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든 틀을 갖추는 것은 필요하지만 틀에 갇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요즘 우리 사회에 불고 있는 협동조합 바람을 들여다보다 든 생각이다. 협동조합법 도입 후 7개월이 지났고 전국에 1400여개나 되는 협동조합이 생겼다. 지자체마다 협동조합 지원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정부는 7개월의 경험을 반영하여 협동조합 기본법의 개정을 준비 중이다. 그런데 협동조합의 확산만큼 협동의 가치도 확산되었을까? 협동조합기본법과 다양한 지원 정책들이 늘어나는 만큼 우리의 삶이 협동하는 삶으로 변화하고 있을까?
동자동사랑방공제조합은 2011년 쪽방촌 주민들이 모여서 만들었다. 쪽방촌 생활을 10년째 해오고 있는 이태헌 동자동사랑방공제조합 이사장이 주민들을 모아놓고 “이중에 병원에 갔는데 병원비 한번에 낼 수 있는 사람 나와봐, 은행가서 돈 빌릴 수 있는 사람 나와봐, 없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협동해야돼.” 라고 말하면서 시작되었다. 400명의 조합원은 대부분 국민기초생활 보호대상자와 차상위 계층으로, 한 구좌 당 5천원씩 6300만원을 출자했고, 이 돈을 기반으로 조합원들에게 6700만원을 대출하였다. 임대주택 보증금, 병원비, 생활안정자금 세가지 경우에 대출을 해주고 있다. 상환율은 71%에 달한다.
쪽방촌 주민들에게 은행 대출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다. 쪽방촌 주민들이 빌려간 돈을 갚을 것이라고 믿어주는 금융기관은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은행을 만들었다. 앞으로는 의료생협과 소비자생협도 만들 계획이라고 한다. 스스로 병원을 만들고 슈퍼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기초생활수급비 지급에 그치고 있는 부족하기 짝이 없는 정부의 복지정책 속에서, 협동과 신뢰에 기초하여 스스로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동자동사랑방공제조합은 쪽방촌의 작은 자치정부일지도 모른다.
동자동사랑방공제조합은 자활센터에 기반을 둔 자활공제협동조합이다. 현재 전국에 260개의 자활센터가 있으며, 이 중 80% 정도에 자활공제협동조합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자활공제협동조합은 협동조합이 아니다. 협동조합 기본법에 의해 금융이나 보험업은 할 수 없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 소액대출과 상호부조를 할 수 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사업의 40% 이상이 지역주민이나 취약계층을 위한 공익사업이어야 한다. 쪽방촌 상황에서 이를 감당하기는 어렵다. 때문에 앞으로 협동조합 기본법 개정안이 도입되면 협동조합과 유사한 명칭 사용이 금지되면서, 이름을 바꾸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지역에 기반하여, 주민들 간의 신뢰를 쌓아가면서, 어려운 일을 서로 도와가는 매우 바람직한 협동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만, 법이 정해놓은 틀에 맞지 않기 때문에 협동조합이 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리의 협동조합 기본법이 과연 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우선 협동조합이 금융과 보험업을 할 수 없도록 한 규제를 바꾸고, 공제협동조합을 인정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다.
틀보다 중요한 것이 내용이다. 협동조합보다 중요한 것이 협동이다. 우리사회에 협동조합이 확산됨으로써 일자리가 늘어날 수도 있고, 복지가 확충될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삶에 더 많은 신뢰와 협동이 자리잡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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