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좀 더 위험한, 그러나 좀 더 희망적인

세계경제와 한국사회가 다시 격랑의 회오리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2011년 8월부터 재발하기 시작한 세계경제위기는 점입가경이다. 유럽의 국가부채와 은행부실 우려는 매일처럼 바뀌는 요인들로 인해 지옥과 천당을 오가며 흔들리고 있다. 미국 경제전망도 날마다 다른 신호를 보내며 쏟아지는 지표들로 인해 방향을 못 잡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중이다. 그에 따라 전 세계 주가도 큰 폭의 등락을 반복하며 요동친다. 한 마디로 방향도, 해법도 전혀 알 수 없는 혼미함이 수개월 째 이어지고 있으며 정치는 이를 전혀 제어할 수 없는 무력함의 극치를 보이고 있다.

미국 실물경제 침체우려, 유럽 국가부채위기, 그리고 유럽 은행부실위험이라는 복합적인 요인이 대서양을 사이에 둔 선진국 전역에서 확산되고 있는 현재의 위기 국면은 2008년과 같은 순간적인 대 추락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세 가지 차원에서 그 구조적 위험성은 더욱 심각하다.

첫째, 이미 3년 전부터 ‘비정상적이고 급박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쓸 수 있는 모든 위기 수습책을 줄줄이 꺼내들어 추락을 막아왔다. 재정지출, 제로 금리, 두 차례의 양적 완화, 수조 달러의 구제 금융, 은행 유동성 공급 등 루비니 표현대로 마치 마법사가 요술 모자에서 계속 새로운 토끼를 꺼내들 듯이 정책결정자들이 경기를 회복시키기 위한 새로운 수단들을 끝없이 동원했다. 그 효과로 지난 1년 여 동안 경기가 회복되는 조짐을 보였다. 그러나 약발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시 부상한 위기 앞에 더 이상 꺼내들 카드가 없다는 무력감에 정책 결정자들은 당황해 하고 있는 중이고 전에 썼던 카드를 다시 꺼내보지만 스스로도 문제를 치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있다. 근본 해결책은 미뤄둔 채 ‘시간 벌기’를 하고 있다고 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현재의 위기는 정부와 국가를 직접적으로 위기의 반경 안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2008년에는 국제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던 민간부문의 부동산 시장과 금융시장에서 위기가 폭발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리스를 필두로 한 남유럽의 국가 부채위기가 핵심 진앙지다. 미국도 정부 채무한도를 증액하는 과정에서 가중된 정치권의 논란이 이번 위기를 불러일으킨 촉매제가 되었다. 3년 동안 경기회복을 위해 막대한 자원을 쏟아 부은 결과 정부의 재정여력과 중앙은행의 정책 여력이 축소되었을 뿐 아니라 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추가적으로 복지지출을 축소할 것인가, 아니면 부유층 증세로 재원을 늘릴 것인가 하는 문제로 초점이 이동하자 정치권과 사회세력 사이의 갈등이 발생하게 되면서 위기해결은 더욱 어렵게 된다.

세째, 국제 공조가 훨씬 어려워지면서 신속한 행동이 안 되고 있다. 이미 한 국가 단위를 넘어 국제적으로 협력해서 문제를 풀어야 할 정도로 경제위기는 국경을 넘어버렸다. 그러나 지금은 2008년과 달리 각 국가의 이해관계 상충 정도가 매우 높다. 특히 유로 통화권이 그러하다.



유로 통화권에서 만성적 경상수지 적자 국가들인 남유럽과 흑자 국가들인 독일, 네덜란드, 핀란드, 오스트리아 등은 유로 공동 통화권 아래 묶여 있지만 이해관계가 충돌한다. 독일을 필두로 한 흑자 국가들이 남유럽 국가들에게 대규모 지원을 해야 문제를 풀길이 열기겠으나 회의적이다.



선진국 전체가 침체로 빠져든 시점에서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과 BRICs 국가들도 세계 경제 침체 여파에 대응해야 하는 자국의 부담과 내부 소득 격차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 등 국내적 숙제가 만만치 않다. 선뜻 유럽을 지원하기가 쉽지 않고 지원한다고 하더라도 그 규모는 제한되어 있다. 선진국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상실했지만 신흥 대국들이 이들 대체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하다. 더욱이 각 국가들이 자국의 경제 보호를 위한 환율전쟁이 불거질 가능성도 높고 나아가 보호무역주의 경향이 대두될 여지도 여전히 남아있다. 세계가 일치해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공조를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유래 없이 자본시장 개방화 정도가 높고 수출수요 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는 세계경제위기의 태풍권에서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주가와 환율 변동성이 2008년 버금할 만큼 극심해지고 있다. 중국 고성장의 수혜를 크게 입어 수출증가로 높은 경제회복을 이루었던 실물경제도 위기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민간소비, 설비투자, 수출 증가율이 모두 약화되면서 2011년 성장률이 기대와 달리 4% 밑으로 갈 확률이 매우 높아졌다. 선거가 있는 내년에도 4% 이상의 성장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그런데 다시 드리운 세계경제의 어두운 그늘 속에서 뜻밖의 사건이 터져 나왔다. 세계경제의 중심, 금융의 중심이자 위기의 진원지이기도 했던 미국 월가에서 ‘혁명’의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한 것이다. 십 여 년 전 유행했던 ‘금융혁명’이 아니라 금융혁명으로 창조해낸 월가의 금융시스템을 바꾸자는 혁명의 요구가 월가 은행 창 밖에 운집한 시위대들에 의해서 합창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관심도 주식 시세 전광판과 서구의 지도자들을 떠나 월가 거리의 시위대들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9월 17일 수 십 명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이 시간이 가면서 수백 수천 명, 수만 명으로 불어났고 순식간에 월가 거리를 넘어 미국 전역, 그리고 세계로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에는,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은폐되어왔던 사회 경제적 구조의 한계가 비로소 세상에 드러나는 것처럼 보였다. 통제되지 않은 금융시스템의 위험성, 단기 수익추구 방식의 주주자본주의 기업경영의 문제점, 노동시장 유연화와 고용 불안정성, 그리고 이 모든 문제의 결과로 심화되어온 양극화와 극심한 불평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치부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 시점에서 태동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지극히 신자유주의적인 극우 정치세력 ‘티 파티(Tea Party)’운동이었다. 서구 정치 지도자들이 당장의 위기 수습을 위해 스스로 시장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정부와 중앙은행을 동원하여 광범위한 시장개입과 경기부양에 나서자 여기에 대한 반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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