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들이 병원을 찾아서 말하기도 뭐하고, 참 난처한 요구가 사후피임약이다. 반면에 남성들에게도 말하기 힘든 처방 요구가 있는데, 바로 발기부전 치료약이다. 흔히 ‘비아그라’니 하는 그런 종류의 약들을 말한다. 꼭 필요하냐고 반문한다면 굳이 더 할 말은 없는데, 남성들에게는 머리털이 빠지는 문제보다 더 심각하고 고통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한다. 모자반을 들고 온 박씨 작년 이맘때일 것이다. 저녁 진료시간이라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데, 추자도에 산다는 박씨가 진료실로 들어왔다. 두 달에 한 번씩 고혈압 때문에 내게서 진료를 받는 박씨는 작은 고깃배를 가지고 갈치나 고등어를 잡는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몇 가지 필요한 진찰과 혈압을 측정 후 혈압 상태는 좋다고 말하면서 요즘 고기가 잘 잡히는지 물었다. 내가 낚시를 좋아하기 때문에 수온이나 조황이 궁금하기도 하고 그 분의 생활 모습이 어떤지 겸사겸사 묻는 것이기도 하다. “글쎄요. 수온이 차서 아직 벵에돔이 올라오지 않네요.”“아, 난 언제 5자 넘는 놈 잡아보나…..”“원장님이 낚시하러 갈 시간이나 있으세요? 그런데….. 이런 말 해도 되나 모르겠어요.”“무슨 거요? 걱정하지 마시고 아무 거나 물어보세요.”“저…..” 박씨는 한참 머뭇거리더니 6개월 넘게 그 놈이 서지를 않아서 걱정이다, 사람들이 흔히 먹는다는 ‘비아 거시기’ 얻을 수 있냐, 자기처럼 고혈압 있으면 안 된다던데 괜찮나 등 내가 문을 열어드렸더니 줄줄줄 궁금한 것들을 쏟아냈다. 나는 일단 발기부전이 심리적인 원인으로 온 건지, 고혈압이나 만성질환의 후유증으로 온 건지 구분해 본 후 일단 약을 드셔보라고 권했다. 당연히 부작용도 말해주고. 다시 두 달이 지나서 진료실을 찾은 박씨의 손에는 큰 검정 비닐봉지가 들려 있었다. 모자반이라고 한다. 제주도 말로는 ‘몸’이라고 하는 건데, 국이나 반찬을 만들 때 많이 들어간다. 추자도에서 제일 좋은 걸로 가져왔다고 하면서 탁자 옆에 두었는데, 지난번에 고민거리를 잘 들어줘서 너무 고맙다는 뜻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약도 효과는 있었지만, 남한테 말 못하는 거였는데, 이것저것 살펴줘서 마음이 놓였고, 가끔 약을 먹어서라도 발기가 되니 너무 좋다는 박씨. 발기부전에 대한 연구와 치료 한국뿐만 아니라 여러 나라들이 성기나 성관계에 대해 금기시하는 것은 정도 차이만 있을뿐 비슷하다. 발기부전에 대해 처음 발표를 한 것은 우리가 외설처럼 여겼던 ‘킨제이 보고서’를 내놔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킨제이(Alfred Kinsey)라는 생물학자인데, 1948년에 연령별로 발기부전 유병률을 처음 발표하였다. 이후 미국 학계에서는 20대 7%, 30대 9%, 40대 11%, 50대 18%로 조사되어서 미국에서만 발기부전 환자가 3천만 명 이상이며, 유럽의 연구에서도 비슷한 결과를 보여다고 하며, 전 세계적으로는 1억 명 이상의 남성들이 같은 질환으로 힘들어하고 있다고 추산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조사를 하였더니 나이에 따라 비율이 점점 증가해서 60대 36%, 70대 69%로 급격한 증가폭을 가진다고 하였고, 30대 이상 전체 남성의 50% 정도가 발기부전을 호소한다고 하였다. 물론 지역이나 문화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치들이다. 생명에 지장이 없고, 아파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니까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 남성들에게는 큰 근심거리이다. 문제는 아직도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1999년, 처음 ‘Via(생생한)’이란 말과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힘차다라는 뜻에서 따온 ‘gra(나이아가라의 뒷 글자)’를 따서 비아그라(성분명 실데나필)가 나왔을 때 전 세계는 환호했고, 매출 시장도 엄청났다. 하지만 비뇨기과는 그 이후 하향길을 걸어야 했다. 발기부전에 대해서 주사나 여러 기구 삽입, 수술로 수입을 올릴 수 있었는데, 간단히 약만 먹고 같은 효과를 주니 말이다. 전 세계에서 1초에 6알이 팔렸다는 비아그라의 주성분인 ‘실데나필’에 대한 물질특허가 2012년 5월 17일 풀리자, 한국에서도 많은 제약회사들이 너도나도 비슷한 약품을 만들어 의약품 시장에 내놓았다. 세지그라, 스그라, 헤라크라, 오르그라, 바로그라, 자하자, 팔팔 등 이름도 민망할 정도이다. 하긴 비아그라도 그런 이름이었으니까…… 그 외에도 수십 개의 제약회사에서 복제품 출시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알약만 있는 게 아니라 혀 밑에 놔서 녹여서 효과를 보는 필름형 제제도 나왔다. 환자들에게 발기부전 완화약을 처방하다보면 얼굴이 붉어진다든지, 가슴 두근거림, 어지러움 등의 부작용을 호소하기도 하는데, 약을 다른 것으로 바꿔주면 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 어떤 분은 같은 성분을 가진 약인데도 효과 없기도 해서 바꿔드리면 또 효과를 보기도 한다. 문제는 협심증이나 심근경색을 앓는 사람들이 흔히 복용하는 질산염 계열 혈관 확장제를 복용하는 사람들이나 ‘~조신’으로 끝나는 알파 차단제 혈압강하 약물을 복용하는 분들이 이 발기부전 치료제를 함께 먹으면 급격한 혈관 확장으로 인해 저혈압이나 쇼크가 올 수 있다는 점을 주의해야 하는 것과 그 외에도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들이 있어서 의사들과 상담 후 처방을 받고 구입해야 한다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발기부전 환자에게 권하는 야동 발기부전은 뇌의 질환이나 실혈관계 질환의 후유증으로도 생길 수 있고, 당뇨나 고혈압과 같은 만성질환 환자들에게서 많이 생긴다. 그래서 나는 진료실에서 나이가 많거나 그런 질환들을 가지고 있는 분이 오시면 조심스럽게 발기 정도를 물어본다. 대부분 괜찮다고 하지만, 발기부전으로 힘들어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일단 성욕이 줄어서 생긴 건지, 아무 문제 없지만 기질적으로 생긴 건지 알아본 뒤 성욕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라고 한다. 질병의 후유증으로 생기는 경우가 많지만, 마음에서 발생하는는 문제의 우도 꽤 되기 때문이다. 부인 앞에서는 잘 안 서는데, 다른 여자에게서는 어느 정도 된다고 말하면 부인의 신체 어느 부분이 매력적이냐 생각해보고 그걸 떠올리면서 부인에게서 성적 감정을 느끼려고 애써 보라고 하기도 한다. 야동(야한 동영상)을 보면서 발기 훈련을 해보라고 권하기도 한다. 이러면 나는 비도덕한 의사로 인식될지 모르지만, 환자의 고통 앞에서는 도덕이 상위 개념일 수 없다고 본다. 발기부전 뿐만 아니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질환들을 세상에 보이기를 꺼리는 경우가 많다. 그것들을 편안하게 드러내고 만져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의사이다. 적은 수가에 상담을 하려면 시간을 내기도 힘든 우리나라의 의사들이지만, 요즘처럼 수도 없이 발기부전 치료약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 조금씩은 이런 부분들을 잘 헤아리며 환자들을 봐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