석유시추 설비 설치를 저지하려 접근하자, 시추 장비를 둘러싸고 있던 중국 선박들이 대응에 나서는 방식이다. 베트남 언론은 5월 9일까지 충돌로 베트남 쪽 부상자가 9명으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이를 계기로 베트남에서는 반중시위가 일어나기 시작하면서 베트남에 거주하던 중국인 150여명이 베트남 시위군중으로부터 부상당하였으며 약 3000명 가량의 베트남 거주 중국인들은 중국으로 들어왔다고 밝혔다. 일부 시위대는 중국계 기업을 습격, 방화하기도 하였다.

급기야 지난 5월 26일에는 베트남 어선이 중국 어선과 충돌한 뒤 침몰하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사고해역은 중국 원유시추선이 있는 곳으로부터 남서쪽으로 30 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 베트남 당국은 중국 어선이 베트남 어선을 들이받아 침몰시켰다고 하였으며 중국은 베트남어선이 들이받고 침몰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베트남 어선 선원 10명은 바다에 빠진 뒤 구조되었지만 원유시추로부터 시작된 중국과 베트남의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 6월 8일, ‘베트남의 도발과 중국의 입장’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중국이 작업을 시작한 이후 베트남 측은 무장선박을 포함한 선박을 대거 동원하고 잠수부와 어망, 부유물 등을 통해 방해공작을 폈다”면서 “6월 7일 오후 5시를 기준으로 베트남이 현장에 파견한 선박은 최대 63척에 이르며 중국의 경계구역으로 돌진해 중국의 공무 선박에 충돌한 것만 해도 1416회나 된다”고 주장했다.

난사군도에서는 필리핀과 충돌

5월 7일에는 남중국해 난사군도에서 조업중인 중국어선 한 척이 불법조업 혐의로 필리핀 당국에 억류되었다.

그러나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조업중이던 어선 2척 가운데 1척은 실종되고 1척은 억류되었다며 필리핀은 즉각 어민과 어선을 석방하고 어떠한 도발적인 행동도 하지 말 것을 경고하였다. 화 대변인은 “중국은 반웨자오를 포함한 난사군도와 부근 해역에 대해 논쟁의 여지가 없는 주권을 갖고 있다”고 말하며 “현재 중국 해경선이 이미 사건 발생 현장에 도착했다”면서 “중국 외교부와 주필리핀 중국 대사관은 필리핀 측에 항의하고 적절한 설명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충돌의 배경은 미국의 중국견제

남지나해에서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의 충돌이 잦아지는 것은 미국의 동남아 군사행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미국의 소리> 방송은 2014년 4월 28일, 미국과 필리핀이 새 방위협력협정을 체결하였으며 미국이 필리핀 정부로부터 클라크 미 공군기지와 수빅만 해군기지 등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대통령은 남지나해 영유권 분쟁을 국제법에 따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데 인식을 같이하며 미국과 필리핀의 새로운 방위협력협정이 앞으로 필리핀의 국방력을 강화하고 남중국해 주변의 안정을 되찾는데 기여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남지나해 영유권 분쟁에서 노골적으로 필리핀 편을 들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어 5월 5일에는 미국과 필리핀이 필리핀 루손 섬에서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벌였다.

미국은 베트남과의 관계개선과 군사협력도 적극적으로 모색하였다. 지난 3월 5일, 미국과 베트남은 향후 해양안보 등 국방부문의 협력을 한층 확대하기로 했다고 베트남언론이 보도했다. 응웬 치 빙 베트남 국방차관이 전날 하노이를 방문한 웬디 셔먼 미 국무차관과 만나 양국관계 증진방안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며 이 자리에서 양국이 국방안보와 불발탄 제거, 해양안보, 전사자 유품 교환 등을 위한 협의를 한층 확대해야 한다며 협력 강화 의지를 피력했다고 한다.

이미 베트남과 미국의 외교관계는 2013년 8월에 전면적 협력관계로 격상된 바 있다.

시험대에 오른 미국의 재균형전략

2014년 3월, 미국은 베트남과 관계를 개선하고 군사협력을 모색한데 이어 5월에는 필리핀의 기지사용 가능성을 열고 합동군사훈련을 가지면서 남지나해의 영해분쟁에 있어서 노골적으로 필리핀을 지지하였다.

중국이 5월 2일, 시사군도 일대에서 원유시추에 나선 것은 “재균형전략”이란 이름으로 조여오는 미국의 중국포위를 깨뜨리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시사군도에서 중국의 원유시추행위가 지속된다면 베트남이 시사군도에서 배타적 경제수역의 권리를 요구하는 것에 앞서 시사군도 일대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높이고 차후 중국이 시사군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는 것으로 나갈 수 있어 영해분쟁에서 중국이 한층 유리해진다. 이를테면 우리 정부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중국이 시사군도 일대에 병력을 배치할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이다.

난사군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난사군도는 중국, 필리핀, 베트남, 말레이시아, 대만 등의 영해권이 겹쳐서 시사군도보다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지만 어선 나포에 대해 중국 외교부가 강하게 반발한 것은 남지나해에 실질적으로 진출해 미국의 중국포위환에 맞서 중국의 지역패권을 구축하겠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물론 이 시점에서 중국의 패권에 선과 악의 기준을 대입할 수는 없다. 미-중 관계를 비롯한 국제관계는 패권논리가 아니라 상호간 호혜평등의 원칙에서 풀어나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백한 것은 미국의 대중국포위환이 동남아시아에서 중국의 도전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제 남은 것은 동북아이다. 우크라이나 사태와 중동사태, 그리고 남지나해 사태 등 모든 상황은 역시나 동북아에서 전략적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미국의 포석에 지역국가들이 도전한 것이기 때문이다.

동북아에서 미국은 어떤 도전을 받고 있는가, 관심이 집중되는 지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