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유세와 파레토 효율성 그리고 부의 기원
정동영 의원이 부자 1%(0.1%)에게서 부유세를 걷어 ?지 재원으로 쓰자는 주장을 하였다고 한다.
부유세는 겉으로 보기에 분명히 파레토 효율성에 위배되는 것처럼 보인다.
파레토 효율성에 대한 위키피디아의 정의를 보면
“일단의 개인들에 대해 재화 또는 결과들의 대안적인 배분 집합이 주어졌을 때, 다른 그 어떠한 개인도 더 나빠지지 않으면서 최소한 한 개인을 더 좋게 만드는 한 배분에서 다른 배분으로의 변화는 “파레토 개선” 또는 “파레토 최적 이동”이라고 불린다. 한 배분은 더 이상의 파레토 개선이 이루어질 수 없을 때 “파레토 효율적” 또는 “파레토 최적”이라고 정의된다.
Given a set of alternative allocations of goods or outcomes for a set of individuals, a change from one allocation to another that makes at least one individual better off without making any other individual worse off is called a “Pareto improvement” or a “Pareto-optimal move”. An allocation is defined as “Pareto efficient” or “Pareto optimal” when no further Pareto improvements can be made.“(http://en.wikipedia.org/wiki/Pareto_efficiency )
경제학적 효율성은 보통 파레토 효율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필자는 알고 있다.
정동영 의원이 경제학적 효율성에 위반하는 주장을 할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물론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파레토 “효율성”이란 개념은 현상유지(status quo) 개념이다. 기존의 상태를 바꾸자면 , 일반적으로 누군가는 손해를(물질적 손해는 아닐지라도 정신적 , 감정적) 보게 된다. 어떤 면에서 현상유지가 최적이다. 이러한 면에서 파레토 효율성이란 개념은 정태적 배분 이론이자 이데올로기이다. 현재의 배분 상태에 변화를 가하는 것은 일단 악이라고 의심한다는 면에서 정태적이고, 주로 배분에 초점을 맞추는 이론이라는 점에서 배분 이론이다.
현실 세계로 돌아와서 , 자본을 갖고 있는 투자자를 상정하자. 그는 현재의 배분 상태에 만족을 못한다. 그는 더 많은 자본을 갖고 싶어 하고 더 많은 돈과 더 많은 여자를 얻고 싶어한다. 돈과 부는 기존의 것보다 더 많이 새롭게 창조된다는 면에서 배분 이론이 적용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기존 파이를 나누는 것보다 새 파이를 추가하는 것이 모든 당사자들에게 이익이다. 이 투자자는 그런 면에서 파레토 효율이라는 정태적 배분이론을 헛소리라고 일축할 것이다.
여자는 쉽게 창조될 수 없다는 면에서 파레토 효율성이라는 정태적 배분이론이 적용될 수 있는 자원일 수도 있다. 여자 문제는 그 투자자가 고민할 문제이기 때문에 이 논의에서 차치하자.
이 투자자는 새로운 부를 창조하여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자본을 투자하려 한다. 그는 자신의 자본을 다른 그 무엇(주식 또는 공장 또는 신기술)과 교환하려 한다. 반면에 이 투자자와 교환하려는 제2자는 당근 자신의 부를 최대화 시키려고 이 투자자의 돈과 자신의 것을 교환하려고 한다. 이러한 경우에 이것은 파레토 최적 배분일까?
그 답은 아무도 모른다. 미래는 불확실하기 때문에 , 누가 더 나아질지(better-off) 미리 알 수가 없다. 이 거래는 파레토 우위도 아니고 파레토 열위도 아니다.
더 나아질지(better-off) 더 나빠질지(worse-off)를 미리 모르는 상황에서 파레토 효율이란 개념은 아무 쓸모도 없다. 단지 기존 상태를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로서만 작용한다.
이제 부유세로 돌아가자. 부유세는 미래의 부의 생산과 배분에 영향을 미치는 현재의 전략이자 의사결정의 문제이다. 투자자로서의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투자 전략 중의 한 목록이다. 부유세는 당장에 부자들을 더 나쁘게 하지만, 그런 면에서 파레토 개악이지만, 한국 사회의 미래에 대한 투자로서 그것이 더 많은 부와 더 많은 자본을 창조하는 하나의 가능한 선택이라는 면에서 , 그래서 결국 부자들도 득을 본다는 면에서는 파레토 개선이다.
부유세가 어느 정도 정도 개선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만 몇 가지 그럴듯한 논리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부유세의 해악에 관한 다음의 주장을 보자,
“정의원이 그토록 강조하던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사업 투자는 한국이 아닌 부자에 관대한 나라로 돌려질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단지 국내 자산이 1%가 되지 않을 뿐이지 총 재산으로 보면 훨씬 많은 일들이 벌어질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최상위 1%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국내 자산을 대폭 포기함으로써, 곧 국내 자산을 해외자산으로 돌려버림으로써 세를 피할 것이며, 이는 전체적인 국부 유출을 낳는다. 그러나 해외유출 하지 않고 국내에 보다 더 자산을 가지고 있던 선한 의지의 기업가는 졸지에 못한 처지를 겪게 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의 대기업들이 국내투자를 많이 안한다고 정치인들의 원성도 사고 있는데, 이는 맘에 안든다고 더욱 발로 차버려 도망가게 하는 효과를 낳을 것이다. ”(http://www.skepticalleft.com/bbs/board.php?bo_table=01_main_square&wr_id=84695,솔직한 사람)
백번 지당한 주장이다. 자본이 도피할 가능성은 항상 있다. 물적 자본과 화폐자본은 부유세가 있든 없든 이윤을 좇아 전 세계 어디든지 도망하든지 투자해 왔고, 지금도 하고 있으며 , 미래에도 할 것이다.
자본이란 개념을 먼저 정의하자. 자본이란 부를 생산하고 분배하는데 필수적인 요소라고 필자는 정의한다. 기계 자본, 화폐 자본, 인적 자본, 사회 자본 , 자연 자본 등은 한 사회의 부를 생산하는데 있어 필수적 요소이다. 이 중의 그 하나만이라도 결여하게 되면 부의 생산은 중지되든지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이 중에서 화폐 자본이 이동이 가장 자유롭다는 것을 주목하자. 인적 자본도 이동이 그나마 자유롭긴 하지만 시간도 많이 걸리고 , 비용도 많이들 뿐만 아니라 , 화폐자본처럼 대규모로 신속하게 이동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화폐 자본은 전략적으로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으며 얼마든지 다른 자본들을 위협할 수 있는 비교우위에 있다는 것도 명백하다.
그래도 부를 창조하기 위해서 화폐자본은 여전히 다른 자본들을 절대 필요로 한다. 다른 자본들이 없다면 화폐자본은 그 자체로서 불모이자 무용지물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의문이 떠오른다. 부의 성장에 무엇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가?
답은 아마도 리비히의 최소법칙에 있을 것이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리비히의 최소법칙은
“성장은 이용 가능한 총 자원이 아니라 가장 희소한 자원( 한계 요소)에 의해 통제된다는 원리이다. 이 개념은 원래 식물 또는 작물 성장에 적용되었는데, 풍부한 영양분의 양을 증가시킨다고 하여 식물 성장이 증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발견되었다. 한계 영양분(”필요“ 대비 가장 희소한 양분)의 양을 증가시켜야만 식물 또는 작물의 성장이 개선되었다. 이 원리는 ”토양 속의 가장 풍부한 양분의 이용가능성은 토양 속의 최소로 풍부한 양분의 이용가능성만큼 이용 가능하다 “는 경구로 요약될 수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Liebig%27s_law_of_the_minimum)
부의 생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가장 희소한 자본의 양이 생산될 부의 양과 질을 결정할 것이다. 화폐자본이 아무리 많이 있어도 인적자본이 희소하다면 , 화폐자본은 쓸모없는 종이조각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영양분들은 상호작용을 하지 않지만 자본들은 서로 상호작용한다는 면에서 차이가 있기는 하다. 가령 화폐 자본이 너무 많고 인적자본이나 사회자본이 너무 적다면 사람들은 화폐자본가들에게 대하여 분노와 적개심을 갖게 되어 그것을 분출할 개연성이 높다고 나는 본다.
한국은 인적 자본 양성에 많이 투자해 온 나라이지만 , 지금 빈부격차가 벌어지면서 인적자본 양성에 투자하는 돈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중산층이 갈수록 줄어들고 신빈곤?-워킹푸어가 양산되면서 이들은 인적 자본이 아니라 인적 쓰레기가 되면서 한국사회에 커다란 짐이 되어가고 있다. 갈수록 늘어가는 인간 쓰레기들을 짊어져야 하는 사회는 엄청난 자원과 시간을 이들을 먹여살리고 사회의 치안을 유지하는데 서야 한다. 이것은 엄청난 낭비로서 사회의 부는 갈수록 덜 생산되고 그나마도 큰 부분이 이런 데 낭비하게 될 것이다.
한 사회에 유능하고 열정적인 사업가가 많을수록, 숙련되고 성실한 노동자가 많을수록 더 많은 부가 생산될 수 있다. 반면에 그 수가 적을수록 사회의 부 창출 능력은 급속도로 저하된다. 한국 사회가 빈익빈부익부 사회로 진입하면서 유능하고 도전정신이 가득한 사업가와 숙련된 고도의 지적 증력을 갖는 노동자들이 배출될 원천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 사업가도 노동자도 더 이상 배출될 수가 없다.
자신의 자원과 돈으로 교육을 받을 수 없고, 기술을 연마할 여유와 시간이 없는 자들에게 “도약”의 기회를 주는 것이 국가와 사회에 득이 되므로 국가와 사회는 이런 기회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유능하고 도전정신이 가득한 사업가가 더 많이 배출될수록 노동자들이 돈을 벌 수 있는 선택의 자유는 더 커지고, 유능하고 숙련된 성실한 노동자가 많아질수록 사업가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진다.
최상위 부자들이 투자를 하려면 , 그에 걸맞는 유능하고 숙련된 노동력 풀이 커야만 한다. 숙련되고 지적인 노동력이 없는 곳에서는 이윤이 남는 투자 기회가 그만큼 줄어든다. 숙련되고 성실한 노동자를 많이 배출하는 나라는 부자들에게 매우 매력적인 투자처가 된다. 화폐자본이 이런 이점을 찾아 신속하게 이동해 오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다른 한편 부를 생산하는 데 있어 기존 사업가나 자본가들에게 투자를 구걸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다. 기존의 사업가와 자본가가 점점 더 독점적으로 변해갈수록 , 잠재적인 유능하고 양질의 사업가와 노동자들을 양성할 수 있는 원천은 갈수록 메마르게 된다. 그 결과 점점 더 적어지는 소수의 사업가들과 자본가들에게 온 국민이 목에 매달리게 된다.
미국이라는 부국의 현재의 쇠락도 부분적으로는 가능한 한 더 많은 장래의 유능한 사업가들과 노동자들을 양성할 환경을 제공하지 못한데 기인한다고 나는 본다.
다음 기사를 보자.
“사회적 계층 고착: 미국에서 경제 사다리를 오르는 것은 대부분의 유럽 나라들보다 더 어렵다.
First Posted: 03-17-10 08:00 AM | Updated: 03-17-10 01:09 PM
http://www.huffingtonpost.com/2010/03/17/social-immobility-climbin_n_501788.html
미국은 “기회의 땅인가?”별로 그렇지 않다. OECD 의 새 보고서는 세대간 사회계층 이동은 다른 선진국들보다 미국에서 극적으로 낮다는 것을 찾아냈다고 한다.
그래서 당신 자식이 당신보다 더 높은 사회경제 사다리를 올라가게 하고 싶으면 , 캐나다로 이사 가라.
보고서에 따르면, 시민들이 사회 사다리의 상향 또는 하향의 관점에서 미국은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캐나다, 스웨덴, 독일, 그리고 스페인보다 한참 아래에 있다고 한다. 오직 이탈리아와 영국에서만이 개인과 부모 소득간의 관계의 강도가 더 크다고 한다. ”
한국은 미국의 전철을 밟는 그런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남에게서 배우지 못하는 자는 도태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그래야 마땅할 것이다.
경제학에서의 불변할 수 없는 진리 중의 하나는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다. 한 단위의 효용은 갈수록 줄어든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이 한계 효용의 법칙을 재산(돈)에 적용하면 , 부자의 돈 1%는 부자에게는 그 한계효용이 별 것 아니지만 빈자에게는 무지하게 크다는 결론을 나온다. 사회 전체로서 효용이 극적으로 증대되지만 부자들에게는 미약하게 효용이 감소한다. 파레토 최적은 아니지만 , 총 효용은 크게 증가한다.
자유주의는 공정하고 균등한 기회를 갖고 자유 경쟁을 할 때 “정의로운” 사회가 온다고 주장한다. “정의”가 무엇이든 상관 없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더 많은 부를 사회가 생산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들을 만드는 것이다.
더 많은 부는 결국 더 많은 사업가, 더 많은 숙련 노동자들에게서 나온다. 더 많은 사업가, 더 많은 숙련 노동자를 양성할 수 있는 제도와 컨센서스를 마련하지 못하면 한국 사회는 쇠락할 것이다.
숙련된 노동자들을 많이 양산할수록 부를 창조할 잠재력은 더 높아지며 , 따라서 더 많은 자본이 투자할 인센티브도 높아지고 더 많은 사업가가 배출될 개연성도 높아진다. 빈자들에게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을 주는 데는 그리 많은 돈과 자원이 필요하지 않지만 그들이 창조할 수 있는 부의 양은 막대하다.
부유세는 유능한 사업가와 과학자 ,발명가 그리고 노동자가 부족하기 때문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여 이리저리 헤매고 있는 화폐자본들에게 장기적으로 크게 득이 될 수 있는 집단적 투자가 될 것이다.
나의 개인적 의견으로는 부유세가 아니라 기회 펀드(opportunity fund. “Capitalism 3.0: A Guide to Reclaiming the Commons”, peter Barnes, http://www.amazon.com/Capitalism-3-0-Reclaiming-Commons-Currents/dp/1576753611/ref=sr_1_1?s=books&ie=UTF8&qid=1282633223&sr=1-1 )가 아마 더 나은 전략이자 선택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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