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간첩” 조작사건(93)으로 본 국정원 프락치 공작

By | 2013-09-09T14:36:56+00:00 2013.09.09.|

국정원발 “통합진보당 내란음모 조작사건”이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국정원은 통합진보당의 이석기 의원과 당원 130여명이 지난 5월 12일 이른바 “RO”라는 조직모임을 하면서 내란음모를 꾸몄다고 주장하면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과 당원 3명을 구속했다. 

충격적이게도 국정원이 “내란음모사건”의 핵심 증거라고 주장하는 “녹취록”이 정작 국정원의 프락치 공작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주장이 날로 커지고 있다. 국정원은 이 녹취록을 ‘내부 협력자’에게 얻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9월 5일자 <서울신문> 보도에 따르면 공안당국 관계자가  “내부 협력자에게 활동비 차원의 지원을 했다”는 사실을 실토한 만큼 국정원이 매수한 ‘프락치’라는 통합진보당의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게다가 국정원은 사건 처음에는 프락치로 의심받는 인물이 잠적해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고 했으나 최근에는 법정에 출두 시키겠다고 한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국정원이 프락치를 빼돌려서 피신시키고 있는 정황이 농후한 것이다.

프락치는 원래 러시아어에서 나온 말로 ‘첩자’, ‘끄나풀’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프락치라는 말이 경찰이나 정보기관이 노동단체, 학교, 종교계 등에 심어놓은 첩자나 끄나풀 등을 지칭하는 말로 쓰여졌다. 주로 협박이나 회유, 매수를 통해 프락치를 만든 다음 프락치를 이용하여 정치에 개입하거나 공안사건을 조작해냈던 것이 지난 정보기관의 행태였다.

“남매간첩” 조작의 시작

비슷한 상황이 20년 전 1993년에도 있었다. 1993년 김영삼이 집권하자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에 대한 개혁이 논의되었다. 야권은 정권 초기 김영삼 정부에 협조하는 대가로 야당에 불리하게 되어 있는 정치관계법과 안기부법 개정을 요구했다. 1993년 6월 15일 여야 영수회담이 열렸고 이 자리에서 안기부법을 개정하여 안기부를 개혁한다는 내용에 합의가 이루어졌다. 안기부는 자신들의 개혁이 논의되자 이를 반전시킬 사건을 준비했는데, 이것이 “김삼석-김은주 남매간첩” 조작사건이다.

안기부는 1993년 9월 10일 일본에서 활동 중인 북한간첩에게 공작금을 지원받아 간첩활동을 한 혐의로 「반전평화운동연합」 정책실 연구위원 김삼석씨와 여동생 김은주씨를 구속했다. 당시 안기부는 김씨 남매가 92년 1월부터 93년 5월까지 3-4차례 일본에 건너가 안기부가 반국가단체라고 주장하는 ‘한통련’ 의장 곽동의, 안기부가 74년 울릉도거점 간첩단사건의 재일본총책이라고 주장한 이좌영과 권용부씨 등과 만나 군사기밀문건 등을 제공하는 등 간첩행위를 하면서 모두 1백20만 엔의 공작금을 지원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여동생 김은주씨는 1993년 9월 8일, 평소 알고 지내던 영화운동가의 부탁을 받고 한 일본인으로부터 서류 봉투를 넘겨받다가 안기부 직원에게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봉투 안에는 김일성 주석의 회고록으로 알려진 <세기와 더불어> 등 국가보안법상 문제가 될 수 있는 책자들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김삼석씨도 비슷한 상황을 겪었다. 이런 상황을 만든 인물이 바로 ‘배인오(본명 백흥용)’이다.

프락치를 이용한 조작사건

이 사건은 사건 초기부터 안기부 프락치 공작에 의한 함정 수사라는 의혹이 강력하게 제기되었다. 김은주씨가 현행범으로 연행된 것이 배인오의 부탁을 받고, 물건을 받아오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김은주씨는 연행 이후 배인오에게 속았다는 생각에 안기부 수사관에게 배씨를 잡으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배인오는 김은주씨가 체포된 이틀 뒤인 10일 오후까지도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이날 밤에야 ‘김은주씨가 안기부에서 나를 배후라고 주장하고 있다’며 피신했으며 다음날인 11일에야 시경 수사관이라는 사람들이 사무실에 찾아와 배씨를 찾다 돌아갔다고 한다.

1993년 10월 29일 <한겨레>신문에는 배인오씨가 대표로 있던 ‘남누리영상’에서 같이 근무한 박모씨의 인터뷰가 실렸다. 박씨는 “배씨는 북한 영화 수집을 위해 지난해 후반기부터 일본을 자주 드나들었으며 이때 ‘이내창처럼 고문받다 죽지 않기 위해 안기부 수사관들과 잠시 여행을 갔다와야 한다’며 며칠간 여행을 다녀온 일도 있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배인오는 피신 이후 잠적하여 재판이 끝날 때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함정수사라고도 볼 수 없는, 프락치를 이용한 완전날조’라는 의혹제기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1994년 10월 28일 김삼석씨에게 징역 4년에 자격정지 4년을, 김은주씨에게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확정 선고했다. 

불과 사흘 후인 10월 31일, 독일 베를린에서 배인오는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이 안기부의 프락치였다는 양심선언을 했다. 배인오는 안기부 수사관들의 얼굴을 담은 녹화 테이프와 안기부 수사관들과의 대화를 녹음한 녹음 테이프를 제시했다.

1994년 11월 17일자 <시사저널> [264호]에 따르면 배인오는 자신이 연출, 제작한 “이름없는 영웅들”이라는 영화를 국내에서 상영하기 어렵게 되자 미국 한청련과 영화 상영을 의논하러 한 달 동안 미국을 방문하고 온 직후 안기부 직원에게 포섭되었다. 이후 안기부는 배인오에게 지시를 내려 2년여 동안 7회에 걸쳐 일본과 독일 등지를 오가며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의 관계, △국내 운동권과 베를린에 해외본부를 두고 있던 조국통일범민족청년학생연합(범청학련) 등이 연계를 갖고 활동하고 있다는 증거를 포착하려 했다고 밝혔다. 또한 안기부는 배인오를 통해 공작을 펼쳐 김삼석, 김은주 남매를 이용하여 북한 영화 및 서적을 한총련에 전달하게 만들어 용공조작을 하려고 했다고 한다. 김삼석, 김은주씨는 배인오를 이용한 안기부의 공작에 이용당했고 안기부는 함정공작을 이용하여 간첩 조작 사건을 만들었다고 한다.

안기부가 활동비, 피신처 제공

배인오는 양심선언을 통해 안기부의 김성훈 과장과 윤동환 수사관으로부터 지시를 받아 활동했으며, 그 대가로 매달 약 100만원씩 받았다고 밝혔다.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1993년 당시 노동자 월 명목임금은 91만 6천원 수준이었다. 안기부는 배인오에게 노동자 임금보다 많은 돈을 지급하면서 배인오를 프락치로 활용했던 것이다.

안기부는 사건이 터진 후 배인오를 피신시켰다. 배인오는 피신 과정에서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양심선언을 준비했으며 안기부가 자신을 피신시키기 위해 차에 탔을 때 안기부 수사관의 얼굴을 찍은 녹화테이프와 녹음테이프를 만들었다고 한다. 안기부 김성훈 과장과 윤동환 수사관은 배인오에게 ‘본인과 국가안전기획부와의 관계 및 안기부와 관계된 정보를 발설할 경우 어떠한 처벌도 감수하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게 했다. 안기부는 각서를 받고 배인오를 경기도 파주의 낚시터 등에서 4달 동안 피신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안기부는 배인오에게 여행할 겸 베를린에 있는 범청학련 공동사무국에 가서 그쪽 분위기를 파악하고, 범청학련과 친밀히 연결된 국내 인사들을 파악해 오라는 지시를 내렸다. 안기부는 배인오가 민방위 훈련에 불참해 주민등록이 말소되었기 때문에 출국할 수 없었음에도 1994년 9월1일 새 여권으로 출국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 안기부장 권영해는 배인오(본명 박흥용)가 안기부의 프락치였다는 것을 시인했다. ⓒ 한겨레신문 캡쳐

1995년 1월 10일, 당시 안기부장이던 권영해는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한 자리에서 배인오가 안기부의 공작원임을 시인했다. 그리고 배인오가 찍은 영상에 나온 김성훈 과장과 윤동환 수사관 모두 안기부의 직원임을 확인했다.

위기탈출용 조작사건에 흔들리지 말아야

<시사저널> [264]호에 따르면 배인오는 1993년 7월, 안기부 김모 과장이 “지금 너와 내가 곤란한 처지에 빠져 있다. 하루속히 사건을 하나 만들어야 한다. 이번 대상으로는 김은주와 김삼석이 가능하다. 그러니 네가 잘해 주길 바란다”라고 밝혔다고 한다. 안기부법 개정, 안기부 예산 공개, 및 축소 분위기에 위기를 느낀 안기부가 “김삼석, 김은주 남매간첩사건”을 이용해 실적을 올리려 했다는 정황이 뚜렷하다. 위 내용은 “남매간첩 조작사건”이 위기에 빠진 안기부의 위기 탈출용으로 조작된 사건임을 보여주고 있다. 

안기부는 자신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하루속히 사건을 만들어야 한다”며 프락치를 이용하여 “김삼석, 김은주 남매간첩사건”을 조작했다. 2013년 국정원 역시 개혁요구를 무마하기 위해 프락치를 이용하여 법적으로 처벌 가능성이 없는 “내란음모”사건을 조작하고 있다. 전횡을 저지르고 있는 국정원을 더 이상 놔두어서는 안된다. 야당에 대한 국정원의 정치공작에 맞서 국정원을 해체시키는 투쟁에 적극 떨쳐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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