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뷰> 대통령과 회장님들의 ‘화려한 만남’ 지난 1월 14일,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라는 대기업 단체는 올해 30대 그룹이 87조의 신규 투자와 7만 9천명의 신규 채용을 실시한다는 계획을 보고했다. 전경련의 설명에 따르면, 투자 규모는 16.3%, 채용 규모는 8.7%가 늘어날 것이라고 한다. 덧붙여 전경련은 ‘300만 일자리 창출위원회’ 구성을 제안하였다. 이런 모든 전경련의 약속들이 고용 창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인식한 것이라면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과연 대기업들의 약속을 신뢰할 수 있을 것인가?대기업들은 대중들의 관심사가 집중되어 있는 적절한 시기에 채용 계획을 발표하면서 자신들의 이미지를 최대한 제고시키고 있다. 또한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집단을 지원하는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기업들이 대규모 투자와 채용 계획을 주로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발표하는 것은 이런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의 만남에서 무언가 중요한 보따리가 풀어지는 것은 어디서 꽤나 자주 본 것 같다. 말하자면 데자뷰(기시감) 현상이다. <타이밍> 대기업과 정부의 상부상조 전경련의 발표를 마냥 신뢰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보다 발표시점 때문이다. 발표 다음날 거의 모든 방송과 신문들이 이 내용을 주요한 기사로 다루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관련 기사가 쏟아진 1월 15일은 바로 전경련이 대통령을 초청해 30대 그룹 회장단과 간담회를 갖는 자리였다. 전경련은 미리 화려한 포장지의 보따리를 국민 앞에 풀어 놓아 환심을 산 다음, 정작 간담회에서 대통령 앞에 쏟아 놓은 것은 규제 완화와 노동 유연화였다. 전경련은 매년 취업시즌이 도래하는 연초와 9월경 그리고 연말에 주요 기업들(300~600대 기업)의 투자 및 채용 계획과 실적을 발표해 왔다. 그러다가 현 정부가 출범한 2008년부터는 이와는 별도로 30대 그룹의 투자 및 채용 계획을 내놓고 있다.30대 그룹이라 하면 우리 경제의 중추라 할 수 있기 때문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30대 그룹의 발표 날짜를 확인해 보자. 30대 그룹 별도 계획이 발표된 것은 지금까지 단 세 차례인데, 아래의 표에 있는 일정들과 깊은 관련을 갖고 있다. 먼저 2008년 9월 18일의 만남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 이 날은 재계 총수들이 새 정부 출범 이후 대통령과 가지는 두 번째 공식 만남으로써 지난번 제1차 민관합동회의의 후속 성격을 가진다. 제1차 회의에서 대통령은 규제 혁파 의지를 거듭 강조하면서 투자를 당부했고 제2차 회의를 앞두고 재계는 30대 그룹의 투자 및 채용 계획을 밝히며 이에 화답했다. 제2차 회의 직전에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지면서 경제위기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던 때라 30대 그룹의 채용 계획은 여느 때와 다른 무게로 다가 왔다. 어쨌든 정작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대기업 총수들은 고용창출보다는 한미FTA, 기술이전, 반기업정서, 지주회사 규제 완화 등 민원을 쏟아냈다.2009년 7월 2일경 정치권의 최대 쟁점은 ‘비정규직법 개정안’이었다. 정부는 노동부를 앞세워 ‘비정규직 100만 해고대란’이라는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이런 공포감을 지렛대 삼아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제한 완화를 추진하였다. 야당과 노동계의 극렬한 반대 속에 결국은 법률개정안이 상임위를 통과하지는 못했으나 바로 그 전날 한나라당의 상임위 법안 기습 상정으로 갈등이 최고조에 다다른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발표된 30대 그룹의 채용 계획은 ‘노동의 유연화가 더 많은 고용’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기업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이었다.마지막으로 올해의 발표시점은 어떻게 볼 것인가? 2008년과 2009년에 비해 노골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무게감의 측면에서는 대통령이 직접 전경련 회관을 방문하였다는 점, 단독회동이었다는 점에서는 더욱 커졌다고 할 수 있다. 올해 정부의 경제정책 가운데 최우선 순위는 고용에 있으며 최초로 개최되는 대통령 주재 하의 ‘고용전략회의’가 구성되었다. 무게감을 더해야 할 ‘고용전략회의’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전경련의 의도가 담겨있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부풀리기> 감추어진 퇴직 인원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신의 이해관계를 대중들에게 보다 효과적으로 주입시키기 위해서 각종의 전략을 자유롭게 사용하는 것은 보편화되어 있다. 따라서 정부와 손발을 맞추는 것 같다 해서 30대 그룹의 채용 계획 발표를 금지시킬 수는 없는 일이며, 심지어 부도덕하다고 폄훼할 수도 없다. 그러나 한국경제에서 차지하는 대기업들의 영향력과 독점력에 비추어 그들의 채용 계획이 얼마나 신중하고 책임있는 발언인지는 분명히 따져 보아야 할 일이다. 더구나 고용 문제는 이제 모든 국민들의 관심 사항이 아닌가? 전경련의 화려한 채용 계획은 실제보다 부풀려져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30대 그룹은 지난 해 5만 9286명을 뽑겠다고 발표했지만, (2009년 7월 2일. 전경련, “30대 그룹 투자 및 채용 계획”) 실제로는(공식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해 상장사 채용은 6.3% 감소했고, 10대 그룹 상장사의 고용은 불과 2,400명 증가했을 뿐이다. (2009년 9월말 현재. 한국상장사협의회, 1월 17일자 발표.)이처럼 채용 계획과 실제 실적이 크게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대기업들이 ‘들어 온 인원만 강조하고 내보낸 인원은 제대로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30대 그룹의 발표에 따르면, 2009년에 7만 2863명이 신규 채용되는 동안 5만 9194명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 이로 인해 실제 30대 그룹이 늘린 고용 규모는 1만 3669명에 그치게 된다. 퇴직율이 무려 6.7%, 약 15명 중에 한 명 꼴로 퇴직하는 것이다. 이외에도 대기업들의 고용 약속은 발표하는 시점마다 숫자가 달라지는 점도 지적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2008년 신규 채용 규모를 보면, 2008년에 계획을 발표할 때는 8만 5540명이었는데 2009년에 실적을 발표할 때에는 8만 3949명으로 줄었다가 2010년이 되어 참고자료 이외에는 의미없게 되었을 때는 8만 4642명으로 다시 늘었다. 동일한 2008년 데이터인데도 발표할 때마다 숫자가 춤을 추는 이유는 전경련 발표의 신뢰성을 떨어뜨리게 한다. 대기업들은 ‘안정된 일자리’ 약속을 지켜라. 2009년 말 현재 30대 그룹의 총 근로자 수는 약 90만 명에 이르며, 2003년 이후 계속해서 고용을 늘려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30대 그룹을 다 합쳐도 연간 1~2만 명을 늘린 것에 불구하다. 이 정도 규모를 늘리면서 대기업들은 고용 약속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고 그 규모를 부풀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최근 30대 그룹은 청년인턴 채용을 크게 늘리고 있다. 2007년에 5381명이었던 청년인턴 규모는 2008년에 7020명으로 30.5%나 늘어났고, 정부가 청년인턴을 적극 독려한 2009년에는 1만 3023명으로 무려 85.5%가 늘었다. (2009년은 계획 기준) 최근 3년 동안 30대 대기업들은 청년구직자들에게 ‘불안정한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기업들은 현재 자신의 성장 전략을 국내 고용의 확대에 두고 있지 않다. 오히려 국내 고용의 부담을 불안정한 일자리로 최소화하면서 세계 시장으로의 진출을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이다. 매년 되풀이되는 화려한 말잔치로 자신들의 고용 책임을 눈속임하지 말고 신중하고도 책임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대기업들의 진정한 고용 책임 네 가지 대기업들의 채용 규모는 보다 투명하고도 이해하기 쉽게 공개되어야 한다. 매번 신규 채용 규모만이 강조되는데 이는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을 어렵게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연초 채용계획 대비 연말 실적을 정확히 분석해서 공개해야 할 것이다. 퇴직 인원을 제외시킨 순 고용 규모를 밝힘으로써 국민경제에 대한 책임성을 분명히 해야 함은 물론이다. 정부 또한 대기업들의 고용 통계를 따로 집계함으로써 사후 검증 절차를 확립해야 할 것이다. 고용 문제 해결에 있어 대기업들의 책임은 양적인 고용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대기업들이 하청 중소기업들의 수익 및 고용 사정을 어렵게 하고 스스로 불안정 일자리를 늘리고 있으며 노동시간 연장을 추구해 왔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실천 계획을 밝혀야 할 것이다.첫째, 초과 노동으로 생산확대에 대응하는 관행을 멈추고 노동시간 단축으로 일자리의 여지를 만들 것 둘째, 대기업 사업장이 이미 노동자 5명 중 1명 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늘린 사실을 인정하고 이들을 직접 고용할 것 셋째, 수익률 회복이 달성된만큼 납품단가를 조속히 인상하여 중소기업의 고용여력을 증대시켜 줄 것 넷째, 직접 고용이 어렵다면 ‘고용 기여세’ 또는 ‘사회 기금’ 출연을 적극 검토하여 국가적 고용 확대의 재원 마련에 나설 것 대기업들은 경제위기의 와중에도 사상 최고의 이익을 실현함으로써 현재 1000퍼센트가 넘는 사내 유보금을 쌓아 두고 있다. 이런 막대한 유보금에도 불구하고 대기업들은 한국 경제라는 자신의 성장 토양과 국민 경제로부터 받은 차별적인 수혜를 망각하고 있다. 이상동 sdlee@saesayo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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