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받으실 때, 저는 이곳 오스틴에서 그토록 바라던 평온한 휴식을 비로소 얻게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2004년 공부를 마치고 귀국 후 정신없이 일하며 보냈던 처음 1년을 제외하고는, 제정신을 갖고는 결코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던, 어떤 보이지 않는 장애물을 넘으려 발버둥 거리며 만 4년을 보낸 후 이곳 오스틴에서 비로소 갈망하던 안식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글에서 ‘오스틴’은 미국 텍사스 주립대의 캠퍼스다. 글쓴이는 이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경선. 그는 학위를 받고 꿈에 부풀어 귀국했다. 편지에 스스로 밝혔듯이 “귀국 초에는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듯, 열심히 강의하고 논문 쓰면 학교에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란 마음으로 하루를 쪼개어 고시원과 독서실을 전전하며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열심히 논문을 쓰며 보냈”다. 하지만 아니었다. 한경선 박사는 곧 자신이 얼마나 순진했던가를 깨달았다. 더구나 시간강사에 대한 대학당국의 부당한 처사에 진저리를 쳤다. 들머리에 인용한 글에서 ‘평온한 휴식’은 죽음이다. 그가 보낸 편지는 유서다. 미국 텍사스에서 목숨 끊은 이 땅의 지식인 옹근 2년 전이다. 2008년 2월25일,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이명박이 취임하던 바로 그 날, 조국으로 이 편지를 보낸 뒤 고인은 음독자살했다. 고인은 “그럴듯한 구호나 정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진정한 반성과 성찰 없이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대학사회의 부조리에 절망감을 토로하며, “저와 같은 이가 있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기원을 위해” 목숨을 던졌다. 하지만 고인의 ‘작은 기원’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를 회복하는 그 작은 일에 우리 사회는 냉담하다. 비단 한경선 박사만이 아니다. 1998년 이후만 꼽아도 시간강사 6명이 자살했다. 대학강사의 교원지위 회복을 위해 ‘고등교육법 개정’을 요구하며 시간강사들이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인지도 어느새 900일이 넘어섰다. 하지만 감감하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몇몇 집권당 국회의원이 관심을 보였지만 시나브로 흐지부지됐다. 그나마 이명박 정부 들어서서는 논의자체가 막혔다. 저마다 대학 재단과 연결된 부자신문들이 시간강사 문제를 여론화하지 않는다고 새삼 탓할 생각은 없다.‘취업 문제’로 경쟁에 내몰린 대학생들에게 자신들의 온전한 학습권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강조할 생각도 없다. 다만 묻고 싶다. 왜 정규직 교수들은 침묵하고 있는가. 시간강사들의 간절한 요구에 교수들은 왜 침묵하나 시간강사들의 강의료는 시간당 2만~6만 원이다. 신분보장도 전혀 없다. 종강 무렵에 학과 조교로부터 전화가 없으면 강의가 없다. 참으로 고약하지 않은가. 더러는 재정 탓을 한다. 전혀 합당하지 않다. 국고에서 해마다 한국학술진흥재단, 누리사업, BK21, HK사업에 3조 원이 넘는 돈을 지원한다. 그 돈 가운데 일부만 써도 충분하다. 수천억 원이 쌓여 있는 사립학교 적립금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물론, 시간강사들의 농성에 적극 관심을 보인 교수들도 있다. 지성인으로서 대학을 지켜가는 극소수 교수들을 만날 때는 저절로 마음이 따뜻해온다. 하지만 대다수 교수들은 어떤가. 시간강사들이 거리에서 900일 넘도록 애면글면 벌이는 저 고독한 시간들을 아예 모르쇠한다. 대학에서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처우는 정규직 교수들과 견주면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다. 묻고싶다. 혹 알량한 권력의식으로 그 차이를 즐기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오해라면 시간강사들 싸움에 동참을 촉구한다. 동참이 어렵다면 지원이라도 하라. 그래야 할 가장 큰 이유는 이 땅의 대학이 썩어가고 있어서다. 이 나라의 미래가 어두워서다. 덧글/ 한경선 박사의 2주기 추모행사는 2월 27일 저녁 6시 국회의사당 건너 국민은행 앞 대학교육정상화 투본 천막 농성장에서 열린다(후원 우체국 014027-02-051521 김동애). 손석춘 2020gil@hanmail.net* 이 글은 ’손석춘의 새로운 사회’ 오마이뉴스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블로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