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더블 딥 위기, 남유럽 국가 채무 위기, 그리고 유럽 은행 위기가 겹치면서 세계경제가 국제통화기금(IMF) 표현대로 ‘새로운 위험국면’으로 진입하고 있다. 위기의식은 극도로 고조되어 있지만 아직 국제사회는 뚜렷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9월 24일 열린 G20재무장관 회의와 IMF연차총회에서도 아무런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내놓지 못하고 종료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결과 2008년과 비교해서는 아직은 괜찮다던 각 기관의 평가도 바뀌고 있다. 오히려 2008년보다 현재의 위기가 더욱 심각한 국면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위기는 3년 전보다 더욱 심각하다”(알리스테어 달리 전 영국 재무장관) “현재 유럽 상황이 2008년 금융위기 초기에 미국의 당시 상황보다 더 심각하다”(조지 소로스) “유럽 부채위기가 2008년 위기보다 심각한 수준이다.”(일본 재무상)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청와대가 3년 전의 ‘벙커 비상대책회의’를 재개했다는 소식으로 입증된다. 도대체 어디에서 무엇이 잘못되어서 8월 5일 미국 신용강등 시점까지만 해도 심각한 충격은 없을 것 같았던 세계경제가 3년 전 리먼 사태를 능가하는 위험국면으로 진입했는가. 지난 3년 동안 세계경제는 어떻게 움직였으며 각 국가들은 경제 회복과 위험 방지를 위해 어떤 조치를 실행했기에 더 큰 충격에 빠진 것일까. 이 시점에서 세계경제 위기와 관련한 세 가지 근원적인 물음이 제기된다.

1. 반복되는 전염과 무력한 방화벽

재연되고 있는 심각한 글로벌 금융위기와 실물경제 침체위기 앞에서 최근 가장 자주 등장하는 용어가 바로 전염(contagion)’과 ‘방화벽(firewall)이다.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은 지난 9월 24일, 유로지역의 재정위기와 은행위기가 현재 세계경제 앞에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협이라면서 추가적인 전염을 막기 위해 즉시 방화벽을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도 25일, 그리스 재정위기가 여타 유럽 국가들로 확산되지 않도록 그리스 주변에 방화벽을 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유로 국가들은 그리스 국가채무에 대해 부분적이든(50%부채 탕감) 전면적이든 디폴트를 기정사실화 시키면서, 더 이상 다른 남유럽 국가들이나 유럽 은행들로 전염되지 않도록 하는 쪽으로 무게중심을 옮기고 있을 정도로 사태는 심각한 상황으로 진입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아직도 특정 은행, 특정



국가의 위기는 그곳에 국한되지 않고 여전히 빠르게 세계경제로 전염되고 있는가. 특히 유럽 GDP의 2.5%에 불과한 그리스 디폴트 위기가 어째서 전 세계 경제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것인가. 더욱이 9월에 그리스에 지급하려던 구제금융 80억 달러 정도에 세계경제의 운명이 좌우될 상황이 되었는가. 이것이 첫 번째 의문이다.

그리스 국가부도 위험의 전파력이 여전히 강력하다는 것은 지난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금융 세계화가 얼마나 세계경제 체제 안에 깊숙이 침투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은행과 은행, 은행과 국가, 국가와 국가 사이에 엄청나게 큰 규모로 복잡하게 얽힌 채무와 채권관계, 자산과 부채관계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지 3년이 지났건만 여전히 강력하게 세계경제 주체들을 서로 묶어놓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연쇄 고리의 한 지점이 부실에 빠지면 채무-채권 관계의 사슬을 따라 빠르게 위험이 전파되는 구조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그리스 부채의 80%는 국내가 아닌 해외 부채이고 그 중 절반가량은 프랑스와 독일로부터 차입한 부채다. 다른 남유럽 국가들도 큰 차이가 없다. 그리스 부도 – 유럽 은행 부실화 – 은행 신용 경색 – 여타 남유럽 국가 부도 전파 – 유로 지역 금융위기 – 세계 금융위기의 전염경로가 작동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각종 재발 방지책과 무수한 금융 규제안이 논의되고 준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위기의 전염을 차단하는 방화벽 설치 논의가 새삼스럽게 다시 급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인가. 금융회사들의 반발과 잠시 동안의 경기회복으로 제대로 된 금융규제가 실시된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판단 이외의 어떤 설명도 불가능하다.

여전히 국제적 금융 거래세는 도입되지 않았으며, 헤지펀드와 같은 투기자본 규제 대책도 제대로 시행된 적이 없다. 국채와 연동된 CDS 파생상품의 위험성은 제대로 공유되지 않았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으켰던 3대 주범들 – 위험한 투자로 고수익을 좇는 금융회사, 사실상 이들과 공범으로 확인된 신용평가회사, 그리고 이를 엄격히 감독했어야 할 금융 감독기관들 가운데 현재 크게 변한 주체는 없다. 훨씬 더 강력한 금융 규제 개혁안이 시행되지 않는다면 결국 특정 국가들의 세금이나 외환 보유고를 동원한 구제 금융으로 위기를 일시 진정시키는 것 이상의 방화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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