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인과 젊은피>, 새사연이 진보적 정책전문가를 양성하고, 이들간의 네트워크 형성을 목적으로 하여 정태인 원장님을 중심으로 시작한 대학원생 대상의 세미나입니다. 시즌1에서는 2012년 7월부터 12월까지 약 15명의 대학원생들과 함께 경제철학에 관한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2013년 1월 16일부터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중 경제정책에 영향을 미친 10명을 선정하여 시즌2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수상자들의 연설문을 토대로 그들의 이론과 주장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현재 다양한 전공을 가진 20명의 대학원생들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13일에는 다섯번째 세미나가 열렸는데요. 1993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학자 더글라스 노스(Douglass C. North)에 관해 공부했습니다. 함께 읽고, 토론한 내용을 간략히 정리해보았습니다. 

노스는 제도경제학의 기초를 확립하고, 이론을 통해 경제사를 분석하는 연구를 한 공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습니다. 그는 기존의 신고전학파 경제학자들이 시장의 기능에만 집중하여, 여러가지 전제를 통해 현실과 다른 이상적인 시장을 가정하고 수학과 단순한 모형을 이용해왔으며 이는 제도와 시간의 중요성을 간과했다는 점에서 문제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스가 신고전학파 경제학과 정면으로 대립한 것은 아닙니다. 노스는 신고전학파의 틀 안에서 몇가지 가정을 수정한 정도인데요. 첫째는 인간의 완벽한 합리성을 가정했던 신고전학파와 달리 인간의 합리성이 제한적일 수 있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둘째로는 시간의 차원을 추가했고요. 셋째로는 제도 역시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집어 넣었습니다. 

수상 연설문에서는 특히 제도에 관해서 많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도는 인간의 상호작용을 구조화하기 위해 고안된 제약으로 법, 규칙 등의 공식적 제약과 관습이나 이데올로기 같은 비공식적 제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노스에게 제도는 완벽한 시장을 만들기 위한 도구였습니다. 기본적으로 그는 시장이 가장 효율적인 분배수단이라는 점에 적극 찬성했습니다. 다만 현실에서는 그런 완벽한 시장을 찾기 힘든데, 그것이 거래비용과 전환비용 때문이며, 이 비용들을 줄여서 완벽한 시장이 되도록 돕는 것이 제도의 역할이라고 보았습니다. 

노스의 입장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폴라니와의 대조를 통해서인데요. 폴라니는 시장의 방식이 있고, 사회의 방식이 있다고 구분한 후 시장의 방식을 사회가 담당해야 할 영역으로까지 확장시키면 문제가 발생한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노스는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시장이 효율적 자원 배분 수단이라는 기본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노스는 각 사회 별로 상이한 경제성과를 보이는 이유를 제도 때문이라고 보았습니다. 좋은 제도를 갖고 있는 사회일수록 높은 경제성과를 달성할 수 있으며, 좋은 제도는 거래비용을 줄여주고, 경쟁을 장려하여 학습을 고취시키는 제도라고 보았습니다. 그러한 사례로 19세기 미국이 재산권을 확립하고 독점을 금지하는 법을 도입한 것을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노스의 이런 주장이 일반적인 경제성장 과정에 적용되기에는 무리라는 지적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대표적으로 장하준 교수가 주장했듯이, 초기 선진국들이 높은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요인은 자유무역이 아니라 보호무역 덕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후 일본과 한국이나 동아시아의 성장 과정에서는 자유로운 시장경제보다는 국가 중심의 산업정책을 통한 경제성장이 두드러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노스가 말하는 경제성과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엄격하지 않다고 지적되었습니다. 만약 노스가 말하는 경제성과가 단순히 GDP 증가율이라면 이는 제한적인 평가 지표에 그치고 말기 때문입니다. 

제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노스는 비공식적 제도의 한 종류라고 볼 수 있는 믿음구조(신념체계)에 의해서라고 말합니다. 믿음구조란 사람들이 현실을 해석하고 분류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경험과 학습이 믿음구조 형성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인이지만 경제적 성과나 공식적 제도, 학습 등도 피드백 과정을 통해 믿음구조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그는 세계은행과 IMF가 개발도상국과 후진국에 펼친 원조가 단순히 선진국의 제도를 이식하는 것에 그쳤다며 비판합니다. 똑같은 제도를 도입한다 해도 나라마다 구성원들의 믿음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노스의 주장대로 하자면 결국 선진국의 믿음구조마저 후진국으로 이식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선진국의 신념과 가치를 강요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어 매우 위험해 보였습니다. 

노스는 인간의 제한된 합리성으로 인해 믿음구조는 왜곡될 수 있으나 외부충격을 겪고 경쟁의 과정을 통해 오류를 잡아갈 수 있다고 봅니다. 즉, 올바른 믿음구조가 올바른 제도를 만들고 좋은 경제성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장기성장을 위해 중요한 것은 분배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구조와 제도가 얼마나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대체 믿음구조라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떻게 범주화하고 측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애매한 지점이 많았습니다.

이처럼 노스는 경제학에서 논외로 취급했던 제도를 경제성장의 중요한 요인으로 포함시켰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집니다. 경제학에서는 시장에 맡기면 될 뿐 제도는 최소화될수록 좋다고 주장하지만 행정학이나 정치학, 사회학 등에서는 제도가 매우 중요한 연구대상입니다. 

또한 노스 이전에 제도주의에 영향을 끼쳤던 코즈가 공식적 제도에 집중했던 것에 비해서, 노스는 제도의 범위를 비공식적인 것들까지로 확장시키고, 믿음구조를 강조했다는 점에서 한 걸음 더 발전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노스는 제도가 중요하고 제도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주목했지만 그래서 어떤 제도가 만들어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계점을 보였습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정태인과 젊은피> 카페(cafe.daum.net/ssygraduate)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