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잔뜩 꼬여 있는 느낌이다. 기대했던 역할을 속 시원하게 소화하지 못한 채 엉거주춤 제 자리를 맴돌고 있는 모습이다. 새정부 출범에 맞추어 이름과 틀 모두를 바꾸어 새 출발을 한 경사노위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공교롭게도 이 모든 현상에 노동계가 연루(?)되고 있다. 지난 1월 28일 민주노총은 대의원대회에 경사노위 참여 여부를 안건 상정했으나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했다. 경사노위가 구성에서부터 난항을 겪은 것이다. 최근에는 노동계 위원들의 불참에 따른 정족수 미달로 경사노위가 탄력근로제 합의에 실패하기도 했다. 노동계의 잘잘못을 따질 게재는 아니라 하더라도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이 남는다.
노동운동은 노동자 자신의 권익 신장을 일차 목적으로 삼지만 민주주의와 사회진보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과거 유럽에서 민주주의의 제도적 완성인 보통선거제 도입을 위해 투쟁한 주역도 노동운동이었다. 그런 만큼 노동운동에게는 항상 시대적 소명이 부과될 수밖에 없다. 경사노위 관련해서도 국민적 지지와 호응을 얻을 수 있는 적극적 대안을 갖고 사회적 합의를 주도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이다. 노동운동이 시대적 소명을 제대로 소화하자면 세 가지 숙제를 풀어야 한다.
하나. 미조직된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중소기업은 고용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노조 조직률은 2% 대에 머물고 있다. 이유는 여러 가지일 수 있지만 기업 경영에 대한 노동계 전략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한국노총은 ‘경영 순응’을 바탕으로 노동자의 이익을 추구한다. 민주노총은 ‘경영 무시’를 바탕으로 노동자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옹호한다. 그래도 무방한 대기업과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세력이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경영 순응, 경영 무시 모두 정답이 될 수 없다. 노동자의 이익을 증진시킬 수 있는 ‘경영 혁신’이 해답이지만 노동계는 이에 대해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발견된다. 중소기업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경영 혁신이 절실하지만 개별 기업 차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적다. 설령 가능하다 하더라도 극히 일부에 국한될 이야기일 뿐이다. 중소기업의 경영 혁신은 오직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가능하다. 노동계가 ‘사회적 합의 전략’을 적극 구사해야 하는 이유이다.
둘. 미래의 주역인 청년 세대의 이익을 옹호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노동계는 5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노동계 집회나 행사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 대부분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들이다. 올해 나이 45세인 모 산별노조 간부는 얼마 전 민주노총 대의원대회에 참석했는데 자신이 막내였다고 실토하기도 했다. 나이가 뭐 대수냐고 따질 수 있으나 나이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50대는 대체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쭉 이어가다 별 탈 없이 은퇴하는데 주된 관심을 기울인다. 변화와 혁신을 기피한다. 사용자 표현을 빌리자면 꿈쩍도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반면 20~30대 청년들은 남의 밑에서 평생 똑같은 일을 반복하며 사는 것을 끔찍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다. 변화와 혁신을 추구한다. 최근 사회적 관심을 끈 IT업계 신생 노조들의 단체협상 중심 이슈는 ‘수평적 조직문화 정착’이었다. 문제는 노동계가 50대의 이해를 주로 반영하면서 ‘지키는 싸움’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점이다. 청년 세대는 그로부터 배제되어 있거나 상당 정도 소외되어 있다.
셋.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노동의 기술적 대체’를 넘어서야 한다.
고용정보원에 따르면 노동의 기술적 대체로 2025년 무렵 현재 일자리 중 60% 이상이 사라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은 로봇의 상당수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음에도 산업용 로봇 사용률에서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노동의 기술적 대체가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지표일 수 있다. 하지만 지키는 싸움에만 매달리고 있는 노동계는 이에 대한 뚜렷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 못하다.
하나 같이 쉽지 않은 숙제들이다. 하지만 이들 숙제를 제대로 풀지 못하면 노동운동은 존폐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 분명한 점은 이들 숙제들의 해답은 명백히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이글은 <내일신문>에 함께 게재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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