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미군범죄 고발 – 2. 전쟁범죄

By | 2018-06-29T17:03:37+00:00 2013.06.25.|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범죄적 행위는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는데 그친 것이 아니다. 전쟁수행의 방법이 비인륜적이고 잔인하게 진행되었다.

전쟁범죄는 전시에 자행되는 범죄행위들로, 국제법에 따라 처벌할 수 있는 위법행위이다. 전쟁범죄는 침략범죄와 인도적 범죄 행위가 모두 국제형사재판소의 관할범죄에 해당하며 이에 대한 어떠한 시효도 적용되지 않는 국제적 중범죄이다.

전쟁포로에 대한 생체실험설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장을 억류하기도 했던 거제 포로수용소]




강정구 교수의 논문 “한국전쟁과 양민학살”에 의하면, 미군은 전쟁포로에 대한 생체실험을 자행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그 첫째는 전쟁포로를 대상으로 총기의 성능시험을 하였다는 주장이다.

1992년 12월 19일 한겨레신문은 한국전쟁 당시 거제 제6포로수용소가 있던 경상남도 거제 부근 농지에서 경지정리작업을 하던 중 큰 병속에 넣어진 채 비옷에 쌓여있는 이들 문서를 발견해 거제군 공보실에 신고한 사실을 보도하였다고 한다. 이 자료가운데 ‘불란서 파리 세계평화옹호대회 귀중’이라는 제목의 편지는 속옷을 찢어 만든 가로 80cm, 세로 1백20cm크기의 광목에 인민군 포로들이 포로수용소 내부상황을 폭로한 듯한 내용이 읽힌다. 인민군 포로들은 잉크로 ‘미군이 북한포로들을 일렬로 세워 놓고 총기 성능시험을 하고 있다’ ‘세균무기실험 등 생체 실험을 하고 있다’ ‘세계평화를 위해 애쓰는 여러분들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는 등의 내용을 적고 편지 끝 부분에 ‘피의 섬 거제도에서 제6수용소 전체 인민군 전쟁포로 일동’이라고 쓰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엽서만한 크기의 종이에 깨알같은 글씨로 활동계획을 적은 기밀문서 30점도 발견됐다고 한다.

그 둘째는 전쟁포로를 대상으로 독가스와 세균무기를 실험하였다는 주장이다.

심지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는 1952년 5월 7일부터 6월 10일까지 포로수용소장인 F. T. 도드 준장이 인민군 포로들에게 억류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이 당시 포로들이 도드에게 요구한 4개 조항 가운데 제1조항이 “폭행, 모욕, 고문에 의한 심문, 혈서의 강요를 중지하고 위협, 학살 독가스와 세균무기 실험중지, 국제법에 의한 전쟁포로의 인권과 생명의 보장”이다. 강정구 교수는 이를 통해 볼 때 거제포로수용소에서 독가스와 세균무기 실험을 단행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폭격

한국전쟁 당시 미군은 이른바 네이팜탄으로 불리는 소이탄을 북한 전역에 투하하였다. 소이탄은 탄두에 섭씨 3000도 가량의 고열발화하는 소이제를 넣은 폭탄으로 공중에서 폭발하며 수십개의 자탄으로 분리되어 광범위한 민간인 거주지역을 모조리 불태워버리는 공격무기이다.

홍동근목사는 미완의 귀향일기란 책에서 1950년 가을, 미군폭격기 B-29가 80대 이상 연 사흘 신의주를 폭격하고 특히 소이탄으로 폭격하여 전 도시를, 집과 사람을 불로 태워버려서 신의주 20만 사람의 2/3의 사람이 타 죽고 도시의 80%가 잿더미가 되었다고 전했다. 홍 목사는 문자 그대로 무차별 야만적 폭격을 하여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모두를 불태워버렸으며 거기서 홍 목사의 작은 형님과 형수님과 철이가 불에 타 죽고 수 없는 동족의 부녀자들이 불타고 내 배움의 고향이 재가 되어 없어졌다고 밝혔다. 큰 형님 말씀이 그 불기둥으로 신의주의 밤이 붉었고 낮에도 타는 연기로 하늘이 먹구름이 되었다 했다는 것이다.




특히 미군의 폭격이 집중되었던 평양의 상황은 매우 심각하였다. 강정구 교수는 “조국: 어느 북조선 인민의 수기” 중

평양시내 건물이란 건물은 하나도 남아있지 않고 모두 부서져서 허허벌판이 되어 있었다. 더구나 평양시민들은 오갈 데가 없이 부서진 집 속에 토굴 비슷하게 파놓고 살아가는데 마치 원시인들 같았다. 도시 전체가 완전히 빈민 소굴이요 난민 소굴이었다. 식량도 동이 날대로 나버렸고 비바람을 피할 천막이나 움집조차도 없었다. 굶주리고 병든 사람이 하나 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살아 움직이는 사람보다 죽어 나자빠진 시체가 더 흔했다. 아니 살아있는 사람도 반쯤은 죽어 있었다.

라고 인용하였다.

특히 이 과정에서 8000미터 상공에서도 식별할 수 있도록 옥상에 적십자 표시를 해 놓은 병원도 미군의 폭격대상으로 되었으며 심지어 미군은 시한폭탄을 떨어트려 폭격이 끝난 이후에도 폭탄이 폭발하는 상황이 잦았다고 한다.

결국 한국전쟁의 와중에 평양의 인구는 50만에서 5만으로 줄어들었다고 한다.

미군폭격의 피해는 실로 막대하였다고 한다: 북한은 미군폭격으로 인해 최소한 인구의 12-15%가 죽임을 당했고, 5천여 개의 학교, 260여 개의 극장과 영화관, 1천여 개소의 병원, 2천8백만평방미터의 주택 등이 파괴되었고, 25만두의 소, 38만두의 돼지, 37만 정보의 농지피해, 관개시설 특히 저수지 댐의 파괴로 인해 1953년의 알곡생산은 1949년에 비해 88%로 감소되었으며, 8700여동의 공장과 생산설비 등이 파괴되어 1949년에 비해 1953년은 전력공업은 26%로, 연료공업은 11%, 야금공업은 10%로, 화학공업은 23%로 감소되었으며, 철광석, 선철, 강철, 조동, 조연, 전동기, 변압기, 유산, 화학비료, 카바이드, 가성소다, 세멘트 등 생산시설들은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주장한다.

미국은 또한 모내기가 끝난 장마철에 댐을 폭파시켜 인위적인 대홍수로 27마일의 계곡과 평야를 휩쓸어버리고, 범람한 대동강 물은 평양시와 인근 주거지역에 인명과 재산, 그리고 생존의 기초인 쌀 생산에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고 한다.

세균전 만행

6월 17일, 아랍권 알 자지라는 한국전쟁 시기였던 1951년, “인간과 권력”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미 합동참모본부가 작전 상황에서 세균전을 위한 특정 병원체가 얼마나 효과를 발휘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대규모 현장 실험(field tests)를 해보라는 명령을 내린 문서가 발견됐다고 폭로하였다.




[알 자지라가 폭로한 미 합동참모본부의 세균전 문서]




<알자지라>는 51년 9월 21일자로 나온 이 문서를 미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찾았다고 밝혔다. <알자지라>는 일제가 세균전을 위해 만든 731부대가 습득한 전문지식을 미국이 차용했다면서, 당시 미국이 치르고 있는 전쟁은 한국전쟁뿐이어서 합참의 명령이 이행됐을 경우 실험을 할 수 있는 곳은 한국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북한당국은 미군이 1952년 초부터 북한의 169개 지역에 세균탄 또는 살인용 미생물이 든 각종 물체를 총 804차례 투하해 페스트, 콜레라균을 보유한 파리, 모기, 거미, 개미가 생겨났고 이에 감염된 사람들이 심한 고통 끝에 목숨을 잃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이 주장하는 세균전 주장 : 한 겨울에 이미 부화한 곤충들이 사균폭탄 살포지역에서 발견되었다.]




이와 관련해 국제과학위원회 조사단이 1952년 북한을 현지 방문해 미군이 세균전에 관여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으나, 미국 정부는 지금까지 이를 전면 부인하고 있다.

<알자지라>는 또 과거 731부대원이었던 일본인이 ‘미국의 한국(북한 지역) 공격에서 과거 731부대 수뇌부가 미국을 도왔다’고 주장하는 비디오테이프 등 여러 근거 자료도 함께 소개했다. 미군이 한국전쟁 당시 731부대 수뇌부를 한국에 보내 각종 보고서를 작성케 했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진 것이다.

한겨레신문은 북한 주민 윤창빈씨는 “전쟁통이던 3월에 파리들이 커지고 갈색 빛을 띠더니 4월부터 장티푸스처럼 전염병이 돌았다”고 <알자지라>에 말했다고 보도하였다. 한국전에 참가했던 미군 조종사 케네스 에노크(85)는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직접 가담하지는 않았다”며 “그러나 (세균전이)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고 한다.

북한은 미군이 북한에서 세균전을 벌였다고 오래전부터 주장해왔다. 조지프 니담을 단장으로 영국과 이탈리아, 프랑스, 옛 소련 과학자들은 1950년대에 합동으로 조사를 벌여 미군이 북한에서 탄저균과 흑사병 균 등을 써 세균전을 벌였다는 보고서를 내놨다고 한다.

조지프 니담을 단장으로 영국과 이탈리아, 프랑스, 옛 소련 과학자들은 1950년대에 합동으로 조사를 벌여 미군이 북한에서 탄저균과 흑사병 균 등을 써 세균전을 벌였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하지만 미국은 이를 부인하며, 아직은 의혹으로만 남아있다. 20여년 동안 미군의 북한 세균전 실험에 대해 연구한 모리 마사타카 교수는 “미국은 세균전이 제네바 협정 위반이기 때문에 인정하지 않는 것 뿐”이라며 “나는 미군이 북한에서 세균전을 벌였다고 확신한다”고 <알자지라>에 말했다고 한다.

전쟁범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미군 

대다수 국민들이 일본군에게 치를 떠는 대표적 사례가 바로 731부대이다. 만주 중국인들과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자행하였던 일본군의 비인간성에 극도의 혐오감을 느끼는 것이다.

미군도 일본군 못지않게 세균전을 단행하였고 생체실험 논란에 휘말려 있으며 인명살상용 소이탄으로 민간인 학살을 자행하였다. 

미군이 한국전에서 우리민족에 대해 그야말로 히스테리적 광기에 해당하는 광란적 살인행각을 벌였다는 충격적 사실은 미군의 정서가 폭력적이고 불안정한 데에도 원인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한국전쟁의 전황이 미군이 바라는대로 풀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보더라도 나치독일과 일본 등 제국주의 군대들은 전선현황이 수세에 빠질 때마다 극단적인 인종청소의 광기를 보였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과 일본군의 중국인 대학살 참극은 패전을 앞둔 제국주의 군대의 두려움의 발로였다. 오로지 점령과 파괴만을 일삼던 제국주의 군대의 광기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될 수 없다.

전선이 교착되고 생사를 가늠할 수 없는 전쟁이 이어지자 미군은 무고한 민간인들을 대규모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미군이 저지른 전쟁만행은 전후 북한주민들이 매우 강경한 반미노선에 공감할 수 있는 사실적 근거를 제공하였으며 이후 60년간의 북미대결의 원인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미군은 한국전쟁의 범죄에 대해 역사적 책임을 져야 한다. 미국이 이제라도 국제사회 국가들과 대등하고 정상적인 관계를 가지고자 한다면 미국은 1950년의 전쟁범죄에 역사적 책임을 가지고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는 길에 책임적으로 나서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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