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전쟁위기가 한창이다. 북미간 최종담판 성격의 전략대결이 이어지고 있는 현재, 한국사회에서도 핵전쟁의 우려가 갈수록 늘고 있다.
미국과 대치한 북한주민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3월22일, 북한 당국은 일제히 ‘공습대피경보’를 발령하고 주민소개 훈련을 단행, 북한당국의 신호에 따라 전 주민들이 방공호로 대피하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북한접경지역인 단둥의 중국인들은 북한주민들이 매우 긴장해 있다고 전한다. 북한당국은 주민들에게 “모든 당조직들은 고도의 격동상태에서 전쟁에 대처할 만단의 준비를 갖출 데 대한 문제들을 토의하였다.”고 밝혔다. 최고사령부 성명 지지 평양군중대회가 개최되는 등 북한당국은 온 나라에 일찍이 있어보지 못한 인민군대 입대, 복대 탄원열풍이 일고 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전쟁위기가 고조되면 주민들이 동요하고 통치질서가 문란해진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국가들은 실제 전쟁이 발발하면 군대가 전면에 나서는 계엄통치로 체제를 지탱한다. 우리 정부도 고도의 전쟁위기가 이어지면 북한당국의 통치질서가 약화될 것으로 판단하는 듯 하다.
그러나 상황을 그렇게만 볼 수 없는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 최근 두드러지는 탈북자들의 재월북 현상이다. 한때 북한사회를 등지고 한국에 들어왔던 탈북자들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고 있다. 2012년 6월 28일, 서울에 살던 탈북자 ‘박인숙’씨는 중국을 경유해 재월북하였다. 그는 평양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본인이 탈북을 하였는데도 그 아들은 계속 학업에 전념할 수 있었다며 ‘쇠고랑을 채워도 할 말이 없는 나를 극진히 대해줄 때 고마움에 눈물을 쏟고 말았다.’고 하였다. 동시에 박인숙씨는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심각한 차별에 직면해 품팔이, 허드렛일에 종사하며 근근히 생활하고 있는 현실을 폭로하며 한국사회를 비난하였다.
박인숙씨처럼 월북하는 탈북자는 한둘이 아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전 의원은 작년 7월 22일, 제주도에 정착한 탈북자 5명이 5월경 북한으로 재입북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동아일보에서 재입북 탈북자 수가 100명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주장하였다. 2010년 8월 10일, 시사저널은 ‘탈북자 200여명이 다시 북한으로 넘어갔다’고 보도하였다. 남쪽행을 택했던 신혼부부가 가족 모두 북한으로 돌아가기도 하였다.
급기야 전쟁위기가 고조되던 4월 4일, 한 탈북남성이 연평도에서 어선을 타고 NLL을 넘어 북한으로 월북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탈북남성은 배를 몰며 북한영해로 넘어갈 당시, 휴대폰 통화로 “거길 가면 어쩌려고 그러느냐”며 회유를 시도하는 선장에게 “그러게 있을 때 잘하지 XXX야”라고 소리쳤다고 한다.
탈북자는 한국사회와 북한사회에서 모두 생활해본 유일한 집단이다. 한국사회의 수많은 안보전문가나 그 어떤 보수인사들도 북한에서 태어나 북한에서 교육받고 자라난 탈북자들만큼 북한을 잘 알 수는 없다. 많은 국민들은 탈북자들의 남쪽생활이 고되고 어렵겠지만, 그래도 북한에서의 생활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하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탈북자들이 한국사회에 날선 비판을 퍼부으며 북한으로 돌아가고 있다. 남북한 생활을 모두 경험했던 탈북자들 상당수가 북한으로 돌아가는 현실은 북한당국에 대한 북한주민들의 지지가 의외로 견고할 수 있다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북한의 독특한 체제 – 일심단결
북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려면 북한의 독특한 정치체제와 노선을 분석해야 한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북한당국은 스스로를 일심단결(一心團結)의 사회라 자부한다. 일심단결은 말 그대로, 하나의 마음으로 뭉친다는 뜻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하나의 마음은 단연 북한의 최고지도자, 바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마음일 것이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마음은 곧 북한주민들의 마음속 연대감이 매우 강한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마음으로 된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2012년 4월, 북한의 지도사상을 “김일성-김정일주의”로 명명하였는데, 이는 곧 앞으로의 북한은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상과 노선을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선언으로 된다.
북한주민들이 인정하는 유일한 정치체제는 현 북한체제이다. 북한은 지금껏, 한국전쟁과 그에 필적한 전쟁위기, 그리고 90년대 전대미문의 경제난까지 겪었지만, 보수세력은 지금까지도 북한의 “급변사태”라고 칭할만한 시비거리 하나 찾지 못하고 있다. 오죽하면 답답한 보수세력들이 북한지도자들의 동상을 폭파할 모의를 하겠는가.
북한주민들이, 북한의 최고지도자와 정치노선 뿐만 아니라 감정 정서적으로 강하게 결속되어 있다는 점은 지난 1994년 7월 8일부터 시작되었던 김일성 주석에 대한 추모행렬과 2011년 12월 19일부터 해를 넘겨 이어졌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에 대한 추모행렬을 볼 때 예사롭지 않게 다가온다.
온 나라 방방곡곡의 북한주민들이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나와 눈물바다를 이루며 대성통곡을 하는 모습은 우리 국민들에게 그야말로 대충격이었다. 1994년에도 큰 충격이었지만 2011년, 엄동설한에 눈보라를 맞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추모하는 북한주민들의 행렬은 북한사회가 현 시기 강조하는 일심단결의 단면을 집약적으로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다.
북한당국은 스스로 일심단결을 구현했다고 자평하며 북한사회를 “사회주의 대가정”이라 지칭한다. 북한은 그들의 사회주의 헌법 서문에서 “김일성 동지께서는 이민위천을 좌우명으로 삼으시여 언제나 인민들과 함께 계시고 인민을 위해 한평생을 바치시였으며 숭고한 인덕정치로 인민들을 보살피시고 이끄시여 온 사회를 일심단결된 하나의 대가정으로 전변시키시였다.”며 사회주의 대가정론을 주장한다.
이들은 김일성 주석을 가리켜 “어버이수령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가리켜 “아버지장군님”으로 지칭한다. 북한당국의 기본 모토는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로 집약된다.
민의에 민감한 북한체제
북한은 그들의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 모토를 구현하기 위해 정치질서를 나름의 관점에서 제도화하고 있다.
사회주의 체제를 표방하는 북한당국은 경제적 이익으로 지지를 이끌어 내는 자본주의 국가들과 국가운영 방식이 다소 다를 수밖에 없다. 지난 90년대, 그들은 북한주민들에게 경제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제공할 수는 없었지만, 그 대신 북한주민 모두를 정치적으로 존중하고 우대하면서 이들의 지지를 이끌어 낸 것이다.
실제로 김일성 주석은 “백성은 하늘이다”라는 뜻의 이민위천(而民爲天)을 강조하였고 민의에 민감하기 위해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현지지도”라 불리는 정치방식을 평생 이어왔고 국가기관 관리들이 주민들을 내려다보는 경향을 관료주의라 비판하며 매우 경계하였다. 이러한 정치방식은 “김일성-김정일주의”라는 이름으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주민들은 경제적으로 빠듯하지만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북한지도자의 동정을 TV와 신문을 비롯한 언론지면을 통해 매일같이 접하고 주민생활을 개선하기 위해 애쓰는 북한관리들을 보며 북한체제를 정치적으로 지지하게 된다.
이를 위해 북한은 정치적으로 앞선 내용을 제도화하고 있다. 북한의 최고주권기관은 우리의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인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은 2012년 선출된 제12기 최고인민회의를 기준할 때, 687명으로 299명 수준인 남측 국회의원의 2배가 넘는다. 북한의 주민이 남측의 절반에 못미치는 2400만명인데 대의원 수는 국회의원의 2배가 넘으니 대의원이 대변해야 하는 주민은 우리 국회의원의 1/4에 불과해 상대적으로 효율적인 민의반영 구조를 갖추고 있다.
북한의 여성제도는 “사회주의적 평등”을 강조해 이미 1946년에 ‘남녀평등권’을 공표하였다. 여성을 사회주의적으로 해방시키고 사회생활의 여러 분야에 적극 진출시킬 것을 추구한 북한은 남녀의 육체적 차이조차 외면하는 절대적 평등이 아니라 성차별의 봉건을 타파하고 남녀간 확고한 정치적 평등을 구축해 남성은 남성다움을 추구하고 여성은 여성다움을 추구할 수 있도록 한다.
북한은 예술분야까지도 ‘혁명에 복무하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를 강조하며 민족적 형식에 사회주의적 내용을 담아, 조선노동당의 정책과 노선을 주민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모든 국가기관과 국가역량을 총동원해서 민의를 파악하려 노력했기에 북한은 허리띠를 졸라매는 과정에서도 핵탄두를 보유하고 인공위성을 발사할 기술력을 구축할 수 있었고 만주지방에 이른바 “탈북브로커”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도 사소한 민란이 없이 국가체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북한당국은 북한주민의 감정과 정서를 자극하지 않고 존중하며 이들의 정치적 지지를 확고히 구축해왔기 때문에 북한체제를 수십년 압박한다고 해서 북한체제는 무너지지 않았고 앞으로도 무너질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오히려 북한당국은 북한주민들의 정치적 지탱점으로 인정받고 있기에 한미당국이 북한과 극단한 대결을 고취하면 고취할수록 북한은 자위적 억제력을 확보해나갈 명분을 축적하게 될 뿐이다.
조이면 항복할 것이라는 단순한 논리는 북한의 정치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한심한 노선이다. 그런 측면에서 북한이 3차례의 핵시험으로 무시할 수 없는 핵능력을 확보하게 된 것은 경제봉쇄로 북한을 고립압살할 수 있다는 한미당국의 한심한 전략이 빚은 예고된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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