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은 3년 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시점 못지않게 국내·외적으로 격변의 나날이었다. 유럽의 국가부채와 은행부실 우려는 매일처럼 바뀌는 요인들로 인해 지옥과 천당을 오가며 흔들렸다. 미국 경제전망도 날마다 다른 신호를 보내며 쏟아지는 지표들로 인해 우왕좌왕했다. 그에 따라 전 세계 주가도 큰 폭의 등락을 반복하며 방향을 잡지 못했다. 한 마디로 방향도, 해법도 전혀 알 수 없는 혼미함과 이를 전혀 제어할 수 없는 무력함의 극치를 보았다. G20 정상회의를 코앞에 둔 지금도 전혀 달라진 것이 없다.

세계 경제가 재차 위기국면에 접어들면서 터져 나온 월가 시위도 2011년 10월을 흔든 대사건이었다. 캐나다의 한 온라인 매체 제안으로 시작된 월가 점령시위가 세계를 놀라게 할 것이라고 전망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그러나 월가 시위는 10월 들어서 미국의 국경을 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10월 내내 가장 중요한 세계의 화두로 등장했다. “우리는 99%다(We are the 99%)”는 이제 세계 경제위기 시대의 아이콘이 됐으며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공통 언어가 됐다.

무상급식 주민투표와 오세훈 서울시장의 사퇴로 시작된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정치인이 아닌 안철수와 박원순의 등장을 계기로 한국사회의 최대 이슈가 됐다. 월가 점령시위가 전통적인 진보운동 조직이 아니라 온라인을 매개로 한 청년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서 시작됐던 것처럼, 안철수와 박원순 두 인물은 기존 정치권의 장벽을 단숨에 넘어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인물로 부상했다. 그리고 한국정치의 근본적 변화를 바라는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서울시장 선거 분위기에 묻히기는 했지만, 5년을 끌어 막바지 국면에 접어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역시 국회에서 ‘끝장 토론’을 통해서라도 막아보려는 노력이 전개됐다. 2011년 10월은 한미 FTA 이전과 이후를 나누는 역사적 시간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이 말해주는 것처럼 모든 역사적 사건들은 단선적으로 증폭되거나 소멸되지 않는다. 사건이 발발하고 극대화하며 다시 소강국면으로 접어들기를 반복하면서 사건은 역사의 흐름에 자기 궤적을 남겨 놓는다. 폭풍처럼 우리사회 지형을 흔들었던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선거 이후 정치권에서 후폭풍은 있겠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다시 평온으로 돌아갈 것이다.




한미 FTA 국회 공방도 어떤 식으로든 한 꼭지점을 지나고 다시 일상 속에 잊힐 수 있다.

월가의 시위도 마찬가지다. 이미 세계의 화두가 될 정도로 확산됐지만 무한정 단선적으로 확대되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 월가 시위운동 확산 속도가 둔화되자 기다렸다는 듯이 주요 언론들은 ‘관심 저하’, ‘민폐’ 등의 단어를 동원하면서 운동 죽이기에 나서고 있다. 다가올 추위 때문에 더 이상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아예 속단하는 언론보도도 부쩍 늘어나고 있다. 그럴 수 있다. 아울러 현재로서는 불행하게도 가능성이 크지는 않지만, 유럽 채무위기도 G20 정상회의 이후 소강 국면으로 진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드러난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우려했던 한미 FTA의 부정적 파괴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월가 시위운동이 2011년 10월의 역사에 뚜렷이 새겨놓은 새로운 이정표가 지워지는 것도 아니다. 미국과 유럽경제가 안고 있는 위기적 상황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향후 사회의 전면에 다시 부상하게 되면 더욱 거대한 모습으로 과거의 흔적 위에서 되살아날 가능성이 높다.

세계 경제위기는 점점 더 편의적인 처방이 연속되면서 위기구조가 커지게 될 것이고 그럴수록 보다 근본적인 구조개혁의 압박을 받게 될 것이다. 그 구조개혁이란 위약한 금융규제나 미미한 공공 일자리 창출의 범위를 넘어서고 있다. 월가 시위대가 말하고 있는 1%대 99%로 나뉘어 있는 경제적 양극화와 99%의 소득과 생활정체 상황을 개혁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생산된 절반에 가까운 부가 1%에 쏠리는 경제적 재생산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다. 늦춰지면 늦춰질수록 그 어떤 통화정책과 경기부양정책으로도 실물경제의 장기 침체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했을 시점에서는 변변한 저항도 못한 채 위기를 일으킨 금융회사에 구제금융을 해주는 것을 지켜봤던 시민들이 3년 만에 다른 모습으로 위기에 맞서고 있는 것이 월가 시위였다. 이제 미국과 세계의 99%는 자신들이 누구와 함께 무엇에 저항해야 하는지 깨닫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의 저항의 이유와 목표가 해소되지 않는 한 월가 시위도 사라질 수 없다. 더 크고 정제된 힘으로 저항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작금의 세계 경제위기를 구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이 월가 시위운동 안에, 그 발전과 확산에 숨어있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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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바보를 기다리며


<손석춘, 21세기북스>



– 2012년, 그날이 오기 전에 우리가 꼭 알아야 할 대한민국 이야기, 이 시대의 영웅으로 불가능할 것만 같은 희망을 현실로 만드는 ‘새로운 바보’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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