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다음 날인 6월5일이 마감입니다.” 내 원고 ‘담당’인 차형석 기자의 메시지가 전해진 순간, 이 글의 주제는 정해졌다. 내 아무리 경제 쪽 칼럼을 맡았다고 해도 여전히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주제를 잡아야 하지 않겠는가? 하여 밤새워 텔레비전에서 반짝이는 숫자들을 들여다보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지만 마땅히 쓸 거리가 떠오르지 않는다. 선거를 치르면서 ‘이거다’ 싶었던 생각들은 그저 ‘감’일 뿐 아무런 근거가 없다. 예컨대 “베이비 부머인 50대는 여전히 여당을 지지했을 거다” “이번에 그나마 야당이 참패하지 않은 것은 세월호 탓에 30~40대 앵그리 맘들이 마음을 돌렸기 때문이다” 등등이 그러하다. 확실한 것은 17개 광역시·도 중 13개 지역에서 진보 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되었다는 사실뿐이다. 세월호는 확실히 교육을 정치로부터 분리한 것처럼 보인다. 교육감 후보들의 정당 기호가 없다는 사실도 이런 결과에 일조했을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의 말대로 “한국의 역사는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아니 나뉘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는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적어도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기만 하면’이라는 가정 아래 우리가 애들에게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상상해보았을 것이다. 한국의 교육은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비교 대상이 될 만한 나라 중에서 최악의 자산불평등을 가진 나라(내가 일하고 있는 연구원에서 계산한 바에 따르면 한국의 피케티 지수 β(민간순자산/국민소득)는 7.4로 이탈리아와 일본, 프랑스보다도 높다), 임금격차 또한 세계 최악의 수준이며,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가 대학 서열에 따라 정해지는 나라에서 현재의 극단적 경쟁 교육은 필연이다. 말코큰뿔사슴의 끝없는 ‘등수 경쟁’이 가져온 불행한국에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 경쟁은 50만명이 한꺼번에 치르는 ‘죄수의 딜레마’다. 암기식 입시교육, 나아가 사교육을 안 할 도리가 없지만 모두 똑같은 노력을 한다면 등수는 그대로일 것이다. 아이만 괴롭히고 성과는 없는 경쟁, 모두에게 손해인 경쟁에 우리는 아이들의 생명을 내맡기고 있다. ‘할아버지의 재산,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승리의 비결이라는 우스갯소리는 이 게임의 핵심을 정확히 짚고 있다. 안 할 도리가 없는 경쟁이지만, 보통 집안이라면 거의 100%의 확률로 패배가 정해진 게임에 아이들을 몰아넣고 있다. 등수 경쟁은 ‘상대적 지위 경쟁’이다. 경제학자 프랭크(R. Frank)가 <경쟁의 종말>에서 지적했듯이 가장 나쁜 경쟁이다. 말코큰뿔사슴은 우수한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큰 뿔을 가지는 방향으로 진화했지만 결국 점점 큰 뿔을 가지게 된 이 종은 사자의 공격에 취약하게 된다. 등수 경쟁은 끝이 있을 수 없다.애서모글루(D. Acemoglu)와 크레머(M. Kremer), 그리고 미안(A. Mian)은 2008년에 고강도 유인(high powered incentive)이 ‘노력의 구성’(원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해야 할 노력)을 왜곡할 수 있다는 글을 발표했다.

예컨대 의료 분야에서 의사가 병원 수입을 늘리도록 장려한다면 그들은 고가의 장비를 불필요하게 사용하려 들 것이고, 기소를 많이 하는 검사에게 승진 기회를 더 준다면 그들은 범죄자를 양산하게 될 것이다. 교육 또한 그렇다. 학교들이 일제고사의 순위에 신경을 쓴다면 점수 올리기 좋은 과목만 집중적으로 가르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한국의 교육 실태를 알았다면 이런 주장의 가장 좋은 증거가 되었을 것이다. 애서모글루 등은 수익성이 유일한 목적일 수 없는 분야, 즉 공공성이 강한 분야에서는 ‘저강도 유인’을 사용해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한다.경쟁을 줄이기 위해서는 사회의 각종 불평등을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한다. 피케티가 제안한 자산세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물론 제아무리 진보적이라 할지라도 교육감 13명이 이런 근본적 치료를 하거나 대학입시 자체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평소에 50만명의 등수를 매기는 일제고사를 없앨 수는 있으며 사교육을 공교육으로 흡수하는 방법도 고안해낼 수 있다. 역사 교과서나 경제 교과서의 편협성을 누그러뜨릴 수도 있을 것이며 나아가서 ‘혁신학교’의 경험을 바탕으로 장기 교육개혁의 청사진을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아이들과 학부모, 그리고 교사가 이런 개혁에 동의하게 된다면 비로소 우리는 아이들을 이 거대한 ‘세월호’에서 꺼낼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과연 우리 아이들의 생명을 구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 13명 교육감이 그 답을 쥐고 있을지도 모른다.*본 글은 시사in Live에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