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5월 5일부터 10일까지 미국을 순방하고 한미정상회담을 하였다. 사상초유의 대통령 대변인 성추행 사건으로 얼룩졌던 이번 정상회담은 성추행 뿐 아니라 여러 가지 문제점도 동시에 남겼다.

이번 외교는 그 어느 정상회담에 비해서 철저히 저자세 외교로 일관되었다. 정상회담은 두 나라의 대통령이 대등한 자격으로 만나 서로의 국익을 조절하는 과정이다. 비록 큰 나라와 작은 나라가 회담을 한다 하더라도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심시하려 하고, 작은 나라가 큰 나라의 심사를 받아 통치기반을 구축하고자 한다면 이는 정상적인 외교라 할 수 없다.

환영받지 못한 박근혜 방문단

정부와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세계 속에 한국의 존재를 널리 알리고 정치인 박근혜의 존재를 세계 속에 부각시켰다고 자화자찬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방미에서 미국은 박근혜 정부를 예를 다해 환영하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뉴욕 JFK 공항에 도착 시 단 한명의 미국측 인사도 영접에 나오지 않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영접단은 최영진 주미대사, 김숙 유엔 주재 한국대표부 대사, 손세주 주뉴욕총영사, 민승기 뉴욕한인회장, 김기철 민주평통뉴욕협의회장, 윤석환 미한국상공회의소회장 등 요란하게 준비하였지만, 정작 미국측 인사는 아무도 없었다.




청와대는 이를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이 공식실무방문 (Official Working Visit)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미국이 주변국 정상의 방문을 맞이할 때는 의전에 따라 국빈방문(State Visit), 공식방문(Official Visit), 공식실무방문 (Official Working Visit), 실무방문(Working Visit)으로 나뉜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번 방문은 공식실무방문 (Official Working Visit)으로 세 번째 수준의 방문이라는 것이다.

미국이 최대로 예를 갖추는 국빈방문(State Visit)은 통상 21발의 예포를 쏘는 환영식이 백악관에서 열리고 환영만찬도 개최된다. 이미 미국은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전 대통령을 재임 중 한 차례씩 국빈방문자격으로 미국을 초청하였다. 다만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북-미 사이를 중재하고자 노력했던 노무현 정부만이 미국의 국빈방문 초청이 없었을 뿐이다.

반면 우리 정부는 미국 대통령은 고사하고 미국의 장관이 방문해도 국가원수급의 공항영접을 제공한다. 미 전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 현 국무장관 존 케리, 미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 모두 어수선한 민간 인천국제공항이 아닌 공군 성남비행장을 이용하며 의장대의 사열을 받는 등 국가원수급의 영접을 받았다.

이미 공항에 도착할 때부터 저자세였던 박근혜 정부의 대미외교는 미국체류기간에 본격적으로 문제가 터져나왔다.

깊은 감사로 채워진 굽신 연설

청와대는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방문을 3일 앞둔 5월 2일부터 한미정상회담에 집중하기 위해 일체의 공식일정을 잡지 않고 청와대 참모들과 정상회담 준비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 의회 연설에 상당한 공을 들인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미정상회담 준비를 한다며 공식일정을 일체 잡지 않았다는 5월 2일, 서울경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번 방미에 동행하는 조원동 경제수석과 주철기 외교안보수석, 이남기 홍보수석 등 참모들로부터 관련 현안을 보고받고 영어표현을 손질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라고 보도하였다. 대통령이 직접 영어표현을 손질한 것은 바로 미 의회 연설문이다.

하지만 이 연설은 상당부분 미국에 대한 깊은 감사로 채워진 굽신연설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 의회 연설에서 41번의 박수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 연설은 미국에 대한 “깊은 감사”가 지속적으로 이어진다. 박근혜 대통령은 “참전용사들에게 대한민국 국민을 대신해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라고 하였으며 특히 한국전 참전경력이 있는 미 의원 4명의 이름을 거론하며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하였다. 이어 박 대통령은 미국의 우정에 깊이 감사하였으며 3대째 주한미군에 근무한다는 모건가족을 가리키며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서 모건 가족을 비롯한 미국인들의 헌신과 우정에 깊은 감사의 박수를 드립니다.”라고 하였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30분의 연설 동안 미국에게 굳이 4번씩이나 “깊이 감사”하며 특히 한국 국민을 대신해서 깊이 감사한 부분은 대통령으로서 적절치 못한 연설이다. 입장을 바꿔 외국의 대통령이 우리 국회에서 연설을 하는데 네 번이나 “깊은 감사”를 드리며 특히 자기 나라 국민들을 대신해서 감사드린다는 연설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누가 보더라도 이는 “굽신 연설”이라 비판받을 소지가 다분한 것이다. 지난 2008년,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의 카트 운전을 마다하지 않았으며 친형 이상득이 “뼛속까지 친미”라고 보증하였던 이명박 전 대통령도 따라오지 못할 친미적 정서의 발현이라 할 수 있다.

영어 연설문 외우느라 식사도 미뤄

박근혜 대통령은 문제의 미 의회 연설을 영어로 하였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의 언어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데 박근혜 대통령이 세상인들이 극찬하는 자랑스러운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고 굳이 영어로 연설한 이유는 무엇인가?

물론 박근혜 대통령이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 시에는 보다 격의없는 대화를 위해, 친밀감을 높이기 위해 영어대화를 시도할 수는 있다. 오바마 대통령도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백악관 로즈가든을 통역없이 10분간 거닐었다고 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한국어를 모를테니 두 사람은 이 10분간 영어로 대화를 시도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화를 주고받는 회담이 아니라 사전에 정리된 문장을 읽어 내려가는 연설까지 굳이 영어로 해야 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데일리는 5월 8일자 기사에서 정부당국자가 “당초 우리말로 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미국인들에게 자신의 대북정책 등에 대한 정확한 취지를 전달하려면 영어가 적절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연설은 미국인의 일반적인 연설보다 속도가 현저히 느렸으며 미국인들이 듣기 어색한 발음도 섞여 있어 미 의원들이 오히려 듣기 거북했을 것이다. 차라리 박 대통령이 평소 익숙한 한국어로 연설을 하고 전문 통역관들이 연설문을 대독하는 편이 상호간의 의미전달에 훨씬 나았을 것이다.

심지어 박근혜 대통령은 미 의회 연설문을 통째로 외워버린 듯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 의회연설 당시 5월 2일부터 영어표현을 손질하였다는 연설문 문서를 지참하고 단상에 올라서는 30분 이상 연설문을 거의 보지도 않은 채 연설하였다. 이는 곧 박 대통령이 30분 분량의 연설문을 거의 통째로 외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이 30분 분량의 연설문을 통째로 외우려면 며칠의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 영어연설 연습을 위해 재미 한인사회가 대거 참석한 동포간담회에서 식사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뉴욕과 워싱턴에서 열린 동포간담회에 참석해서 식사도 하지 않고 숙소에 들어가 연설연습에 열중”했다고 보도하였다. 연설문에 대한 표현검토는 끝났고 본격적인 암송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입사면접을 앞둔 취업준비생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하였다. 일국의 대통령이라면 며칠간 영어연설문을 암송하는 그 시간에 재미동포들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고 유능한 통역을 대동하고 미국 인사들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며 우리 정부의 시책과 입장을 알리는데 집중하는 것이 맞다.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과의 면담에서는 예외적으로 영어가 아닌 한국어로 면담을 하였다고 한다. 대통령 자신은 영어보다 한국어 면담이 더 편한 것이다.

한미연합사령관에게 감사를 표시

박근혜 대통령의 저자세 외교의 출발점은 알링턴 미 국립묘지에서부터 있었다. 5월 6일, 알링턴 국립묘지 “대한민국 대통령으로써 한국전에 참전해 희생하신 분들과 역대 사령관들에게 국민을 대표해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고 발언하였다.

6.25 전쟁은 우리 민족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겼지만 전사한 미군들도 개개인으로 본다면 한반도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었지만 본의 아니게 이역만리 한반도까지 와서 처절한 전투 와중에 목숨을 잃었으니 이는 분명 다시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희생된 미군장병들을 추모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를 드렸으며 나아가 역대 사령관들에게까지 국민을 대표해 감사를 드린다고 발언하였다.

문제는 그 자리에 4명의 역대 한미연합사령관이 있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6.25 전쟁에서 전사한 미군들을 추모하는 것에서 훨씬 더 나아가, 역대 한미연합사령관들에게까지 국민을 대표해 감사를 드린 것이 되어버린다.

뼛속까지 친미인 일부 인사들을 제외한 대다수 우리 국민들은 한반도에 주둔하며 1958년에는 이 땅에 핵무기를 끌어들였고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구조적 원인을 제공해 온 주한미군의 주둔을 감사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주한미군 주둔의 실상을 보더라도 한국정부는 60년째 미군기지를 주한미군측에 무상으로 임대해주고 있으며 미군주둔 비용의 절반 가까이를 방위비분담금 형식으로 부담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군은 60년째 미군에게 전시작전통제권을 넘겨주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관계가 60년을 헤아리고 있다.

정작 한국 대통령은 한미연합사령관들에게 감사를 할 위치가 아니라 도리어 그들로부터 감사를 받아도 모자랄 위치에 있는 것이다.

GM 회장 요청에 법원판결까지 개입 

박 대통령은 급기야, 5월 8일 진행된 미국 상공회의소 주최 오찬에서 댄 애커슨 GM회장으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려다 사법권을 침해하고 말았다.

댄 애커슨 GM회장이 “두 가지 문제만 해결된다면 한국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we will not abandon Korea)”라고 하면서 ‘엔저’와 ‘통상임금문제’ 해결을 조건으로 달자 박근혜 대통령은 “GM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경제가 갖는 문제이니까 이 문제를 확실히 풀어가겠다”는 취지의 대답을 남긴 것이다. 이 대화내용은 조원동 경제수석이 밝힘으로써 세상에 알려졌다. 이는 GM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현 재판부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여 ‘통상임금’ 문제를 기업 입장에 유리하도록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과 같다. 대통령이 국내 법원의 판단과 다른 발언을 함으로써 사법권을 침해한 심각한 사례이다.

국민들은 당당한 대통령을 원한다.

우리 국민들은 미국에게 할 말은 하는 당당한 대통령에 목마르다.

노무현 대통령의 어록 “노무현이 우리와 나누고 싶었던 9가지 이야기”에는 2006년 6월 10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정상회담 당시 회의 4시간 전인 아침 7시에 도널드 럼스펠트 미 국방장관이 배석할 것이라는 언질을 받고 이백만 전 홍보수석은 책에서 “럼스펠트 장관이 노 대통령에게 항의성 질문을 할 것이라는 정보가 보고되었다.”고 전했다.

노 대통령은 보고를 받은 뒤 순간 얼굴이 일그러졌으며 “백악관 안보보좌관 스티브 해들리에게 전해라”며 “만약 럼스펠트가 입을 열면 한미정상회담이고 한미동맹이고 없다고 이야기하라”는 특별명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결국 럼스펠트 장관은 회담에서 아무 말을 못하였고, 그래서 ‘한미간에 이견이 없다’는 정상회담 결과가 발표되었다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적어도 미국에 앞장서서 추종하지 않았고 부족하지만 대등한 한미관계를 꿈꾸며 사소한 마찰을 빚기도 하였다. 그로 인해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 국빈방문 자격을 얻지는 못했지만, 미 의회연설에서 영어 연설문을 외워서 41차례의 박수를 받지는 못했지만, 제한된 상황에서도 북한과 미국 사이를 중재하려 노력한 결과 동북아 군사적 긴장을 해소할 9.19 공동성명을 타결하는데 기여하기도 하였다.

외교에서 국익은 선심쓰며 매달릴 때가 아니라 이렇게 밀고 당기는 협상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정치사상이 어제의 적과도 언제든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실용주의”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깊이 감사하며 머리를 조아린다고 국익이 생겨날 리는 없다.

협력할 것은 협력하지만 계산할 것은 계산하고 따질 것은 따지는 당당한 대통령. 국민들은 미국에게 할 말을 하는 대통령을 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