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의 저주’란 흔히 경매에서 승자가 됐지만 너무 많은 가격을 불러 실속이 없거나 심지어 망하는 경우를 말한다. 직관으로 간단하게 이해할 수 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자신들의 정보를 총동원해서 매물의 미래 가치를 판단했다면 아마도 그 중간 값 정도가 실제 가치에 가까울 것이다. 그러나 경매에서 승리한 사람은 가장 큰 값을 써 낸 사람, 즉 매물의 잠재성을 극도로 과대평가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경매에 승리하고도, 아니 승리했기 때문에 그가 파산할 가능성은 높아진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승자의 저주’가 언론에 오르내린 건 금호아시아나의 대우건설 인수 실패 때문이었다. 인수 당시의 한 주당 가격이 반토막났고. 또 재무적 투자자에 대한 수익보장 때문에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졌다. 현대건설 인수에 성공했던 현대그룹에 대해서도 똑같은 우려가 제기되었다.

‘승자의 저주’란 책을 펴낸 쎄일러에 따르면 승자의 저주는 출판권 경쟁이나 프로선수 스카웃 경쟁 등 경제에서 흔히 관찰되는 현상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그런 오판을 한 회사, 그리고 그런 행동에 동조한 주주나 투자자가 최악의 경우 파산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시장이란 원래 그런 것이니까. 그러나 그 회사가 대단히 크다거나 금융기관이라면 얘기는 사뭇 다르다. 우리의 외환위기나 작금의 미국 금융위기가 익히 보여 주었듯이 재벌이나 은행이 위험해지면 경제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특히 대형 은행은 경제 시스템의 일부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더욱 문제다.

지금 진행 중인 하나금융그룹의 외환은행 인수가 바로 그렇다. 하나지주는 조회 공시 2주일만에 4조 7000억원에 외환은행을 인수하겠다는 계약을 체결했다. 호주계 은행인 ANZ가 3개월의 실사작업 후에 4조2000억원을 제시한 것에 비하면 참으로 신속하고 과감하다. 뿐만 아니라 이미 확정한 수익보장 배당금 3000억원에, 수출입 은행이 동반매도권(tag-along)을 행사할 경우의 6000억원까지 합치면 인수가는 5조원을 훌쩍 넘어간다.



더구나 하나지주 내부 조달은 45%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증자(27%)나 회사채(28%)로 채우는데, 증자에 참여한 재무적 투자자마저 김승유 회장의 호언과 달리 미국의 헤지펀드들로 알려져 있으니 금호처럼 수익보장을 약속했을 가능성이 높다. 앞으로 기업의 자금수요가 확 늘어나거나(또는 부동산 붐이 일거나) 대단한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한, 바로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질 수 있다.

이렇게 무리를 하면서까지 하나지주가 외환은행을 인수하려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경제학이 제시하는 답은 두가지이다. 첫째는 대리인 문제다. 하나금융그룹의 대리인인 김승유 회장은 자산 1위의 은행을 만든 신화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할 것이다. 더구나 대통령이라는 든든한 ‘백’이 있으니 이 위험한 야망을 가로막을 세력도 없다. 둘째는 대마불사의 문제이다. 따라서 거대은행 경영자들은 고수익 위험투자를 할 유인을 가진다. 성공하면 대박이고 실패해도 은행은 살아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부문에서 ‘승자의 저주’와 ‘대마불사’(大馬不死)가 만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무리를 해서라도 인수하는 게 정답이 된다. 만일 곤경에 빠지면 공적자금이 투입될 것이다. 조기의 최대 공적 자금회수를 목표로 정부가 되살아난 회사를 경매에 붙이면 다시 ‘승자의 저주’를 무릅쓴 인수합병이 시도되고 ‘대마불사’의 신화는 더욱 공고해진다.

이 정도 위험한 상황이라면 정부가 나서야 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수수방관 중이다. 외환은행의 대주주가 론스타이기 때문이다. 론스타는 애초에 한국 은행법 상 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없었지만 한국 정부는 그 당시에도, 그리고 또 그 이후에도 당국의 의무인 대주주 적격성 심사를 제대로 한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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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IMF의 [금융위기 감사보고서]

_미의회, [금융위기 조사보고서]












[손석춘의 길]
진보-민주화세력의 가면?

“이제 가면을 벗을 때가 됐다.” 상대를 이중인격으로 몰아세우는 무례한 언사다. 2011년 3월 <동아일보> 주필은 “입만 열면 인권을 외치는 이 땅의 이른바 진보 민주화세력”을 겨냥해 그렇게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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