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논의] 지금의 통합논의에 대한 평가 (김대호)

By | 2018-06-29T17:04:32+00:00 2010.09.03.|














풍성한 통합논의, 그러나 답은 이거닷 !!!


 


사회디자인연구소 김대호씨가 요즘의 통합논의를 지켜보면서 쓴 글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맥락을 못 짚기는 마찬가지인 듯 합니다만 읽어볼 필요는 있습니다.

















   



1. 9월1일은 꺾어지는 날이다. 심리적, 절기적, 회계적 분수령이다. 양력 계절 분류상 가을의 시작이다. 2학기의 기점으로 삼는 대학도 많다. 회계연도의 기점으로 삼는 기업과 국가도 적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범진보 진영은 지난 8월이 가벼운 정치적 모색기였다면 9월은 본격적인 행보기인 것처럼 보인다.

좀 더 길게 보면 지난 대선, 총선에서의 범진보의 동반몰락 이후 근 2년 여 시간이 성찰과 모색의 씨를 뿌리고 가꾸는 과정이었다면, 6.2 지방선거부터 2012년 겨울 대회전까지 2년 반 시간은 이를 수확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 7~8월부터 본격화된 범진보 진영(지자체와 정치조직, 대중조직 포함)의 행보들은 2년 여 세월의 성찰과 모색의 수준이자, 그 중간 결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8~9월부터 본격화된 “2012 대회전”을 향한 범진보의 행보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 것이다. 지금까지 관전 소감을 한마디로 얘기하면 심히 실망스럽고 우려스럽다.

2. 지난 8월8일은 정동영의원은 ‘저는 많이 부족한 대통령 후보였습니다’란 제목으로 반성문 형식의 출사표를 발표했다. 손학규전대표는 8월15일 “함께 잘 사는 나라를 만들겠습니다”는 제목으로 정치 재개 선언을 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8월15일 “공정한 사회”를 향후 2년여의 핵심적인 가치(?)로 선언하였다)

범진보 진영의 맹주 민주당은 대부분 지역구에서는 지역위원장을 확정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 8월7일 지역위원장 신청을 받는다는 소리 소문 없이 공고를 내고, 8월9일~11일 조용히 신청(?)을 받았고, 중앙당 조직강화특위가 신청자를 심사해서 선정을 하고, 이를 지역 대의원대회가 추인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대구 경북 등 민주당이 도저히 가망이 없는 지역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지역은 지역위원장이 확정되고 있다. 이변이 없는 한 이들의 대부분은 2012년 총선에서 공천을 받을 것이기에-지역위원장들은 공천을 믿어 의심치 않고, 이들을 제어할 수 있는 강력한 중앙 권력은 존재할 수 없기에- 야권 연대다 통합이다 하는 주장은 떠나는 기차를 보고 짖는 강아지 소리처럼 되고 있다.

8월19일 민주노총 정치위원장 김태일은 레디앙과 인터뷰에서 사견임을 전제로 하긴 했으나 “신자유주의 반대와 6.15남북공동성명의 찬성 기조 하에,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민주노총, 진보대통합시민사회, 국민참여당, 사회당, 창조한국당이 11월까지 통합협상을 마무리 하면 민주노총 조합원 10만 명을 통합신당에 입당 시키겠다”고 하였다.
8월26일은 “제3지대 야권 단일 정당 운동(일명 100만 민란프로젝트)”이 홈페이지(국민의명령)를 개설하고, 동참자를 구하고 있다.

8월31일 오후 7시에는 “복지국가와 진보대통합을 위한 시민회의(준)(약칭 시민회의)”가 발기인 대회를 개최하였다. 같은 시각에 다른 장소에서는 “역동적 복지국가를 위한 시민정치포럼(약칭 복지국가포럼)” 출범식이 있었다. 두 단체는 원래 한 몸이었는데, 무슨 이유에선지 분리되어 마치 머리?입과 몸통?팔다리?손발이 분리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고나 할까!

두 단체가 한 몸이던 시절 초안을 잡았을 것이 분명한 시민회의의 출범 선언문(발기인 제안서)을 읽어 보니 지난 10여 년 동안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왼쪽에서 두들길 때 휘둘러대던 논리가 그대로 반복되고 있었다. 범진보 동반몰락 이후 2년 여 동안의 성찰과 모색의 흔적을 찾아 볼 수 없었다.

“외환위기 이후 더욱 강화된 세계화, 신자유주의 정책은 그 동안 힘들여 이룩한 것들을 송두리째 앗아 가고 있습니다. 중산층은 무너져 내렸고 비정규직 노동자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으며, 자영업자는 몰락했고 농어민들은 살아갈 길이 막막해졌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도 일자리를 얻지 못해 미래의 희망을 잃고 있습니다. 이른바 ‘민주정부’의 집권 기간에도 빈익빈 부익부 추세는 계속되었고(중략) 우리 국민들이 가장 바라는 진보적 국가의 비전인 21세기형 역동적 복지국가를 이루어낼 진보대통합정당의 결성에 나서야 합니다(중략).


시민회의가 우선 만들어갈 11대 정책의제 

 1. 보편주의 복지국가의 건설/ 2. 지속가능한 사회의 구현/ 3. 고용의 양극화 해소 및 실질적 완전고용실현(중략)

3.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의 사고방식이나 시민회의 출범 선언문(발기인 제안서)에 흐르는 철학, 가치, 비전, 정책 우선순위는 정동영의원의 반성문의 그것과 거의 다를 바 없기에 비판을 길게 반복하고 싶지 않다.

긴 얘기 확 줄이면 첫째, 양극화의 원흉으로 신자유주의를 지목하는 것은 너무나 단견이라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신자유주의의 상징인 경쟁과 시장이 제대로 규율되지 않아서 생기는 모순?부조리가 분명히 있다. 그렇다고 해도 “제대로 된 규율”을 고민하지 않고, 경쟁과 시장 자체를 적대시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하물며 한국 사회는 경쟁과 시장(소비자, 유권자 선택권)이 너무 적거나 비껴가서 유지, 온존되는 모순?부조리가 너무 많고, 또 심각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국은 국가(관료)주도의 경제사회 개발로 대성공을 거두었기에 그 그늘(유효성이 다한 가치와 제도)이 짙은데다가, 강성한 이익집단의 힘에 밀려 경쟁과 시장이 비껴가는 곳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타령을 늘어놓는 자들은 박정희 시스템의 혁파 필요성에 대한 이해도 없고, 강성한 이익집단에 의해 왜곡된 경쟁과 시장에 대한 이해도 없고, 세계화, 지식정보화, 민주화 등 한국이 거부하기 힘든 대세에 대한 응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한마디로 신자유주의를 막 휘두르는 자들은 예외 없이 한국 사회의 바닥현실도 한국의 물질적 문화적 생산력의 조건도, 세계사의 큰 흐름도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둘째, 보편적 복지를 진보의 정체성으로 삼고, 선별적 복지를 보수의 정체성으로 삼기에는 1차 분배 구조 내지 사회 곳곳에 너무 심각한 모순?부조리가 있다. (이는 복지가 진보의 대표 상품이 되면 곤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2차 분배 구조인 복지(전달체계, 운영체계 등)에서도 불합리한 부분이 너무나 많고, 세금/보험으로 조성된 거대한 재정 및 복지 재원을 운영할 공공부문에 대한 이유 있는 불신도 심각하다. 사회 전반적으로 자산/소득 격차가 너무 커서 세금/보험 부담자와 수혜자가 다를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한국 보수는 복지 확대 자체에 대해서 별 의지가 없다. 1970년대 복지(과잉)병을 앓던 영국과 복지(과소)병을 앓는 한국을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셋째, 이들은 참여정부에 대한 반성과 민주당에 대한 혁신을 주문하는데 반해 자신들에 대해서는 단지 대통합을 주문하고 있다. 자신들은 반성과 혁신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또한 이들은 보수와 진보를 오가는 스윙보터(SWING VOTER)를 어떻게 진보 편으로 결집지에 대한 해법도 없어 보인다. 역동적 복지국가를 내세우고 진보가 대통합하면 될까? 나는 이런 시도와 2007년 대통합민주신당을 만들고 “차별 없는 성장 가족 행복 시대”를 고창하던 시도가 얼마나 다를지 모르겠다.

4. 외환위기-신자유주의-양극화심화-비정규직 폭증을 조합하여 지난 10여년을 진단하고 그 처방으로 “복지국가” 또는 더 확실한 좌클릭(민노당 진보신당 쪽으로)을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진보 좌파와 (민주노총 등)대중 조직의 성과, 한계, 오류를 제대로 평가 반성한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한국의 노동현실, 기업현실, 일자리 현실 등 바닥현실을 제대로 천착한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그런 점에서 한국 범 진보가 이 수준 밖에 안 되나 하는 한탄이 절로 나온다.

이는 이명박과 한나라당이 너무 빨리, 너무 적나라하게 부패 무능 몰상식을 드러내 버렸기 때문에 범 진보가 차분히 자신을 돌아볼 시간을 갖지 못한 사정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성찰하지 않아도 정치적 반사 이익이 그야말로 쓰나미처럼 몰려 왔기 때문이다. 물론 주체적으로 어찌할 수 없는 환경은 탓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범진보 진영의 정치 지도자들과 오피니언 리더들의 지적 나태 내지 비논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5. 사건과 사물을 지극히 일면적으로 해석하는 신자유주의라는 개념 틀이 한국 진보 진영에서 너무나 널리 사용되는 것은 한국 사회의 바닥현실과 그 작동 메커니즘을 잘 모르는, 한마디로 한국과 영국/미국 간의 사회 발전 단계의 차이를 잘 모르는 강단 좌파의 지적 나태와 (구조조정과 민영화로 인해 큰 타격을 받는) 대기업,공기업 노조의 물질적 문화적 영향력의 합작이 아닌가 한다.

6. 범 진보가 한없이 후지다고 해서 2012년 총선, 대선에서 승리하지 못하라는 법은 없다. 범 보수 역시 후지기 이를 데 없으니까! 하지만 결코 기뻐할 수가 없다. 진보든 보수든 격렬하게 좌우로 요동치는 반사이익에 기대어 이긴다면, 우리 사회는 상대적 지체, 서행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퇴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7. 나는 조선로동당과 북한 체제를 민족사적 비극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를 만들어낸 철학, 가치, 심리(피해의식, 편집증, 경직성 등)는 진화를 멈춘 진보좌파-비록 북한체제에 대해 한없이 적대적인 PD파라할지라도-의 그것과 그리 많이 떨어져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심리만으로 보면 조갑제 등 한국 보수의 그것과 북한 지도부의 그것도 그리 멀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함부로 친북좌파라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나의 중요한 관심의 하나는 ‘왜 1970년대까지 사회주의의 모범생인 북한이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에 적응을 못하여 이렇게 처참한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는가?’ 있다. 이는 현재까지는 자본주의 개방 경제의 모범생인 남한이, 급변하는 국내외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여 수십 년 후 북한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점점 짙어지기 때문이다.

8. 내가 아는 한 한국은 글로벌 경쟁(시장) 내지 충격에 노출되지도 않고, 대중적 감시의 눈길도 미치지 않는 부문의 모순?부조리가 심각하다. 소비자/유권자의 선택권과 심판권에 노출되지 않아 잘하는지 못하는지도 모르고, 못해도 망하지 않는 부문의 모순?부조리가 더 심각한다. 이들은 하나 같이 불투명하다. 이른바 복마전이다.

누군가 한국에서 극심한 불의와 야만이 어디에 지천으로 깔려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할 것이다. 한국 안에서만 통하는 부문, 시장과 경쟁이 비껴가는 부문, 정치와 행정에 의해 제어되는 부문, 그 안에서 돈이 어떻게 흐르고,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는지 모르는 불투명한 부문을 지목할 것이다. 정치, 행정, 사법, 언론, 공기업, 관변단체(새마을, 바르게살기 등), 토건, 방송, 통신, 은행, 보험, 대학, 중고교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공급자간 경쟁도 치열하고 원청의 약탈도 없는 학원, 병의원, 교회, 요식업, 개인서비스업(미장원 등), 독립 중소기업 등의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별로 떨어지지 않는다.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 한국 사회의 바닥현실과 그 내밀한 작동 메카니즘(속살)을 찬찬이 살펴보다 보니, 불투명한 부문, 경쟁과 시장이 비껴가는 부문, 독과점 부문과 관련된 가치생산 사슬이 지극히 불건전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치도 크게 보면 비슷하지만 그래도 정치는 언론과 네티즌에 훤히 노출되고, 무엇보다도 4~5년에 한번 정도는 유권자들의 선택과 심판을 받기에 상대적으로 낫다고 생각한다.

9. 나는 공공 부문이나 공공에 의해 관리 통제되는 부문에 대한 개혁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남한도 수십 년 후쯤에 북한처럼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부문에 대한 개혁의 승패 여부는 정치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 이메일 주소를 itspolitics@naver.com으로 정했다.

10. 90년대 초반에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詩가 386세대에게 널리 회자 되었다. 지금 돌아보면 새파란 나이인 서른에 잔치는 끝났다고 방정을 떨었는데 어느 덧 386 세대가 486을 넘어 586에 진입하고 있다. 이젠 확실히 인생의 가을에 들어선 것이다. 

2010년의 가을과 인생의 가을이 오버랩 되는 오늘 9월 1일 지난날을 돌아본다.
나는 1990년대 이후 지금까지 X86세대 혹은 광주 세대가 사회의 중추가 되면 꽤 괜찮은 나라를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특히 한국 사회의 개혁중의 개혁인 정치(정당, 국회, 공천, 선거제도 등) 개혁을 이뤄서 수많은 난제를 해결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치적, 정책적 경륜이 물오를 대로 오른 지금, 사회의 중추가 된 지금, 과거의 낙관적 기대는 어림없어 보인다. 이는 단지 X86세대 혹은 광주 세대의 혼미와 무능의 문제만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사회 전체가 병들고 혼미하다 보니 그 윗세대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아래 세대도, 보수도 그리 나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우리가 북한을 보며 답답해하고 안타까워하듯이, 중국, 미국, 영국, 독일, 이스라엘의 공공엘리트들은 한국의 공공엘리트를 보면서 답답해하고 안타까워하지 않을지 모르겠다. 모두 지랄하고 자빠졌다고!!! 국민의 평균 수준이나 생산력(1인당 소득) 수준에 비해 너무 뒤떨어진다고.

11. 지난 2년 동안 사회디자인연구소를 통해서 꽤 많은 말을 했지만 역시 말은 별로 힘이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상당한 교양과 통찰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가 피력한 생각에 깊이 공감을 하든지, 분명히 반대를 하든지 하겠지만, 대다수는 이 얘기를 들으면 이것이 옳은 것 같고, 저 얘기를 들으면 저것도 옳은 것 같다고 느낄 것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사람의 생각은 참 안 바뀐다는 것도 절감한다. 그래서 사회의 주류적 패러다임이 바뀌려면 거대한 역사적 경험과 긴 시간과 빼어난 지도자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의 말이 무력하고, 사람들의 생각이 완고하다 하더라도 바른 말을 하는 일을 중단하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정신을 표현하는 작은 전투(새로운 시민운동)로 구체화, 다각화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절감한다. 지난 2년은 담론을 갈고 다듬는 과정이자 (유능한 관측병과 계산병에 의해 유도되는) 강고한 모순부조리의 급소를 정확히 찌르는 시민운동과 현실 정치를 재발견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12. 지금 우리는 희미한 희망의 빛을, 단순 무식하기 짝이 없는 “국민의 명령”에서 보고 있다. 민주당의 자발적 환골탈태, 시민회의와 복지국가 포럼의 시도, 제3지대 야권단일 정당 운동 중에서 그래도 야권단일 정당운동이 가장 많이 열려 있고, 깨어있는 시민들의 정서에도 잘 맞고, 결과적으로 정치적 지하수를 가장 많이 개발할 수 있지 않나 해서다. 나는 지표수 보다 수량과 수질이 월등한 정치적 지하수 개발 없이 한국 사회의 진보와 개혁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땅에 파이프를 박는다고 해서 지하수 개발에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파이프를 박을 생각도 없는 다른 노선에 비해서는 그래도 해볼만 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이를 먹으면서 보니, 일반 상품의 경우야 생산.판매자의 인격, 정신, 영혼, 마케팅전략이 좀 저열해도 종종 대박을 터뜨리지만, 거대한 규모의 (파괴, 저지가 아닌) “창조 건설 운동”은 그 중심 주체들의 영혼, 안목, 마케팅전략, 실행 프로그램 등이 고귀하고 참신하고 탁월하지 않으면  대박을 치지 못한다는 것을 절감하다 보니 걱정을 완전히 내려 놓을 수가 없다.-끝-

2 개 댓글

  1. portoce 2010년 9월 6일 at 12:14 오후 - Reply

    테니스코트의 서약을 받아내려면 종교인, 시민, 귀족들이 두루 호응해야 합니다.
    문제는 귀족들과 종교인들이 대외전쟁의 실패를 국왕에게 돌리고, 언플로 세상을 조롱하는것도 주의해야 할 점입니다.

    • bj971008 2010년 9월 6일 at 3:28 오후 - Reply

      후작님,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뵙죠? 역시 귀족다운 말씀을 하십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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