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는 임 병장 사건] 한숨이 절로 나오는 체포작전

By | 2018-06-29T17:03:20+00:00 2014.07.11.|

동부전선 GOP 총기난사 사건은 총기사건이란 그 자체로 국민들의 우려를 샀지만 이후 군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대응과정은 국민들의 우려를 넘어 탄식을 사기에 충분하였다.



총체적 난국이란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군을 이 상태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근본부터 싹 뜯어고쳐야 한다는 것이 바로 지금의 민심이다.



수색팀끼리 오인사격



사건초기, 군과 그리고 언론은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임 병장이 이미 방어선을 뚫고 나왔을 가능성도 제기하였으며 일부에서는 월북가능성까지 제기하기도 하였다.



특히 수색과정에서 소대장 김 모 중위가 총격전 끝에 팔에 관통상을 입자 이를 임 병장과의 교전으로 기정사실화하기도 하였다.



일례로 <동아일보>는 군(軍)당국 등을 인용하며 6월 22일 오후 2시20분께 강원 고성군 현내면 명파초등학교 인근에서 총기난사 후 무장 탈영한 임 병장과 추격중이던 군인들 간에 소총 탄환 60여발을 주고받는 교전이 벌어졌다고 보도하였다. 교전은 사건발생 16시간만에 야산으로 숨어든 임 병장을 찾기 위해 수색 작업에 박차를 가하던 군인들이 임 병장을 발견해 교전이 벌어졌으며 소대장 1명이 팔에 관통상을 입어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당시 교전은 이후 임 병장의 행적과 아무 관련이 없는 허무한 교전이었다.



육군은 7월 2일, 명파초등학교 인근에서 벌어진 교젼은 임 병장과 추격조간의 교전이 아니라 임 병장 체포를 위해 투입된 수색팀끼리의 오인 총격전이었다고 밝혔다. 군의 한 소식통은 2일 “당시 수색 작전에 투입됐던 소대장 김모 중위 등 수색팀을 대상으로 진술을 청취하고 현장 수색 결과 등을 통해 김 중위가 오인 사격으로 팔에 총을 맞은 것으로 확인했다”고 밝혔다. 게다가 군은 현장에서 김 중위와 2명의 수색팀이 발사한 총탄의 탄피를 수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빈 총 든 관심병사 대거 투입



<중앙일보>는 군 당국이 임 병장 검거작전 과정에서 실탄도 지급하지 않은 채 ‘A급 관심병사’를 대거 투입했다고 보도하였다.



국방부 관계자는 6월 25일 “임 병장 추격 과정에서 실탄없는 관심병사가 투입된 것은 맞다”며 “검거 작전에 투입된 병력 부족이 우려돼 모 대대의 A급 병사 30여명도 작전 현장에 투입했다”고 밝혔다.



자살우려가 있어 A급으로 분류하는 관심병사들을 A급 관심병사였다가 총기사고를 낸 임 병장을 체포하는데 투입시켰다고 하는 것이다. 체포작전 과정에서 이들이 받을 심리적 충격은 애당초 고려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다만 이 관계자는 “A급 병사들에게는 실탄을 지급하지 않았다”며 “한 조에 편성된 간부가 소지하고 있다가 교전이 예상되면 그 때 실탄을 지급하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실탄을 지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A급 사병들에게 미리 실탄을 지급하면 사고자(임병장)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함부로 줄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만나고도 세 차례나 놓쳐



임 병장은 사고 직후 사고현장을 멀리 벗어나지 못한 채 인근지역에 머물러 있었다. 국방부는 7월 1일, 동부전선 GOP(일반전초) 총기난사 사건 관련 임 병장 생포 작전과 관련해 “당시 3중 포위망을 만들었고 (임 병장은) 그 포위망 중 가장 안쪽에 있는 1차 포위망을 넘어가지 못하고 포위망 속에서 결국은 생포가 됐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사고발생 이후 촘촘한 군의 경계를 어떻게 뚫을 수 있었을까?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것은 사건발생일인 6월 22일도 그러하였으며 다음날인 23일에도 군이 임 병장을 세 차례 이상 마주치고도 놓아줬다는 사실이다. 육군 고위 관계자는 7월 3일, 국회 국방위에서 “군 수색병력은 (사고 이튿날인) 지난달 22일 오전 11시16분과 56분, 지난달 23일 오전 2시13분쯤 세 차례 임 병장 추정 인물과 접촉했다”고 밝혔다. 임 병장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접촉 시 ‘훈련병인데 심부름을 간다’ ‘피아 식별띠를 가지러 간다’고 둘러대면서 빠져나갔다. 세 번째에는 수하를 하자 암구호를 잊어버렸다고 답한 뒤 도주했다는 것이다. 




이는 군의 체포작전이 총체적으로 허술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준다. 병장이 훈련병이라고 둘러댔다고 하지만 가까눈 거리에서 병장 계급장이 보였을 것이다. 피아식별띠를 가지러 간다는 대화를 한 것은 매우 근거리에서 접촉했다는 것인데 이는 체포작전에 투입된 장병들이 임 병장의 인상착의도 몰랐다는 것이 된다.



무엇보다 세 번째, 암구호를 잊어버렸다고 진술한 임 병장도 문제지만 그렇다고 이를 내보내 준 장병들도 심각한 기강해이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임 병장은 어떻게 임기응변으로 “암구호를 잊어버렸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군대에서 암구호를 잊어버리면 곧 적군으로 간주, 체포 대상이 된다. “암구호를 잊어버렸다”는 말은 “내가 바로 임 병장”이란 말과 같지 않은가? 그런데 임 병장은 태연하게도 곧바로 체포될 수 있는 “암구호를 잊어버렸다”라고 대답하였다.



이는 전방부대 전반적으로 훈련시에 암구호를 잊어버려도 통과되는 것이 관행처럼 굳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임 병장은 자신의 군생활 경험을 통해 암구호를 잊어버려도 큰 문제를 삼지 않았던 군생활을 기억하고는 “암구호를 잊어버렸다”고 하고 빠져나왔다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몰라도 빠져나올 수 있는 암구호는 대체 왜 만드는 것인지 심각히 묻지 않을 수 없다.



체포 후 언론에 대역 공개



수많은 논란 속에 어쨌거나 군은 6월 23일, 임 병장을 생포하였다. 언론은 응급실 앞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들것에 실려 강릉 아산병원으로 이송되는 임 병장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6월 24일, <YTN>은 더욱 충격적인 사실을 보도하였다. 당시 응급차량에 후송되어 취재진에 공개된 사람은 임 병장이 아니라 대역이었다는 것이다.

국방부는 이를 강릉아산병원의 요청이라고 밝혔다.



강릉아산병원 측에서 ‘응급실 앞에 취재진이 많아 진료가 제한되니 별도의 통로를 준비하겠다’면서 국군강릉병원에 가상의 환자를 준비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병원 관계자는 “강릉아산병원은 응급실로 들어가는 길목이 좁아 구급차가 들어가기 어려웠고 임 병장의 혈압도 매우 위험한 수준이어서 곧바로 처치하지 않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며 “이런 점 때문에 강릉아산병원에서 요청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변명을 한다고 군의 문제점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찌되었건 대역을 내세운 것은 응급실 앞에서 포토타임을 갖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응급실로 들어가는 길목이 좁으면 사진을 찍지 않고 곧바로 들어가면 된다.



결국 군은 임 병장 체포사진을 대대적으로 찍게 해서 생포결과를 전국적으로 알리기는 해야겠는데 병원 앞에서 어수선한 포토타임을 갖다가는 임 병장의 생명에 지장이 있을 것 같으니 사진촬영에 대역을 내세우자는 의견이 대두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당시 대역으로 투입된 장병의 심정은 어떻게 보아야 하겠는가. 탈영병의 대역을 맡아 기자들 앞에 사진으로 나오는 것도 국가를 위한 군 작전의 일환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가.



임 병장 체포에는 연속적으로 실패하던 군이 언론플레이에는 전광석화같은 기동성을 과시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주민도 분개한 군의 허술한 대응



<뉴시스>는 6월 23일, 군의 오인사격 현장에 있었던 K씨를 인터뷰하였는데 이 자리에서 K씨는 당시 목격장면을 생생하게 증언하며 군의 허술한 대응을 질책하였다.



이 자리에서 K씨는 “이날 교전현장 근거리에서 지인들과 현 사건에 대해 애기를 나누던 중 주변 철뚝과 논에 군인들이 경계태세를 갖추고 있어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자리를 일어서던 중 갑자기 따~땅하는 총소리가 들려 상황을 유심히 지켜봤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K씨는 “당시 소대장을 포함해 4명의 추격조들이 축사 옆 소나무 근처에서 야산으로 수색하고 있었으며 이들과 불과 50여m 떨어진 곳에서 임병장이 이들을 목격하고 선제사격을 가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에 추격조들은 대응 사격도 없이 뒷걸음치며 순식간에 현장에서 사라졌으며 얼마후 지나 산정상으로 도주한 임병장을 추격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에 K씨는 “탈영병이 바로 코 앞에 있는데도 사격을 가하자 즉각 대응하지 못하고 뒷걸음치며 도망가는 모습을 보고 작전에 나선 군인들이 한심스럽게 생각했다”며 “총을 갖고서도 도망하면서 어떻게 적을 잡을 수 있겠느냐”며 군 당국에 대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총소리가 났다고 해서 대응 사격도 없이 뒷걸음질치며 순식간에 현장에서 사라지면 추격의 의미가 없다. 군 작전을 하는 것인지, 자신은 총격에 연루되기 싫은데 억지로 끌려나왔다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모습이다.



현 체제로는 절대 바뀔 수 없는 국군의 참을 수 없는 한심함



이러한 총체적인 문제는 현행 군 징병제를 유지하는 이상 개선될 수 없다. 군은 60만 장병을 일괄적으로 징집하고 있지만 이들에게 “군복무를 왜 해야 하는지”를 설득력있게 설명하지 못한다.



군은 장병들에게 대북우월의식을 심어주느라 정신이 없다. 그러다보면 장병들은 “북한군은 허술하고 우리는 선진강군인데, 거기에 주한미군까지 있는데, 내가 왜 여기서 시간을 허비하고 있지?”란 심각한 자기회의를 피할 수 없다.


게다가 한국군이 선진강군이라고 하면서 주한미군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작전통제권을 미국이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군의 논리가 더욱 앞뒤가 맞지 않는다. 북한이 핵을 가졌기 때문에 우리가 북한의 핵공격에 대비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핵폭탄을 맞을 바에야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처럼 남북교류로 긴장을 완화해서 핵이란 말이 나올 상황을 안 만들면 되는 것이고 남북교류협력비용이 각종 군사무기보다 비용도 훨씬 싸지 않은가.



결과적으로 오늘날 군의 장병교육으로는 1990년대에 태어난 신세대 장병들의 군복무의지를 전혀 만들어낼 수가 없다. 이러다보니 군의 기강은 허물어질 수밖에 없고 통제불능 상황으로 갈 수밖에 없다.



군대에서 보내는 1년 6개월이 그토록 지겨운 예비군 훈련보다 보람차다고 누가 자신할 수 있겠는가.
이대로는 안된다. 지금의 군대체제는 근본부터 싹 바꿔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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