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2018 새사연 현장연구 시리즈 중 하나로, 일터를 떠나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담아 연구했습니다. 퇴사연구팀은 지난 6월부터 12월까지 총 6개월에 걸쳐 21명의 청년 (예비)퇴사자를 만났습니다. 퇴사연구팀에는 천주희, 최혜인, 황은미 연구원이 함께 했습니다.
청년들이 취업난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좁아진 취업문을 통과하기 위해 대학 졸업을 유예하거나 취업 준비 기간을 늘려서 더 많은 스펙을 쌓는 데 여념이 없는 풍경도 익숙해졌다. 청년 취업난이 공론화된 것은 IMF 이후부터이다. 청년실업 문제가 주요한 과제로 떠오르면서 각 정부에서는 청년 일자리 정책을 통해 안정적인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렇게 지난 20년 동안, 청년들의 노동문제는 개인의 차원을 넘어 사회와 국가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로 인식됐다.
청년 노동시장을 안정화하기 위해 각 정부와 지자체에서는 주로 고용률과 실업률을 조정하고, 일자리를 양적으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왔다. 그러다 보니 정책 방향도 고용률을 늘리고, 실업률을 줄이는 방식으로만 다루어져 왔다. 그리고 청년들이 처해있는 경제적 조건이나 사회문화적 고려 없이 시행된 정책은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2018년 8월 고용동향 보고에 따르면, 평균 고용률(만 15~64세)은 66.5%인데 반해 만 15~29세 청년층 고용률은 42.9%였다. 한편 실업률은 평균 4.0%에 반해 청년층의 실업률은 10.0%였다(통계청 2018b). 전 연령 대비 청년층의 고용률과 실업률은 심각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청년 노동시장에 새로운 현상이 출현하고 있다. 청년 비경제활동인구와 청년 퇴사자가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2018a) 청년 부가조사 결과, 청년들이 졸업 이후 첫 취업까지 걸리는 기간은 평균 10.7개월이고, 첫 직장 평균 근속기간은 1년 5.9개월로 나타났다. 한국경영자총협회(2016)에서 전국 306개 기업을 대상으로 진행한 「2016년 신입사원 채용실태 조사」에서는 대졸 신입사원의 1년 내 퇴사율이 2014년 25.2%에서 2016년 27.7%로 증가했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300인 미만 기업에서 퇴사율은 2014년 31.6%에서 32.5%로 증가했다. 사회초년생이 입사해서 퇴사하기까지 근속 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다. 물론 이 실태조사는 일부 기업에 한정되어 있고, 대학졸업자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경영자의 관점에서 시행한 실태조사인 만큼 청년들의 퇴사 현황과 상태를 제대로 반영했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1~2년 이내 청년들의 퇴사 비율이 최근 들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경향을 기업에서도 주목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한 사항이다.
왜, 퇴사에 주목해야 하는가?
연구팀이 청년들의 퇴사에 주목하게 된 데에는 청년 고용정책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 퇴사자가 증가한다는 것은 오늘날 한국사회의 일터와 일 경험에서 어려움을 겪는 청년이 증가하고 있다는 말과 같다. 그렇다면, 이러한 어려움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그럴 때 청년 고용정책뿐만 아니라, 청년 퇴사자들을 위해 사회적 준비를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불과 20~30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 사회에는 ‘평생직장’의 신화가 있었다. 취업하고, 근속기간이 늘어날수록 승진을 하는 구조에서 사람들은 명예롭게 ‘퇴직’하는 날까지 회사에 헌신하며 가정을 꾸리는 삶을 좋은 삶의 모델로 삼았다. 그동안 퇴직은 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던 사람들이 은퇴 시기와 맞물려 회사를 떠나거나 다른 직업군으로 이동 혹은 다른 삶으로 전환하는 의미로 사용됐다. 물론 이 ‘평생직장’의 신화의 수혜자는 한국에서는 주로 남성이었다.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이 오랫동안 경제구조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중년의 남성들이 (명예)퇴직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평생직장, 퇴직의 구조는 흔들리고 있다. 불안정한 직장, 조기 은퇴, 퇴사자가 늘었고, 비정규직, 아웃소싱과 같은 더욱 유연한 고용 구조로 대체되었다. 그 사이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늘었고, 청년들의 대학 진학률도 급격히 증가했다. 부모세대보다 학력도 높고, 스펙도 높지만 안정적인 직업을 얻기란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구조적인 변화가 일터와 일상에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퇴직과 퇴사는 일터를 떠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지만, 사회문화적인 배경에서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닌다. 리처드 세넷은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에서, 노동의 유연성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일의 의미가 변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직업(career)으로써 일은 마차가 지나는 길이라는 의미에서 평생 한 우물만 판다는 뜻이 강했다. 반면에 일자리(job)로써 일은 짐수레로 실어 나르는 한 덩어리나 조각의 물건을 의미한다. 과거 퇴직이 가능했던 시대는 개인이 직업으로써 일의 의미를 지니고, 그 경력을 일터에서 쌓아갈 수 있었다면 오늘날 퇴사가 빈번한 시대는 일자리로써 일을 경험할 뿐 그것을 직업으로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버렸다.
이러한 변화는 일의 의미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인간성(character)에도 영향을 미친다. 세넷이 말하는 인간성이란,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자신의 욕구를 존중하는 윤리적 가치로서 인간성을 의미한다. 이때 인간성은 정서적 경험과 관련이 깊고, 장기적인 목표를 추구할 때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불안정한 고용구조와 잦은 퇴사는 일터에서 인간성을 형성하기 어렵게 만든다. 특히 이미 불안정한 고용과 노동구조가 고착화된 한국사회에서 뒤늦게 일터에 들어간 청년들은 직업으로써 일을 경험하기보다 일자리로써 일을 경험하게 되고, ‘퇴직’ 단계에 이르기 전에 ‘퇴사’를 하는 일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연구팀은 2030세대 혹은 청년세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어떤 배경에서 일하고, 퇴사를 하게 되었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퇴사가 더 이상 새로운 현상이나 예외적인 상태가 아닌 사람들에게 개인의 노동과 일, 일터와 동료의 관계는 어떻게 변하고 있으며, 이후 생애 기획에 영향을 미치는지 답을 찾는 과정이 이 연구의 목적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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