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작권 없는 나라도 주권국가인가 


 


군사주권 회복이라는 국민적 여망에 힘입어 추진되던 전작권 환수가 MB정부 들어 수포로 돌아갔다. 2010 6월 한미정상회담에서 MB는 한미 FTA의 쟁점사안들을 양보하는 빅딜까지 해가며 전작권 환수 연기를 미국에 요청했다. 국가원수로서 전시에 국군을 통솔해야 할 권한과 의무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대통령의 단순히 직무유기로 볼 수 없다. 전작권 환수는 한국에 있어서 주권, 평화, 국익과 연관된 막중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평시는 전시를 위한 것


 


천일양병 일일용병(千日養兵 一日用兵)으로평시는 전시의 대비라는 것은 군사전략상 통상적 개념이다. 양병은 용병을, 평시는 전시를 위한 것으로서 전자는 후자의 하위권에 속한다. 때문에 MB정부가 아무리 부인해도 전작권은 의심할 바 없이 군사주권의 핵심이다.


 


현재 한국의 작전통제권은 이원화된 상태이다. 평작권은 1994 12월 한국의 합참의장에게 환수되었지만 전작권은 아직도 한미연합사령관이 갖고 있다. 다시 말해 한미연합사령관이 우리나라 군사주권의 노른자위를 장악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은 전작권을 틀어쥐고 한국군의 전략과 작전은 물론 국방개혁과 군 구조 개편, 무기체계 선정, 국방비 규모에 대한 개입과 간섭을 자행해왔다.


 


사실 한국군 합참이 행사한다는 평작권도 온전하지 못하다. 정부가 평작권 환수로 독자적 작전지휘체계를 확립하고 주권국가로서의 위상을 제고했다고 하지만 실질적인 내용을 보면 절름발이에 불과하다. 전시작전체계 수립, 조기경보를 위한 연합정보관리, 한미연합군사훈련 주관 등 핵심적인 지휘권은 여전히 한미연합사령관에 위임되어 있다.


 


그러면 다른 나라의 경우와 무엇이 다르나? 일본의 경우 평시에도 독자적인 작전지휘, 통제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전시에도 미일간에 군사협의기구를 만들어 각 군의 지휘통제계통에 따라 긴밀한 협조 하에 작전을 수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과거 서독의 경우도 NATO와 연합전력을 운용할 때 전시와 평시에도 NATO사령관의 작전통제는 즉각대응력을 가진 공군에 국한되었으며 작전계통이 NATO사령관의 통제하에 놓이지는 않았다.


전작권을 통째로 미국에 내맡긴 나라는 한국뿐이다. MB의 전작권환수 연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지구촌에서 군사주권을 오롯이 갖지 못한 유일한 나라로 남아있게 됐다.


 


전작권 환수는 곧 자주국방


 


자주국방은 자체의 방위능력을 갖추고 스스로 안보를 보장함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자주국방이 타국과의 군사협력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안보상의 국제적 상호의존도가 높아지고 협력안보가 일상화되고 있는 오늘의 글로벌 시대에 타국과의 협력적 지혜는 필요하다.


 


이 때문에 자주국방도 제3국이나 동맹국의 지원을 꺼리지 않는다. 문제는 지원을 받느냐, 지휘를 받느냐에 있다. 만약 타국의 지휘봉에 따라 자국군이 움직인다면 그것은 예속이지 결코 자주국방이라고 할 수 없다.


 


그래서인지 MB정부는 전작권 환수와 자주국방이다른 차원의 문제라면서 전시에 한미가 동등하게 지휘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한미연합사령부를 지휘하는 한미군사위원회(MC)의 의결구조부터가 미국인 3, 한국인 2명으로 되어 있으며 더욱이 한국 합참의장은단순한 협조 및 지원등에 국한된 임무만을 수행한다. 전쟁을 수행하는 데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필요한전투편성, 전투작전, 정보를 관할하는 권한은 온통 미국에 있다.


 


이 때문에 만에 하나 이 땅에 전시가 닥쳐오면 한국군은 틀림없이 미군의 지휘에 끌려 다니게 된다. 연평도 포격전이 생생한 사례다. 1차 포격전 중 당시 해병대 연평부대장이 합참의장에게 전황을 보고하고 대응포격 여부를 물었는데 합참의장은 별다른 지시를 내릴 수 없었다. 한반도의 작전상황을 판단하고 한국군에게 명령을 내리는 것은 주한미군사령관이므로 합참의장은 전황이 아무리 다급해도 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주한미군사령관의 작전명령을 기다려야 했다. ‘신속하게 대처하라는 통상적인 지시 이외에 작전명령을 내릴 권한이 합참의장에게는 없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 병사들이 집중포격을 받는데도 합참의장이 작전명령을 내리지 못하고 미군사령관의 지시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 전작권 없는 한국군의 참담한 현실이다. 오죽하면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도막상 전쟁이 나면 국군에 대한 지휘권도 한국 대통령이 갖고 있지 않다고 자조했을까.


 


능력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


 


MB정부는 전작권 환수를 2015 12월로 연기하면서 국군의 능력 부족을 결정적인 이유로 들었다. 우리 군이 아직까지 작전통제권을 당당히 행사할 정도의 능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전작권 환수는 시기상조라는 것이다.


 


천문학적인 재정을 먹고 자란 우리 군이 아직도 준비 부족이라니, 어불성설이다. 우리 군사비는 매해 무력 200억 달러를 넘어 북한의 10배를 웃돌고 있다.


 


육군에 비해 푸대접을 받는다는 해군력만 보아도 현대전의 필수조건인 1천톤 이상 함선 보유 면에서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을 능가하고 영국, 프랑스와 맞먹는 수준이다. <밀리터리 밸런스>(20012004)에 의하면 이탈리아 18, 스페인 16, 독일 13, 영국 34, 프랑스 34척인데 한국은 40척을 보유했다. 해군이 이 정도면 육군이나 공군의 전력은 더 말할 나위 없다.


 


오늘 군사력 7, 경제력 12위를 구가하는 대한민국은 구조선말기의 대한제국이 아니다. 그래서 전작권 환수 연기가 공식화된 그날 일부 국군 관계자들이 발끈해한국군은 연합방위를 주도할 충분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말을 했던 것이다.


 


설령 MB정부의 말대로 우리 군이 정보획득능력과 전술지휘통제체계(C4I), 정밀타격능력 등을 갖추지 못해 독자적 작전 능력이 부족하다 해도 그것이 전작권 환수 연기의 이유로는 될 수 없다. 능력 여하에 따라 작전통제권 행사 여부가 결정된다면 지구촌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강대국에 전작권을 위임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강대국에 전작권을 위임한 나라는 유독 우리 한국뿐이다.


 


전작권 환수는 능력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이다. 군사주권을 행사할 진정한 의지가 없다면 전작권은 2015년에 가서도 우리의 수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안보불안의 주범은 미국


 


한미 사이에 전작권 환수 연기가 공식화되는 과정에 MB정부가 들고 나왔던 또 하나의 이유는북의 위협에 의한 한반도 불안정이다. 정부는 전작권 환수 연기를한반도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결단으로 보면서 마치 연기 합의 자체만으로도 우리의 안보가 확고해진 양 희희낙락했다.


 


한반도의 정세가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불안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안보불안의 주범이 북한이라는 것은 허구이다.


 


1990년대 이후 한반도는 여러 차례의 전쟁위기를 겪었다. 1991922의 한국전쟁 위기’, 1994 6월 두 시간만 늦었더라도 전쟁이 발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렸던 영변핵위기, 미국의 엉터리 인공위성사진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한다고 단정짓고 모의 핵폭탄 BDU-38로 핵전쟁 실전연습까지 벌였던 199899년 금창리 핵위기, 미사일 위기, 부시의악의 축전쟁 위협 등이다.


 


보는 것처럼 한반도의 전쟁위기는 북한이 아니라 역으로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현실적으로 2차 대전 이후 지구촌의 크고 작은 전쟁들은 모두 미국의 주도하에 이루어졌으며 따라서 세계가 미국을전쟁으로 먹고사는 나라로 부르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한반도의 위험은 전쟁을 밥먹듯이 하는 미국이 전작권까지 장악한 데에 있다. 미국의 사고는 전쟁이 민족공동체의 소멸을 의미하는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한반도 전쟁 발발 시 미국은 남북한에 비해 인적, 물적 희생이 훨씬 적기 때문에 전쟁 결정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 이런 미국에 전작권까지 내맡겼으니 우리는 항시적으로 일촉즉발의 불안을 피할 수 없다.


 


결국 MB는 전작권 환수 연기로 한국의 군사주권과 평화, 그리고 국익을 미국에 팔아 넘겼다.  MB정부를 최후 심판하는 날 주된 논란거리는 분명 MB가 지독하게 선호한 친미일방주의로 될 것이며 그 중에서도 전작권 환수 연기는 첫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