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마지막 주에 통합진보당은 당대표 선거를 치른다. 내 보기에 이번 선거는 이 정당의 ‘마지막 선택’이다. 새로운 도약의 전기를 마련할 것인지, 아니면 뻔한 죽음의 길을 계속 갈 것인지만 남았다. 지난 3주간 통합진보당 사태를 다룬 ‘착한경제학’의 고통스러운 일탈도 이번이 마지막이다.우리는 유일한 활로가 현재의 ‘치킨게임’을 ‘사슴사냥게임’으로 바꿔서 협동을 택하는 데 있다고 했다. 그것은 곧 현재의 ‘퇴행적 정파주의’를 ‘협동의 정파주의’로 바꾸는 일이다. 영국의 정치학자 부체크(Boucek)는 퇴행적 정파주의 구도에서 각 집단은 당 전체의 가치보다 개별 집단의 이익을 실현하는 데 골몰하므로 당의 공유자원(무엇보다도 진보에 대한 국민의 신뢰)을 파괴하고 결국 당은 분열과 붕괴에 이르게 된다고 설명한다.그동안 각 정파가 서로 적대하면서 퇴행적 정파주의로 치달았던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만일 선거의 승리가 물질적 이익(지대)과 당직 등의 독점으로 이어진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기려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점점 심해진 고질적 병폐인 패권주의, 크고 작은 선거부정이 발호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더구나 그런 전리품으로 인해 특정 정파의 조직이 빠른 속도로 확대된다면 소수정파는 2008년 분당과 같은 초강수도 고려하게 될 것이다.승자 독식의 현행 제도 아래서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까? 우선 두 후보 모두 당 권력의 분점과 투명한 회계제도를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국민의 세금과 당비가 특정 정파에 귀속되는 것부터 원천적으로 막아야 한다. 둘째는 아예 강령을 개정해서 당의 거버넌스를 비례대표제에 입각한 내각제 형태로 바꾸는 것이 더 근본적인 처방이 될 것이다.두 번째 퇴행적 정파주의의 원인은 진보적 가치의 훼손이다. 예컨대 ‘혁명성’이나 ‘계급성’과 같은 선명한 낱말이 정파의 이익을 은폐하는 외피가 된 것은 비단 통합진보당이나 한국의 대중운동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불행하게도 그런 현상은 각국 진보운동이 사멸하는 징후였다(발리바르). 두 후보는 2012년 한국이라는 현실에서 ‘자주성’이나 ‘노동중심성’, ‘당내 민주주의’와 같은 진보적 가치들이 어떤 구체적인 내용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밝혀야 한다. 이는 당대표 선거가 단지 정파간의 숫자 싸움으로 전락하지 않고 앞으로 협동의 정파주의로 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집단간의 퇴행적 경쟁은 협동하지 않으면 달성할 수 없는 더 큰 가치를 추구할 때 비로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셰리던). 이것은 곧 협동의 보수를 획기적으로 높이는 길이기도 하다.여기서 정파의 지도자와 이론가들의 역할은 특히 중요하다. 정파간 경쟁이 퇴행적이지 않으려면 당원과 국민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고 공개적으로 토론해야 한다. 상대에 대한 왜곡된 정보, 억측을 집단 구성원에게 경쟁적으로 유포하는 퇴행에서 이제는 벗어날 때가 되지 않았는가? 각 정파가 이런 초보적인 민주적 절차에 성실하게 응한다면 그 과정은 곧 정파간의 오해와 반목을 씻는 화해의 과정이 될 것이다.따라서 두 후보는 현재의 당 강령에 비춰 정파의 이념과 정책을 구체적으로 발표하며 소속원을 등록하는 ‘정파 및 정책 등록제’를 공약해야 한다. 이런 제도를 통해서 비로소 정파간 경쟁이 생산적 결과를 낳을 것이고, 당원 전체의 합의와 국민들의 신뢰수준이 높아지는 바로 그만큼 국가보안법의 칼날도 무뎌질 것이다.다른 무엇보다도 이번 선거는 당 내외의 신뢰를 회복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지금 통합진보당은 국민들로부터 능력(competency)은 물론 성실성(integrity) 면에서도 완전히 신뢰를 잃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까지 당은 일반적인 신뢰 회복 절차인 사과, 책임자 처벌, 재발 방지 프로그램 제시에 모두 실패했다.따라서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도 철저히 국민의 신뢰 회복 여부에 맞춰져야 한다.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이번 선거만은 정파라는 낡은 사슬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보의 사활이 그 선택에 달려 있다.이 글은 주간경향에 기고한 글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