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이 5월 2일 전당대회를 열고 차기 당지도부를 선출하였으며 5월 4일, 전국대의원대회를 열고 당헌·당규 및 강령·정강정책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애당초 민주당은 2012년 대선을 패배로 규정하고 “민주당 회초리 투어”를 하면서도 정작 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 논란을 비롯한 각종 선거관련 논란에 대해서는 침묵하는 등 수세적 입장에서 당을 재편하려는 시도가 없지 않았다.

민주당이 5월 4일 대의원대회에서 통과시킨 당헌·당규 및 강령·정강정책 개정안도 기존의 우려가 고스란히 현실로 나타났다. 민주당이 지금껏 그나마 달성하였다고 자부할 수 있었던 “남북협력”과 “시민정치참여” 부분이 상당히 축소되어 민주당의 성과를 스스로 유실시켜버린 것이다. 민주당이 이처럼 우향우된 정책으로 회귀한다면 한국사회 보수화에 일조해버리는 결과를 낳지 않을 지 우려스럽다.

민주당은 진보개혁 연대의 한 축이자 야권의 맏형이다. 민주당이 국민지지를 회복하며 위력적인 야당으로 성장하는 길은 정치공학적 표계산에서 벗어나 중산층-서민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며 민생민주투쟁현안에 한 몸 바쳐 나서는 길 밖에 다른 길은 없다.

“통합”정신을 외면한 당명개정

민주당은 먼저 5월 4일 전국대의원대회에서 당명을 기존의 “민주통합당”에서 “민주당”으로 개정하기로 확정했다. 즉, “통합”이란 단어를 당명에서 삭제한 것이다.

민주통합당은 2011년 12월 16일, 과거 민주당과 시민통합당, 한국노총이 수임기관합동회의에서 합당을 결의하며 창당되었다. 즉, 민주통합당의 “통합”은 기존 민주당이 시민사회와 한국노총과의 합치고 연대한다는 점을 상징하는 단어이다. 기성 정치세력의 한계를 벗어나 시민사회와 노동진영의 현안에 귀를 기울이고 이들과 함께하겠다는 선언이었던 것이다.




이와 동시에 민주당은 당헌까지도 ‘민주당은 당원을 중심으로 운영하되,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기반으로 한다’는 문구를 추가 명시해, “당원중심”이 부각되고 시민사회의 의견을 반영한다는 종래의 입장은 “국민의 폭넓은 지지”로 약화되었다. 민주당의 개혁동력이 사실상 당원보다 개혁적 시민그룹에서 나타났던 점을 미뤄볼 때, 이러한 당헌의 변경은 당의 노선이 보다 보수화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물론 민주당이 여성의 정치참여 확대를 위해 당직, 위원회, 공직후보자 지역구 추천 시 ‘여성 30% 포함’ 조항을 기존의 ‘노력’에서 ‘의무’로 변경한 점 등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 부분도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장을 제외시켜 제한적이란 한계는 여전하다.

6.15 정신을 외면한 대북정책

민주당의 이번 정강개정에서 특히 우려되는 부분은 6.15 공동선언의 당사자인 민주당에서 6.15 정신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지난 2000년, 김대중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6.15 공동선언을 합의할 당시 주도세력이었으며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휴전선을 육로로 밟고 평양행에 올라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 선언)”을 합의할 당시 주도정당이었다.




민주당은 남북화해협력 사업에 우호적이었으며 실질적이고 주동적으로 참여해왔다.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등 굵직한 남북화해협력사업도 민주당의 적극적인 도움과 협력이 없었으면 우여곡절은 더욱 심각하였을 것이다.

그랬던 민주당이, 6.15 공동선언의 정신을 잊어가고 있다.

6.15 공동선언의 정신은 “민족자주”의 정신이다. 6.15 선언은 제1항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라고 합의하였다.

나라의 통일문제를 남북당사자가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은 외세에 의해 강요된 분단의 고통에 신음하는 우리 겨레의 확고부동한 원칙이다. 남북문제를 민족당사자가 해결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외세와 공조를 넓힐 수밖에 없다. 한반도 주변국 가운데 남북통일을 진심으로 지지하는 국가가 어디 있는가. 외세와의 공조로 통일을 이룬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민주당은 정강정책에 ‘한미동맹을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킨다’는 내용과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한다는 내용을 추가하였다. 미국의 동북아 정책 가운데 핵심과제가 바로 “북핵폐기”임을 상기한다면 민주당이 말하는 “한미동맹 발전”은 “한반도 비핵화”와 어우러져 결국 “북핵폐기”를 위해 한미동맹을 더욱 강화한다는 주장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은 ‘한반도 평화 위협’이라고 돼 있는 부분에서는 ‘북한의 핵 개발로 인한 위협’이라고 바꿔, 한반도 위기가 북한의 책임을 명기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정책전환이 굳어지게 되면 민주당은 동북아에서 지금까지 견지하던 “북-미대립 조정자”의 입장에서 이탈되어 “미국 입장 대변자”로 규정될 수밖에 없다. 북-미 관계에서 미국의 입장을 먼저 대변한다는 것은 바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전략적 입장이다.

6.15 공동선언은 또한 제2항에서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라고 합의하였다.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 연방제는 모두 상대 정부를 인정하는 것으로 연합제이건, 연방제이건 모두 쌍방간의 신뢰가 회복될 때 구축될 수 있다.

그러나 민주당은 이번 정책개정에서 “인도적 지원과 남북 화해협력을 토대로 인류보편적 가치로서 북한주민의 민생·인권에 대해 관심을 갖고 노력한다”고 명기해 북한당국이 내정간섭이라 반발할 수 있는 북한인권문제를 언급하였다.

남북관계에는 지난 60년간 반목과 대결을 계속해 온 만큼 남북관계를 해결하려면 남북의 신뢰를 먼저 회복해나간다는 하나의 원칙이 있어야 한다. 북한당국이 내정간섭으로 반발하고 있는 북한인권문제를 남북현안으로 제기하는 것은 어떠한 합의도 어렵게 만든다.

입장을 바꾸어 만일 북한당국자들이 남북회담장에서 서울역 노숙자들의 인권유린을 거론하며 남측정부를 비난하고 정책전환을 요구한다면 회담이 어떻게 성사될 수 있겠는가? 남측당국자는 감정적으로 반발할 수밖에 없다. 남측이 북측에 인권문제를 제기한다면 북측의 반발도 필수불가결인 것이다. 이는 화해협력에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다.

남측국민들이 북한주민들의 인권문제가 정 궁금하다면 백번 듣는 것보다 한번 보는 것이 더 낫다고, 남북교류협력을 확대해 북한의 곳곳에 직접 방문할 수 있도록 민간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당국은 남북간 신뢰를 회복해 북한주민의 종합적 생활수준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휴전선을 사이에 놓고 군사적으로 총을 겨누고 있는 현재, 남북은 지금 화해해야 하는 시점이다. 서로 총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 상호 내정문제를 끄집어내어서는 남북관계가 좋게 발전할 리 없다.

신(新) 민주당인가, 구(舊) 민주당인가

민주당은 이러한 당헌강령 변경을 완료하고 “新민주당 시대가 열린다”고 선언하였다 한다. 그러나 정강정책의 수정내용을 보면 민주당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2000년 6.15 공동선언 이전의 동교동 민주당 시절로 다시 돌아가는 것처럼 인식된다.

민주당은 상층정치인만 바라보고 정치노선을 결정하는 잘못된 악습과 결별해야 한다. 비록 안철수 의원이 진보와 보수를 모두 거부한다며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고 있지만, 민주당이 그에게 부화뇌동하다간 국민의 지지가 밀려나고 만다,

옛날 민주당으로 돌아가서는 21세기 국민들의 지지를 회복할 수 없다.

한반도 안보가 위기상황인 오늘날, 6.15 정신을 전면화하는 정당은 이제 통합진보당 밖에 남지 않았다. 민주당은 6.15 정신을 압살시키려는 보수진영의 논리에서 벗어나, 6.15 정신에 입각한 평화통일 정당으로 재정립하여야 한다. 그것만이 민주당이 살아남을 유일한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