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 미국, 그리고 한국]




미국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 미국의 군사패권과 경제패권이 예전과 다르게 흔들리는 현 상황은 미국의 시대가 끝나감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제 세계인들이 미국을 동경하고 미국행 이주길에 줄줄이 오르는 시대는 종말을 고했다. 미국의 패권이 점점 균열을 더하고 있다.

일례를 살펴보자. 미국식 민주주의를 끊임없이 전파하는데도 불구하고 세계 도처에 끊임없는 혼란과 범죄, 반정부투쟁이 줄을 잇는 이유는 무엇일까?

미국식 민주주의가 확립되었다는 미국에 살고 있는 미국인들은 과연 행복할까?

현 시기 미국의 패권이 약화되고 있다는 가장 명확한 징표는 바로 미국이 추종하고 강조해 온 사상과 가치관이 세계인들로부터 배격당해 더 이상 존립하지 못한다는데 있다. 미국식 민주주의와 인권타령을 앞세웠던 팍스 아메리카나의 정치적 이념은 미국 안에서부터 무너져 내리고 있다.

1. 미국식 민주주의의 허구성

근대 이후 민주주의는 국가권력은 국민에게 있다는 주권재민의 사상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는 사람은 탄생하는 그 순간부터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보유한다는 천부적 인권사상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즉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에 기반해 모든 인간은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갖는다.

민주주의는 바로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한 자유, 평등의 기본권을 보장해주는 사회체제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각국들은 저마다 “민주주의”를 강조하며 스스로 민주국가임을 자처하고 있다.

각 나라들이 스스로 민주국가임을 자처하지만, 나라마다 내세우는 민주주의의 논리는 그 나라의 체제성격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그런 면에서 미국이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며 내세워왔던 나름의 가치관은 “미국식 민주주의”라 칭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18세기,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추구했던 이유는 신대륙 자본이 더 많은 이윤을 독차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의 독립은 미국인의 민족적 독립이 아니라 미국자본의 독립인 것이다. 미국은 또한 돈의 요구에 의해 인디언을 학살하며 대륙을 점령했고, 마찬가지로 돈의 요구에 의해 수천만의 흑인노예를 끌어왔으며, 역시나 돈의 요구에 의해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는 기간동안 수천만의 유럽빈민들을 이주노동자로 데려왔다.

아무런 전통과 질서도 없이 총격전이 난무하였던 서부활극의 무법천지 신대륙에서 미국인들이 결국 믿고 기댈 것은 오직 돈이었다. 이른바 “미국식 민주주의”란 것은 미국자본이 필요한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수천만명의 유럽빈민들을 이주민들로 고용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통제할 이념으로 등장하였다.




첫째, “미국식 민주주의”는 철저히 “미국, 미국인”이라는 국가주의의 틀어 묶여 있다. 단적인 예로 민주주의를 거론하던 미국에는 흑인노예제도가 있었으며 100년전만 하더라도 인종차별이 보편적이었다. 미국식 민주주의는 100년전까지만 하더라도 노예제도를 품었다.

미국식민주주의는 “미국인”과 “미국인이 아닌 인류”에 대해 민주주의의 적용기준이 다르다. 미국은 예로부터 미국인들의 안전을 위한다는 논리로, 공산주의와의 냉전도 불사하였으며 나아가 반공전쟁을 민주주의보다 앞세워왔다. 소련이 붕괴하자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천명하며 미국인들을 테러로부터 안전하기 지키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중동인들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고, 이른바 “테러용의자”에 대한 관타나모 수용소의 인권유린과 인신구속도 어쩔 수 없다는 이념을 유포하고 있다. 이는 철저히 미국인과 비미국인을 분리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모든 인간의 동등한 천부적 권리를 부정한 채, 미국시민권자의 권리만을 앞세우는 차별이 심각하다.

둘째, “미국식 민주주의”는 철저히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다. 이는 개별노동자들이 개인주의에 빠져 가족화된 상황에서 개별고용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자본의 노동통제에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노동이 집단화되면 단체협약을 체결해야 하며 자본의 이윤을 노동자조합에 빼앗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자본의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노동자는 개별화되어야 하며 결코 단결하지 못한 채 흩어져있는 모래알같은 존재여야 하는 것이다. 그 결과 자본주의와 샴 쌍둥이일 수밖에 없는 “개인주의”는 미국사회에서 독버섯처럼 자라나 인류의 지성을 갉아먹어 왔다.

“개인주의”가 횡행하는 가운데에서 독점자본에 고용된 미국인들은 개별노동자들로 파편화되어 결국 사회적으로 자본의 압도적 우위가 관철된다. 미국이 강조하는 “자유”는 정치활동의 자유, 사상과 결사의 자유가 아니라 “개인의 자유”, “유희의 자유”이다.

셋째, 미국식 민주주의는 인권의 논리가 아니라 자본의 논리에 의해 정치제도가 작동한다. 국민의 대표적 참정권인 투표권은 세금을 꼬박꼬박내는 중산층 시민권자에게는 친절히 제공되지만 세금을 내지 못하는 빈민에게는 제대로 보장되지 못한다. 미국의 정치제도는 민주당과 공화당의 담합구조가 100년을 넘고 있으며 이 두 거대정당의 존재로 인해 상당한 금전재부를 갖지 못한 이들은 선거에 출마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독점자본의 요구에 의해 출마한 정치인들은 독점자본의 요구를 관철하는데 집중한다. 결국 미국의 민주주의는 “부자들의 민주주의”라고 평가할 수 있다.

넷째, 미국식 민주주의는 외부국가에 폭력적으로 강요되고 있다. 이는 자주와 평화의 이름으로 미국자본의 이윤을 확보하는데 복무하는 것이므로 결국 인류의 보편적 이념에 배치되고 만다. 미국이 “민주주의 수호”의 이름으로 저지른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아프간전쟁, 리비아전쟁, 유고공습 등 수많은 전쟁들은 민주주의를 수호한 것이 아니라 “자본의 자유”를 추구하는데 그폈고 그들 나라의 민주주의는 대체로 파괴되었다. 오히려 미국군대가 휩쓸고 지나가면 무장폭동과 투쟁은 더욱 격화되었다. 결국 미국의 강압적 “자유”는 민주주의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미국독점자본의 합법적 이윤창출을 위해 “자본의 자유”를 구축한 것에 불과하다.

2. 미국인권의 허구성

자본의 이윤추구가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일어나는 미국사회에서 인간으로서의 기본권리인 인권이 지켜질 리 없다. 인권은 사람이 개인 또는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누리고 행사하는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인데 이는 개인으로서도 보장되어야 하지만 나라의 구성원으로서, 국민으로서도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권리이다. 즉 인권은 모든 국민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미국은 민주주의의 일반원리보다 자본의 요구에 우선해 작동되는 체제특성상, 인권은 독점자본의 이윤창출에 의해 변방으로 밀려나기 일쑤이다.

정기열 교수는 2003년 당시 마이클 파네티(Michael Paneti) 박사의 2003년 책 “더러운 진실”(Dirty Truths) 가운데 “미국의 숨겨진 대학살”(America’s Hidden Holocaust) 부분을 발췌하여 <통일뉴스>에 기고해 총체적으로 파탄난 미국인권 현실을 폭로하였다.

이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매년 2만7천 명의 미국인이 자살하며 2만6천 명은 집에서 목숨을 잃고, 2만3천 명은 살해당한다고 한다. 그 중 3만8천 명의 미국인들이 총기에 의해 목숨을 잃고 있다. 총기에 의한 부상자는 매년 8만5천 명 규모이다. 미국에는 매년 1천3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폭행, 강간, 무장강도, 강도, 도둑/절도, 방화범죄의 피해를 입고 있다고 한다.

매년 3천1백40만5천 명의 미국인들이 마리화나를 피우는데 그들 중 3백만 명은 중독자라고 한다. 미국인 6백50만 명이 헤로인, 크랙, 각성제/자극제, 환각제, 코케인 등 다양한 형태의 마약을 정기적으로 복용하고 있고 이들 중 5천 명 이상이 미년 불법마약복용으로 목숨을 잃는다. 매년 12만5천 명이 알코올 중독으로 목숨을 잃고 47만 3천 명의 미국인은 니코틴(흡연) 관련 병으로 조기 사망한다.

매년 3천7백만 명(즉 6명 당 1명)의 미국인들은 정서불안정으로 정신안정제(진정제)를 정기적으로 복용하고 매년 2천5백만 명(즉 10명 당 1명)이 정신병, 정서문제 등을 이유로 정신병치료, 정신요법 혹은 의학치료에 도움을 호소한다고 한다. 매년 28만 명의 미국인들이 정신병동에 갇힌다. 그들 대부분이 치료 명목으로 강력한 약물치료제인 정신안정제를 강제로 투여 받는다. 매년 4천만 명 이상의 미국인들이 건강보험이 아예 없거나 심각한 질병들을 치료받을 수 있는 보험혜택이 없다.

매년 2백90만 명의 미국아동들이 폭행, 상습적 굶주림 같은 가족의 심각한 무관심(방치), 학대에 시달리고 있다. 부모 혹은 집안 다른 어른들의 성적 학대, 폭력에 의해 집에서 도망치는 미국아이들 수는 매년 1백만 명을 넘는다. 성적 학대로 집 떠나는 미국아이들의 83%가 백인가정이며 매년 15만 명의 미국아이들이 실종되고 그들 중 5만 명은 영영 찾지 못한다고 한다. 매년 5천 명의 미국아이들이 그들의 부모나 조부모에 의해 살해당한다. 3만 명 이상 아이들이 학대, 방치 등으로 영구적 신체불구자가 된다.

1백만 명 이상의 미국아이들이 고아원, 소년원, 성인감옥에 갇혀 있다고 한다. 그들 대부분은 경미한 법규위반 정도로 혹은 아예 아무런 범죄배경도 없이 무기한 갇혀 지낸다. 그들 대부분은 가난한 가정출신 아이들이다. 미국에서는 가장 어리게는 7살에 이르기까지 90만 명에 달하는 아이들에 대한 불법착취노동이 행해지고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아동노동법(child labor law)을 어긴 경우로 형편없는 임금을 받고 농장, 부엌, 세탁 혹은 여러 다양한 가사노동에 내몰려 장시간 노동착취(길게 10시간까지)를 당하고 있다.

매년 40만명에서 200만 명의 미국여성들이 가정폭력 희생자가 된다. 가정폭력은 미국여성의 두 번째 사망원인이며 매년 70만 명 미국여성들이 강간을 당한다. 인구의 4천만 명, 즉 여성은 4명 당 한 명, 남자는 10명 당 한 명 꼴로 어려서 성추행 당한 경험이 있다.

감옥에 수감 중이거나 가석방, 집행유예, 불구속자 미국인 수가 510만 명을 넘는다. 미국인 수감자는 매주 1600명씩 증가하고 있어 1980년 이후 감옥인구는 두 배로 급증했다. 그리고 이들 수감된 미국인들의 40%가 마약사범이다.

200만 명 혹은 그 이상의 미국인들이 집 없이 길거리를 떠돌거나 혹은 임시대피소(makeshift shelter)로 내몰린다. 8천만 명의 미국인들이 “적정”(comfortable adequacy) 수입 이하를 받으며 이중 3천5백만 명은 빈곤수준 이하(below the poverty level)로 살고 있다. 1천2백만 명의 미국인들은 만성적 기아, 영양부족에 시달리는 가장 밑바닥 가난계층이다. 1억6천만 이상의 미국가정이 채무에 시달리고 있다.

3. 침략의 도구로 쓰인 인권논리

자기나라 인권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미국은 인권문제를 왜면한 채 정치적 반대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명분으로 해외의 “인권문제”만 제기한다. 대표적인 것이 미국이 내세우는 (R2P : Resposibility to protect), 즉 보호책임 논리이다. 이는 이른바 “보호”를 내세워 상대국의 내정에 간섭하는 행위로 국가간 평등을 선언한 국제사회 규범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미국은 어느 국가의 정부가 자국민의 인권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이에 대해 국제사회가 보호책임을 가진다는 논리인 R2P를 이용해 지금껏 코소보를 공습하고 리비아를 침공해왔다. 이제 미국은 R2P를 북한인권문제 제기의 근거로 거론하기에 이르렀다.

결과적으로 미국식 민주주의와 미국식 인권강요는 미국의 패권을 지키기 위해 활용되었다. 실질적 민주주의와 인권이 전혀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미국이, 다른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개입한다는 개념자체가 모순인 것이다. 무엇보다 노예를 부려먹던 나라가 일약 민주주의 전도사가 된 현실이 어불성설이다.

미국의 모순된 민주주의와 인권논리는 역으로 미국사회의 암울함을 입증할 뿐이다. 10%의 부유층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풍요로움을 안겨주지만 그 대가로 90%의 국민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위험과 고통을 요구한다면 그런 민주주의와 인권은 결코 지탱될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미국의 민주주의 왜곡과 인권왜곡은 미국의 패권이 도저히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의 구렁텅이로 접어들었음을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