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1일, 북한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결정하였다.
파이낸셜 뉴스는 3월 31일, 이를 두고 북한당국이 “위대한 대원수님들께서 제시하시고 철저히 구현해오신 독창적인 경제국방 병진노선의 빛나는 계승이며 새로운 높은 단계로의 심화발전”이라고 주장했다고 보도하였다.
1960년대 이후, 북한의 기본적인 경제노선은 경제와 국방의 병진노선이라 할 수 있다. 그로부터 50년이 지나 북한은 이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을 결정하였다.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은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국가운영전략이다. 이 병진노선의 어떤 측면이 선행노선의 “계승”이며, 어떤 측면이 새로운 “변화”인지 분석되어야 한다. 그래야 지금의 북한경제발전 노선을 종합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효율적인 대북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
1. 북한의 국가운영 방침은 “선군”
경제건설-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의 국가운영노선인 선군정치방식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선군정치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995년 1월 1일, 이른바 “다박솔 초소 현지지도” 과정을 시발로 제기하였다는 국가운영노선으로, 군사를 앞세워 국가운영에 제기되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정치방식, 국가운영방식이라 규정할 수 있다. 북한당국은 선군정치의 근원을 1960년 8월 25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조선인민군 근위서울류경수 제105탱크사단의 현지지도로부터 찾을 수 있으며 선군정치는 김일성 주석의 “군중시정책”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
선군정치를 선언하는 과정에서 북한은 군대를 중시하는 이른바 “선군후로(先軍後勞)”의 새로운 입장을 제기하였다. 2003년 12월 15일, <통일뉴스>는 북한의 김일성종합대학 학보를 인용하며 “지금은 전략적으로 선군후로라고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고 보도하였다. 이는 사회주의 이론이 노동대중을 혁명과 건설의 주력군으로 규정하던 종래의 분석을 새롭게 해석하며, 미국의 군사적 압박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군대의 지위와 역할을 강조하며 군사중심의 사회주의 노선을 전면화한 것이다.
2012년 4월 15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은 기념연설에서 “총대이자 민족의 생명이고 혁명의 승리”라고 언급하였고, “우리가 선군조선의 존엄을 만대에 빛내이고 사회주의 강성국가 건설위업을 성과적으로 실현하자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인민군대를 백방으로 강화해 나가야 합니다.”라고 언급하며 선군정치노선을 확고히 계승한다는 입장을 내외에 드러내었다.
다만 북한의 선군정치는 이른바 “혁명과 건설”에서 군대를 주력군으로 삼기 전에, 군대가 주력군으로 기능하기 위한 정치사상적 조건으로 “혁명적 군인정신”을 제기한다. <통일뉴스>는 2002년 1월 28일, <조선중앙방송>을 인용하며 북한이 강조하는 “혁명적 군인정신”은 “수령결사옹위정신”, “결사관철정신”, “영웅적 희생정신”으로 일컬어진다고 보도하였다.
군대가 “혁명과 건설”의 주력군으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혁명적 군인정신”이 차 있어야 가능하다는 논리이다. 결국 자본주의 국가의 군대는 너무나 명백하게도, “수령결사옹위정신”이 있을 리 없기에 북한의 관점에서는 모두 선군정치의 적용대상이 될 수 없다. 북한은 그들의 지도자를 중심으로 단결된 북한군 장병들의 혁명성과 조직성, 전투력은 북한사회에서 이미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실제 북한사회는 청년군인들의 투쟁으로 사회전반이 추동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사실, 북한체제에서 가장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집단이 바로 군대라는, 내외의 일치한 분석에서도 확인되는 사항이다.
선군정치를 전면화한 북한은 경제발전전략도 선군정치에 의거하고자 하였다. 통일연구원 최수연 선임연구원은 “김정일 시대의 경제정책 : 평가와 전망”(북한경제리뷰 2008년 10월호)에서 “선군시대 경제건설노선은 국방공업을 확고하게 우선하는 것과 함께 인민생활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해 경공업과 농업을 동시에 발전시킬 것을 요구하고 있다.”고 분석하였다.
이는 1950년대, 김일성 주석이 표방했던 “중공업을 앞세우고 농업과 경공업을 따라 발전시키는 노선”의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대의 계승이다. 국방공업은 중공업 토대에 과학기술이 접목되는 분야란 점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국방공업 중시정책”은 김일성 주석의 “중공업 중시정책”을 계승하면서도 “과학기술중시정책”을 필요로 하게 된다.
그러한 과정에서 북한은 2012년 12월 12일, 인공위성 광명성 3호 2호기를 위성궤도에 정확히 진입시켜 세계 10번째로 인공위성과 우주발사체, 우주발사장을 모두 갖춘 스페이스 클럽에 가입하였으며 2013년 2월에는 3차 핵시험에 성공하면서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된 정밀핵타격능력을 확보하였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2. “군중시노선”을 재확인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가 채택한 “경제건설-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은 김일성 주석이 일관되게 견지하였다는 군중시정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해가 1945년, 지금으로부터 68년 전인데 조선인민군의 창건은 왜 81돐인가? 북한은 해방되기 13년전인 1932년 4월 25일, 김일성 주석이 당시 만주 길림성 안도현 소사하에서 반일인민유격대를 결성하였던 시점을 조선인민군의 창건일로 규정한다.
1998년 10월26일, 동아일보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보천보 전투 금 인쇄 원판”을 선물로 증정하였다. 보천보 전투란 1937년 6월, 김일성 주석이 압록강을 건너 당시 일제가 강점하였던 함경남도 혜산시 보천보를 습격한 전투를 의미한다. 동아일보사는 당시 기사를 긴급타전했던 동아일보의 1937년 기사원판을 금으로 다시 제작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선물로 증정하였던 것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해방 이후 김일성 주석이 1948년 9월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하기 전인 2월 8일에 조선인민군 정규부대부터 출범시켰다는 사실이다.
이상의 사실들은 김일성 주석이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특히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로는 미국의 군사적 압박에 대비해 역사적으로 군대와 무장을 중시해왔다는 점을 확증한다. 1960년대의 경제와 국방의 병진노선이 채택되고 1990년대, 선군정치가 북한사회에서 전면화 된 것도 미국의 한반도 군사적 긴장고조에 대응한 북한지도부가 군사적 균형을 이루기 위해 군중시노선을 기본으로 삼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면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밝힌 경제건설-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은 북한이 김일성 주석 때부터 견지하였던 군중시정책의 새로운 구현이다. 이는 핵, 대륙간 탄도미사일 등 비대칭전력을 앞세워 미 태평양사령부를 강하게 압박하는 정책이라 할 수 있다.
3. 두드러지는 군무력의 증강
38선에서 미국과 군사적 대치상태에 있던 북한은 군중시정책을 일관되게 구현해 군사무기의 양적, 질적 증대를 추구해왔다. 일제강점기 당시 무장독립운동을 하던 사회주의 계열 활동가들은 해방 이후, 거의 다 평양으로 집결하였다. 북한은 소련으로부터 T-34 전차를 들여왔으며 군전력을 꾸준히 늘려 1950년 한국전쟁 당시에서는 미국과 3년간이나 전면전을 수행하기에 이른다.
한국전쟁 이후 김일성 주석은 1953년 8월, 조선노동당 제6차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중공업을 우선적으로 발전시키면서 동시에 경공업과 농업을 급속히 발전’시키는 노선을 전후 경제건설의 기본 노선으로 채택해 사회주의 공업국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북한경제의 공업화가 진행되는 것과 궤를 같이 하면서 북한의 정규무력도 무장장비를 차츰 강화해나가기 시작하였다.
1960년대 북한은 아시아에서 유일한 사회주의 공업국으로 부상하였다. 북한은 총기류, 탄환을 비롯한 개인용 소화기의 자체생산을 추진하였으며 1980년대에는 전반적 국방장비를 자체적으로 관할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었다.
소련 붕괴 이후 1990년대에 접어들며 미국의 대북제재와 압박이 심해지자 북한은 군사적 균형을 이루기 위해 선군정치를 제기하며 초정밀기계가공 분야인 컴퓨터 수치제어가공(CNC)에 주목하게 된다. 군장비를 비롯해 산업설비 전반이 초정밀화되고 있는 시대적 추세에 따라 마이크로미터 수준에서 제어되는 초정밀가공 공작기계를 생산해야 고성능의 기계류를 생산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CNC 분야에 집중투자하였다고 한다.
2013년 04월 08일, 정일용 <민족21> 편집국장은 <통일뉴스>에 기고한 원고에서 북한<근로자> 2012년 제10호에 발표된 최상건의 〈지식경제강국에로의 력사적전환의 길을 열어놓은 위대한 당〉을 인용하며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에 “부강할 조국의 래일을 위하여 나라에 있던 돈의 전부라고 할 있는 귀중한 자금을 최첨단CNC기술을 개발하는데 모두 돌리도록 하는 대담한 조치”를 취했다고 기술하였다.
그러한 과정에서 북한은 1998년 8월 31일, 시험용 위성 광명성 1호를 발사해 성공하였다고 주장하였으며 2006년 7월 5일에는 장거리미사일 1발과 중거리 2발, 단거리 미사일 4발을 무더기로 발사하였으며, 2009년 7월 4일에는 단거리 미사일 5발과 중거리 미사일 2발 등 7발을 각각 실험 발사하기에 이르렀다.
1990년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주목하였던 CNC 정밀가공은 고성능 로켓엔진과 제트엔진을 생산하기 위한 기술적 장벽을 뛰어넘게 한다. 결국 북한은 CNC 정밀가공기술을 획득함에 따라 인공위성 발사체와 중장거리 미사일 등 첨단과학기술이 접목되어야 가능한 수단들을 연이어 생산, 적극적인 활용을 모색하게 되었다.
4. 주목받는 북한 전략로켓군
그런 측면에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제기한 경제건설-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은 북한의 군사무력이 향후 비대칭전력인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 중심으로 강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김정은 제1위원장은 2012년 4월 15일 기념연설에서 “군사 기술적 우세는 더는 제국주의자들의 독점물이 아닙니다. 적들이 원자탄으로 우리를 위협공갈하던 시대는 영원히 지나갔습니다. 오늘의 장엄한 무력시위가 이것을 명백히 확증해 줄 것입니다.”라고 밝힌데서 나타나는 바, 당시 북한 당국은 총 34종, 880여대의 무장장비들을 공개하였으며 특히 차량이동식 대륙간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장거리 발사체 6기를 전격 공개하였다.
이제 조선인민군의 새로운 편제로 확인된 전략로켓군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012년 4월 15일, 김정은 제1위원장의 연설문에 처음으로 언급된 북한 전략로켓군은 기존의 미사일 지도국을 모체로 편성하였으며 규모는 대략 군단급일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북한과 같이 전략로켓군을 독자적인 군편제로 구성해 4군체제로 편성된 군대는 러시아와 중국이 있다. 한편 미국은 2009년 8월 8일, 지구권타격사령부(USAFGSC)를 창설하고 있다.
북한은 경제건설-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표방하였으므로 다양한 핵공격수단들을 대량생산하고 이를 실전배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미 북한은 지난 2월 12일, 제3차 핵시험 당시 그들의 핵능력을 “소형화”, “경량화”, “다종화”되었다고 자평하였다. 이미 북한은 2010년 11월, 지그프리드 해커 미 로스 알라모스 국립연구소장에게 농축우라늄 설비를 공개하였으므로 북한이 플루토늄과 더불어 농축우라늄을 이용한 핵탄두 개발에 나설 가능성은 매우 높다. 나아가 정승조 합참의장은 북한이 제3차 핵시험을 앞둔 2월 6일,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북한이 원자폭탄과 수소폭탄의 중간단계인 증폭형 핵분열탄을 실험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하였다.
조선인민군 전략로켓군이 현재 실전배치 중인 중거리, 장거리 탄도미사일에 다양한 종류의 핵탄두를 탑재하거나, 핵탄두를 앞세워 휴전선 이남의 주한미군기지를 겨냥하며 주한미군철수와 평화협정 체결을 요구할 경우, 미국은 전면적 충돌 위험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그런 측면에서 3월 31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결정된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의 병진노선”은 종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선군정치”에 높은 과학기술 수준을 요구하는 우주발사체, 소형핵탄두가 접목된 형태로 볼 수 있다.
북한의 우라늄 매장량은 채굴가능한 매장량만 400만톤에 이르므로 미국은 북한전역을 군사적으로 점령하지 않고서는 날로 늘어나는 북한의 핵탄두를 저지할 방법이 없게 되었다.
결국 전쟁이 아니라 대화의 방식으로 북한핵을 모두 폐기시키려면, 미국도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을 모두 폐기하겠다는 용단을 내려야 가능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지난 20년의 북미대결에서도 끝내 북한핵을 어찌하지 못했던 미국은 이제, 북한핵이 더 늘어나기 전에 대북 핵선제타격의 군사적 결단을 내리느냐, 아니면 북한핵을 없애기 위해 미국도 모든 핵을 포기하고 전세계 핵을 모두 제거해, 오바마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던 “핵없는 세계”를 정말로 추진해야하는 외교적 결단을 내리느냐의 전략적 분기점에 직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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