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

By | 2013-07-29T17:46:53+00:00 2013.07.29.|

각각 주기가 다른 원고가 어쩌다 한꺼번에 몰리면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필자에게 원하는 글이란 대부분 경제시론이라서 서로 다른 주제를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최악이었다.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 7개의 원고가 몰린 데다 부산과 제주의 강연, 그리고 어머니 생신까지 겹쳤으니 말이다. 게다가 이 원고는 일곱번째 글이다.버냉키 쇼크, 중국 부동산 거품 문제, 정부의 세수 부족, 그리고 ‘2차 투자 활성화 대책’ 비판까지 따끈따끈한 소재는 이미 바닥났다. 이제 남은 것은 최근 고민을 시작한 사회적 경제의 금융뿐인데, 이제 겨우 ‘왜 이자를 받아야 하는가? 또는 이자율이라는 게 도대체 뭔가?’라는 아주 기본적인 의문 언저리나 헤매고 있으니 이 상태에서 글을 쓴다는 건 언어도단이다.결국 ‘이자없는 돈, 나아가서 점점 가치가 줄어드는 돈(perishable money)’이라는 게젤(Gesell)의 아이디어가 어떻게 케인즈의 ‘일반이론’으로 연결됐는지, 그리고 그것이 지역통화나 협동조합 금융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널뛰기식 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글을 쓰기 전에 간단히 배를 채우려고 라면 물을 올려놓고 습관처럼 TV를 켰다. 8시에서 10시 사이, 그러니까 지상파 3사의 뉴스가 나오고 드라마가 시작되기 전까지 나는 보통 EBS를 본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테마기행>에 이어 <용서>가 방송되는 시간이다. 증오 또는 회한을 가진 두 사람이 외국 여행을 하면서 화해의 가능성을 찾는 프로그램이다. 배반으로 점철된 선후배 조직 폭력배, 탈북자 엄마와 홀로 북한에 남겨졌던 아들 두 편을 본 바 있는데 오늘은 제목이 ‘1981년 남영동’이다.에 출연한 유동우(오른쪽)씨 부녀. ⓒEBS” src=”http://www.pdjournal.com/news/photo/201307/39179_39603_3753.jpg”>▲ EBS <용서>에 출연한 노동운동가 유동우(오른쪽)씨 부녀. ⓒEBS이날 방송은 유동우(본명 유해우)씨의 이야기였다. 내 대학생활 초기,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책, <어느 돌멩이의 외침>의 바로 그 유동우다. 1981년이면 ‘학림사건’이 있었던 시기다. ‘학림사건’에 연루된 그는 남영동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고 외상 후 후유증으로 그 기억이 되살아날 때마다 몇 달씩 노숙을 했고 이를 견디지 못한 아내와 이혼을 했다.어린 딸은 이제 30대로 두 아이 어머니다. 딸의 초등학교 이후 삶에서 아버지는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존재였을 뿐이다. “아버지가 정의로워서 결혼했다. 나를 희생하기로 했다”고 말하는 어머니의 사랑이 절절한 만큼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깊어졌을 것이다. 유동우씨는 작년에 의료인권연구소에서 치료를 받으면서 비로소 자신을 추스를 수 있었고 남영동의 고문도 이제야 털어 놓았다.아버지와 딸은 8박 9일 동안 인도네시아 발리의 산촌과 바닷가를 여행한다. 순박한 시골 사람들은 아침에 생긴 불화를 그 다음 날까지 이어가지 않았고 마을의 최고령 할머니는 단지 따뜻하게 포옹하고 손을 잡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아버지는 죽은 자의 조각을 하는 동네 명인에게 기술을 배웠고 여행 마지막 날 딸의 조각상을 주며 용서를 빈다(미술에 타고난 재능을 지닌 게 틀림없다).이 땅에 유동우씨와 같은 ‘돌멩이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만큼의 민주주의조차 누리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아버지는 딸에게 “너를 위해 민주화 운동을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모두를 위한 그의 희생은 그 딸마저 희생시켰다. 고문은 그 가족들도 100% 외상후스트레스를 겪게 만들고 삶의 고달픔은 결국 가족을 해치기 일쑤다.그 시절 어떠한 보상도 바라지 않았다지만 유동우씨는 현재의 민주주의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일까? 이렇게 공개적으로 딸의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일까? 이익은 사회 전체에 돌아갔고 손실은 개인에게 집중되었다. 미국이건 한국이건 금융위기 때마다 우리는 이익이 나면 개인이 취하고 손실이 나면 사회가 떠맡는 사태를 목격했다. 물론 위기를 일으킨 자들의 가족이 한을 품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런 불균형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프로그램 막바지에 딸은 아버지를 용서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이런 사회적 딜레마는 협동에 의해서만 해결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이타적 개인의 희생이 선행되어야만 이 해법도 가능해진다. 딸이, 아니 우리 사회 모두 여기까지 이해하고 진정으로 유동우씨에게 감사할 때 그의 회한은 비로소 풀리는 것이 아닐까. * 이 글은PD저널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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