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없이 복지 없다

By | 2011-09-11T02:11:14+00:00 2011.09.11.|

평화 없이 복지 없다


                                                                             


이제 복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서울시에서 무상급식을 놓고 벌어진 찬반 논란의 전 과정은 복지에 대한 국민 다수의 관심과 열망이 얼마나 큰지 잘 보여주었다. 시장 자리까지 걸고 올인했지만 오세훈은 결국, 서울시민에게 지고 말았다. ‘주민투표 승리’를 독려하며 ‘복지 포퓰리즘’을 비판했던 대통령마저도 참 꼴사납게 되고 말았다. 초상집 분위기였던 한나라당은 서울시장 재보선을 준비하면서 ‘복지’ 공방을 벌이고 있다.


 


사정은 야당들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복지를 주장한 ‘원조’라 자처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다. 서울시장을 노리는 인물은 물론, 내년 총선을 바라보는 인사들의 화두가 복지다. 이미 ‘복지’는 정치권 최대 이슈이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읽게 하는 키워드가 됐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복지 또는 복지정책은 진보정당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민노당이 무상급식 정책을 내놓았을 때, 여야 할 것 없이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이 ‘사회주의정책’이라며 비난했던가.


 


허나 최근엔 상황이 돌변해 마치도 자기들이 무상급식 정책을 내놓고 실현한 것처럼 행세하는 정당, 정치인들을 쉽게 볼수 있게 됐다. ‘경제 살리기’로 미화된 ‘개발’과 ‘성장’이 정강정책의 모토였던 정당, 정치인들이 요즘은 너나없이 복지를 외치고 있다.


 


지난 총선 시기만 보더라도 ‘뉴타운’공약과 같은 토건사업이 정책공약의 주류였지만 지금은 대권을 바라보는 유력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복지에 대한 정견 발표가 경쟁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이제는 누구도 한반도대운하와 같은 삽질 공약을 전면에 내놓지 않으며, 복지정책을 ‘대책 없는 선심성 공약(空約), 퍼주기’라고 비방하지 않는다.


 


‘보편적 복지’를 비롯해 ‘창조형 복지’, ‘역동적 복지’, ‘사회연대 복지’, ‘촘촘한 복지’ 등 정치 거두들과 그 정파가 추켜든 복지 기치 대열에, 대표적인 개발 성장 공약인 ‘줄푸세’를 주창했던 박근혜 의원까지 ‘생애주기형 복지’, ‘자립형 복지’를 내걸고 합류한 지 오래다. 정치권에서 ‘복지’는 ‘개발’을 밀어내고 주류의 반열에 올라섰다.


 


복지가 정치권 최대의 이슈, 한국 사회의 대세가 된 것은 서민에게 삶의 질 개선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박한 문제로 됐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나라는 GDP 대비 공공사회복지 지출비용이 7.5%로 핀란드(26.1%), 프랑스(29.2%), 독일(26.8%)에 비해 4분의 1 수준이며 OECD 전체 국가 평균 22.26%에 비해서도 3분의 1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에 MB 정부 들어 응당 복지정책에 써야 할 국민의 혈세가 4대강, 세종시, 과학벨트와 같은 실패한 정책, 그리고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고 국민 불안감을 증대시키는 각종 전쟁 물자 구입과 전쟁 훈련에 탕진된 결과, 복지는 엉망이 되고  말았다.


 


이 사회에서 빈곤의 심각성은 이미 규모와 성격의 광범위함을 넘어선 지 오래다. 연구자들에 따라 빈곤 인구에 대한 해석이 천차만별이지만, 800만명을 넘어서고 있으며 천만 명을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이미 우리 사회의 빈곤 문제는 고질화,고착화,반복화되고 있으며 ‘일부’의 문제가 아닌 전 사회적인 문제로 확산되었다.


 


복지정책의 진정성


 


빈곤의 전 사회적 확산, 폭발 진전의 민심에 쫓겨 ‘복지’가 대세가 됐다고는 하지만,각 정치세력과 유력 정치인들이 복지에 관심을 갖고 정책 경쟁을 벌이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허나 정치인들이 ‘복지’ 정책을 내세운 게 어디 하루  이틀인가. 선거 때만 되면 하나같이 ‘복지’를 맹약하는  것이 정치인들이다. 그들이 내놓은 정책공약을 곧이곧대로 믿으면 어느 당이 집권해도 천국이 올 것 같다.


 


하지만 민중의 생활고는 여전히 계속되고 더욱 심화되고 있으며 빈곤층은 연일 확산되고 있다. 그래서 현재 유력 정치인들의 그 무성한 복지정책이 MB 747 공약처럼 득표만 노린 무책임하고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을까 염려된다.지나간 역사와 민중의 삶은 복지 경쟁의 와중에 튀어나오는 복지정책들의 진정성 여부를 판단해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면 복지정책의 진정성은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어떤 이들은 재원 마련 방안이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설득력 있는 주장이기는 하지만 재원 마련 방안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복지 재원 마련 방안은 각 정파들의 진정성 여부를 엿볼 수 있게 하는 한 측면이 될 수도 있겠지만 복지정책 전체를 평가하기에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 재원 마련이 된다고 해도 그것이 진정 복지를 위해 쓰인다는 보장도 없다. 각종 연금, 사회보험이 줄줄 새는 것을 보면 재원을 마련하는 것보다 관리  운용하는 것이 더 심각한 문제가 될 소지가 높다.


 


복지정책의 진정성 판단, 그것은 ‘복지’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한국사회가 처해 있는 현실에 대한 직시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복지라고 할 때 먼저 떠오르는 것은 행복과 안녕이다. 아니 그것이 전부로 이해되기도 한다. 하지만 복지라는 말에는 행복, 안녕과 함께 위험으로부터의 구제라는 뜻도 담겨져 있다.


천재지변이나 사회적 피해에 대한 예방, 보호, 복구 수습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당연하게 복지는 인간의 생존 그 자체가 담보돼야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복지 재원 마련 방안의 또 다른 한계가 드러난다. 충분한 재원 마련으로 자연재해를 예방할 치산치수 사업 등을 벌일 수는 있어도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전쟁을 막을 방도는 없기 때문이다.


 


연평도 포격을 복지 재원이 부족해 막지 못했다고 주장할 이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복지정책은 평화보장을 우선시할 때 그 진정성이 드러날 것이다. 이것은 한갓 이론적 풀이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주위 세계의 현실이 뚜렷이 증명해주고 있다.


 


흔히 복지국가의 모델로 제시되는 스웨덴의 경우가 바로 그렇다. 역사적으로 자본주의 발전의 길에 뒤늦게 들어선 스웨덴이 복지국가의 ‘모델’로 세계의 각광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했겠지만 이 나라가 국제정세와 지역적인 특수성으로 근 180년 간 중립을 고수하고 다른 나라와의 전쟁도 없이 자기를 유지해 왔다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특수한 조건으로부터 스웨덴은 자국 경제를 발전시키고 부단히 재부를 축적시킬 수 있었다.


 


스웨덴은 1차 세계대전은 물론 2차 세계대전 시기에도 ‘중립’을 선포해 전쟁의 피해를 모면했으며 파쇼 독일에 군수물자를 조달해 막대한 이윤을 얻었다. 또한 전후에는 파괴된 유럽 자본주의 나라들에 식료품과 공업제품들을 대대적으로 수출해 경제의 ‘고성장’을 이룩했다.


 


결과 1차 세계대전 이전 시기까지만 해도 유럽에서 제일 낙후한 농업국이었던 스웨덴은 50년 남짓한 기간에 유럽에서 실업률이 제일 낮고 인구 일인당 평균수입이 제일 높은 나라로, 1970년대 초에는 인구 일인당 평균수입이 미국을 앞선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들 중 하나가 됐다.  이런 조건에서 스웨덴의 독점자본가들은 자기의 독점적 지위를 공고히 하고 안정적인 고수익을 올리면서도 노동계급과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복지정책을 추진했다.


 


위의 사실은 장기간에 걸친 평화보장을 떼어놓고 보편적 복지국가,스웨덴식 복지국가를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한국 정객들이 외치는 복지정책의 진정성 여부,그 실현방도를 가르는 지표가 다름 아닌 평화보장 방안이라는 것은 복지 개념에 대한 이론적 해명이나 외국의 경험으로만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은 그 진리를 우리의 현실에서 벌써 체감하고 있다.


 


6.15 10.4선언에 따라 평화적으로 발전하던 남북관계가 미국과 이명박 정권의 반북 대결주의로 경색되어  사상 최악의 국면으로 치달을 때, 우리 국민에게 있어 안녕과 행복을 의미하는 복지는 까마득히 멀리 사라져버렸다.


한편, MB정권 지난 3년 간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발생한 피해액이 직접적으로 약 7조 원(595천만 달러), 간접 피해까지 포함하면 약 18조 원(149 3 4백만  달러)에 달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우리 국민을 아연실색케 하고 있다.


남북관계가 다른 사회정책들을 제약하는 상황에서 남북의 평화보장 체제 문제와 유리된 순수복지국가,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것은 결국 구조적한계를 가질수 밖에 없다.


 


우리에게 있어 평화가 곧 복지이다.따라서 평화보장 방안이 없는 복지정책이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할 뿐이다. 복지를 말하면서 정작 평화보장 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집권만을 노리고 복지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기대에 무임승차하려는 것일 뿐, 복지를 실현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는 것을 스스로 보여주는 꼴이다.


 


평화 정착으로 진짜 복지를 실현하자


 


평화의 소중함과 전쟁의 참혹함을 새겨주는 글이 떠오른다.“평화가 전쟁보다 낫다. 평화로울 때에는 아들이 아버지를, 전쟁 시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묻기 때문이다”. 기원전 600년 경, 소아시아(아나톨리아) 리디아 왕국의 마지막 군주였던 크로에수스의 말이다.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첫날에만 232만 명이 죽거나 다친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있다. 이런 상황이라면 누가 누구를 묻어줄 겨를도 없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 처진다. 물론 전쟁에서 피를 흘리는 것은 지하벙커의 MB가 아니라 힘없는 민중들이고 그 아이들이다.


 


한편, 한국 경제의 명맥을 거머쥐고 있고, 또 정부가 줄곧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동력’으로 치켜세우는 외국 독점자본도 만일 전쟁이 일어난다면 한반도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버린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997년의 동아시아 외환위기와 2008년 미국발 세계경제위기가 아무리 심각했다 하더라도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것이다. 동북아 전체가 잿더미로 되는 가운데, 그 경제적 충격과 파괴력은 IMF 구제금융 시기의 10, 아니 100배가 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한국 민중의 이익은 분명하다. 그것은 한반도의 평화와 남북 화해,협력을 통한 진정성 있는 복지의 실현이다. 한반도의 평화가 깨지고 대결과 전쟁의 망령이 급습하게 되면 우리 삶은 파탄과 몰락을 피할 수 없으며 한국 경제는 총파산에 이르게 될 것이다. 어떤 명분도 국민의 생명보다 우선할 수는 없으며 어떤 이유로든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


 


한반도의 평화는 미국을 위시한 주변 강국들이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근대사를 돌이켜보면 이들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전쟁을 치른 역사를 가지고 있다. 자국 내부 위기를 한반도 전쟁을 통해 극복하려고 했다. 이러한 형태가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지속되고 있다.


 


남북 대결을 사촉 조종한 미국은 서해에서 포탄이 오가는 와중에 일본 후텐마 미군기지 이전 백지화, 한미 전작권 전환 연기, 이란 제재 동참, 한미FTA 재개정, 막대한 무기 판매 등의 이익을 챙겼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자랑스럽게(?) 한국의 둘도 없는 ‘우방국’, ‘혈맹국’이라고 떠벌이고 있다.


 


단언컨대, 한반도의 평화는 긴장 격화와 전쟁 국면에서 이익을 보는 미국과 같은주변 강대국들이 보장해주지  않는다.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앞장서야 할 당사자는 오직 평화 속에서만 생존과 번영을 약속 받을 수 있는 우리 민중이고 민족이다.


 


전쟁의 위협이 각일각 다가오는 오늘의 긴박한 사태로부터 평화를 지켜내는 유일한 방도는 6.15 공동선언의 기본정신인 ‘우리 민족끼리’의 이념 아래 민족 공조의 길, 남북 화해와 협력의 길로 탈선 없이 나아가는 것이다.


 


지금 한반도에 긴장 상태와 전쟁 위험이 극도로 고조되고 우리 민족의 생존이 위협 당하게 된 것은 바로 6.15 10.4 선언의 폐기를 부르짖으며 무모한 북한 체제  붕괴 시도 밑에 남북 대결주의에 매달려 국민의 혈세를 복지가 아니라 한미 전쟁훈련과 한물간 미국제 무기 구입 등 군비 증액에 쏟아 붓고 있는 MB와 한나라당에 있다.


 


결국 미국과 이명박 정권의 반북 대결주의가 평화를 깨는 신호탄,복지를 날려 보낸 포탄이 되어 날아왔다. 반북 대결주의자들이 지난 60년 간 이 분단의 동토에 퍼부은 막대한 국방비를 복지에 썼다면 우리 한반도는 지구촌에 우뚝 선 복지 선진국, 동북아 문화 중심이 되었을 것이다.


 


현실은 외세 공조, 대결과 전쟁이 아니라 6.15와 그 실천 강령인 10.4 선언에 명기된 대로 민족 공조와 대단결, 화해와 협력, 평화의 길로 나아갈 때만이 우리 민족의 삶과 행복이 보장된다는 것을 깨우쳐주고 있다.


 


6.15로 돌아가자! 한반도 평화와 공영의 주춧돌인 6.15 10.4 선언의 기치를 들고 남북 화해와 협력을 줄기차게 밀고 나가 군축, 개성공단, 금강산 관광, ‘서해 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등 평화 실현과 교류 협력을 강화하자.


 


평화협력시대를 열어 전쟁 비용을 없애고, 국방 예산을 줄여 복지에 투여해야 한다. 비정규직도 없애고, 최저임금도 현실화하고, 대학생 등록금도 반값으로 낮추고, 장바구니물가도 안정시키고, 노후자금도 마련해야 한다. 무상보육,무상급식,무상검진,무상치료도 해봐야 한다. 아무나 복지를 외치고 모두가 진정한 복지를 갈망하는 지금,그 누구의 시혜를 바랄 것이 아니라 우리 손으로 복지국가를 만들어 가보자.


평화, 그것만이 한국이 복지 선진국으로 가는 첫걸음이자 지름길이다. 지금은 복지와 함께 평화를 외칠 때이다.


 


 

   댓글을 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