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세월호는 언제 어떻게 침몰하였는가. 현재 정부는 세월호 사고발생시간을 최초신고가 접수된 8시 55분으로 맞추고 있다.

스스로 바보가 되는 정부

그러나 진도군청이 사고 당일 전남도청 상황실로 보낸 ‘세월호 여객선 침몰 상황보고’에는 사고 발생 시각이 8시 25분으로 기록되었다고 한다. 더욱이 국립해양조사원은 세월호 침몰 시간을 8시 30분이라고 항행경보를 내렸다. 국립해양조사원 해도수로과 정우진 씨가 4월 21일 오전 <국민TV> 인터뷰에서 “해경이나 본부 상황실에 확인을 했는데, 여덟시 반쯤 일어났다. 그래서 저희도 여덟시 반으로 쓴 겁니다”라고 밝힌 것이다. 그러나 이는 해경 상황실에 사고가 공식 접수되었다는 8시 52분과 27분~32분의 차이가 나는 시간이다. 이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해경은 처음 사고를 인지하고 30분간 대응을 미뤘다는 것이 된다.




한편 주변 목격자들의 증언은 진도관제센터의 관제항적과도 다르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사고 당일 생존자 구조에 나섰던 정모(52)씨는 “미역을 캐러 나갔다가 사고가 났다는 연락을 받고 현장으로 배를 몰고 나갔는데 배가 이미 3분의 2 가량 물 밑에 잠겨 있었다”면서 “미역을 캐고 들어오다가 (마을 이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았기 때문에 오전 9시 훨씬 이전일 것”이라고 했다. 조도 주민 이모(48)씨도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미역 양식 때문에 사고 당일 새벽 일찍 나갔는데 큰 배가 오전 8시께 멈춰 있었다”고 증언했다. 주민 김국태씨도 “어업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커다란 배가 보여 무슨 일인가 싶어 시계를 봤더니 오전 8시 20분이었다”고 전했다.

한편 진도군청은 이후 사고발생시각을 8시 25분으로 기입한 것에 대해 담당자의 실수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진도군청과 국립해양조사원, 사고증언 주민들 모두 “한꺼번에” 시간파악을 “실수”한 것인가?

의혹은 세월호 사고 이후, 세월호의 항적기록 저장장치에 이상사고가 발생한데까지 미친다. <연합뉴스>는 4월 24일에 세월호 뱃길의 흔적인 항적을 저장·관리하는 해양 수산부의 선박자동 식별장치(AIS) 기록 저장 장치에 이상사고가 발생했다고 보도하였다. 해수부는 데이터베이스 훼손이 아닌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운영체제 이상으로 즉각 복구됐다는 입장이지만 초대형 해난사고 직후 발생한 항적기록 자료사고이기에 의혹이 커진다.

또한 세월호와 진도VTS와의 교신기록은 처음에는 없다고 부인되다가 이후 총 36군데가 편집된 의혹을 받으며 공개되었다. <김어준의 KFC>는 진도 VTS의 교신기록이 0.3초 단위로 음이 잘려나간 곳도 있으며 단순음을 갖다붙이는 방식으로 편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8시 52분은 승객이었던 단원고 학생이 배의 이상을 알고 신고를 한 시간일 뿐, 그 이전시간부터 배는 이상하였는데 이 부분이 밝혀지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세월호 선원들은 그 이전시간부터 이미 배의 이상상황을 보고했고 그래서 <TV조선>에서는 “인천발 제주행 오늘새벽 조난신고”라는 기사가 뜬 것으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정부는 사고발생시각을 8시 52분이라 고집하며 정부통합전산센터의 프로그램이 고장나고, 진도교신기록이 편집되며 수많은 목격자들과 언론을 모두 바보로 만들고 있다.

마스터키는 군산에서 15도 흔들림

그렇다면 세월호가 맹골수도에 들어서기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세월호는 새벽 1시경, 군산앞바다와 변산반도 앞바다에서 원인불명의 이유로 인해 일시적으로 15도 가량 배가 기울어지는 사고가 있었다. 세월호에 탑승했다 생존한 서희근씨가 5월 9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사고 전날 세월호가 변산반도와 군산 앞바다를 지나던 중 갑자기 15도 가량 기울었다가 바로 선 일이 있었다”고 밝힌 것이다. 서씨는 방송에서 “의자에 누워 있으니까 사람이 15도로 확 틀리면서 쓰레기통과 캔, 커피 이런 통들이 ‘우당탕’하고 나뒹굴어졌다”고 말했다. 해병대 출신으로 배를 많이 타보았다는 서씨는 “‘쾅’하고 잠깐 기울었다 원위치로 왔기 때문에 감각을 못 느끼는 사람들은 ‘그러려니’ 했겠지만, 나는 큰 배가 이렇게 충격을 받아 움직이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했다”며 “이상하다고 느껴 선상으로 나와보니 잔잔한 바다를 지나고 있어 예감이 안좋았다”고 덧붙였다. 




서씨의 증언대로, 6825톤 규모의 세월호는 파도에 의해 배가 흔들릴 수도 없을뿐더러 조타실의 조작으로도 순식간에 15도 가량의 기울어짐을 만들어낼 수도 없다. <KBS>는 배의 선장이 평소 배가 흔들렸다는 증언이 있고 세월호 이용 물류업체 관계자는 화물을 싣고 내릴 때 배가 기운다고 언급하였다. 그러나 이것도 배가 좌우로 출렁거리는 정도이지 쓰레기통과 캔, 커피들이 우당탕 나뒹구는 현상이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 군함이나 쾌속정도 아니고 화물트럭과 컨테이너 박스까지 싣는 6800톤짜리 대형여객선이 15도까지 급격히 휩쓸리는 원인으로는 “충돌설”이 가장 유력하다. 



원인은 충돌?

사고직후인 4월 17일, <CNN>은 해안경비대 예비역 대령인 피터 보인턴을 인용, “세월호가 바닷속에 있던 어떤 물체와 충돌했을 가능성이 많다”고 전했다. 보인턴은 CNN과 인터뷰에서 “배가 속도 때문에 기울기 시작한 뒤 한쪽으로 뒤집어진 것은 심한 손상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또 “충돌로 인해 엄청난 양의 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거대한 배가 순식간에 뒤집어진 것 같다”면서 “이는 심각한 손상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했다.

물론 CNN의 보도는 사고당일 진도수역에서의 세월호 침몰을 염두에 둔 분석이다. 그러나 순식간에 45도가 기울어지는 상황으로 충돌설이 제기되듯, 15도가 기울어지는 현상도 충돌설이 가장 유력한 원인이다. 이에 <진실의 길> 신상철 대표는 “군산앞바다 암초충돌설”을 제기하였다.

실제로 <JTBC>의 보도내용을 보면, 세월호의 좌현에 무언가에 긁힌듯한 자국이 나 있고, 이를 통해 세월호가 충돌하지 않았느냐는 의혹이 일었다.




그러나 새벽 1시경 발생한 흔들림을 단순한 암초충돌로 설명하기엔 무리가 있다. 만약 세월호가 정말로 1시경에 “암초”에 충돌하였다면,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가 군산에서부터 비정상 항해를 해서 이전부터 세월호를 주시하였고, 8시 52분에는 단원고 학생이 신고했다고 밝히면 된다. 언론도 “새벽조난신고”같은 내용을 삭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한 수심이 37m라는 세월호 사고현장과 달리, 군산앞바다의 수심은 평균 60m 가량으로 암초충돌 가능성도 희박하다. 그렇다면 세월호는 군산앞바다에서 무엇과 충돌했을까?

군산을 새벽에 지나간 세월호

대한민국 해군은 군산인근 앞바다를 군사훈련구역으로 선포하곤 해왔다. 국립해양조사원의 공지를 보더라도 군산인근 앞바다는 4월 16일과 17일에 걸쳐 군사훈련이 선포되어 있었지만, 훈련시각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다. 즉, 세월호가 지나간 밤 12시-새벽 2-3시 사이의 시간대에는 서해군사훈련이 공지되지 않은 것이다. 훈련 중인 잠수함과 충돌했다고 보기 어렵다.

다만, 당시가 공식훈련 중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충돌의 주체가 한국잠수함이 아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잠수함은 통상적으로 은밀한 기동을 중시한다. 실제 2001년 2월 9일, 하와이 오아후 섬 앞바다에서 원양 실습 중이던 에히메마루가 긴급 부상한 미 원자력잠수함 ‘그린빌’에 충돌돼 침몰. 실습생 13명 중 4명과 교원 2명, 선원 3명의 총 9명이 사망했다. 당시 미국잠수함은 잠망경으로 상황을 살피며 도주하였지만, 일본시민사회의 끈질긴 노력으로 1년만에 사고전반이 드러났다.

한국의 해역은 한미동맹을 내세워 미 해군이 제 집 드나들듯이 하고 실제로 올해 3월 3일, 미국 핵추진 잠수함 콜럼버스호가 독수리훈련에 참여하기 위해 부산항에 입항하기도 하였다. 물론 미국잠수함이 아니더라도 중국, 일본의 잠수함이 근해에서 정보를 수집할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일례로 2010년 천안함 침몰사건 과정에서는 “이스라엘 잠수함” 충돌설이 확산되기도 하였다.

군산앞바다에서 세월호를 15도 가량 기울이게 만든 원인이 무엇인가? 당국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신속히 조사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정권, 해경은 사고조사와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다. 정부는 군산앞바다 언급을 회피하면서 굳이 사고발생시간을 8시 52분으로 맞추고, 진도 VTS와 세월호의 교신기록을 편집하고, 조난당한 승객보다 선장을 먼저 구출해서 경찰간부의 집에 재웠으며 인양작업도 민간업자에게 일임하며 스스로 바보가 되고 있다. 한 마디로 말해 세월호의 항적기록에 대한 편집, 왜곡과 진술조작이 자행되지나 않았을까 하는 의혹을 정부 스스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