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 글은 퇴사연구 프로젝트팀 최혜인 연구원이 작성한 퇴사연구 세미나 후기입니다.
‘퇴사’, 이 단어만 봐도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첫 직장, 첫 퇴사의 기억을 상기하며 그때 느꼈던 한계와 좌절, 조급함과 괜한 원망들이 떠올랐고, 그렇기 때문에 퇴사연구를 하겠다는 마음은 순전히 감정적인 결정이었다. 덜컥 연구를 시작하고 나니 ‘퇴사’라는 현상과 그것에 대한 해석은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우리는 공부가 필요했고 퇴사를 연구하기 위해 ‘퇴사&노동 세미나’를 꾸렸다.
‘퇴사’에 관심 있는 세미나 참여자를 모집했다. 총11명. 주로 퇴사연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로, 활동가와 청년 노동을 고민하는 사람, 사회학을 공부하는 사람, 무언가 하지 않고 살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 다니는 직장에서 퇴사를 고민하고 있는 사람,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사람 등등 비슷하지만 다양한 고민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세미나에 참여했다.
고심 끝에 첫 번째 세미나 책으로 『일하지 않을 권리』를 읽기로 했다. 『일하지 않을 권리』의 부제는 ‘쓸모없는 인간에 대한 반론’이다. 일 하지 않는 사람을 도덕적이지 못하다고 비판하며, 끊임없이 일 할 것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과도하게 열심히 일하고 소비를 통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며 자신의 고용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산다. 책은 이러한 일 중심 사회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관념을 바꿔야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일이 자신을 소모시킨다고 느끼게 되는 ‘단절점’에 대해 토론했고, 일 중심 사회에 장악되지 않기 위해 일이나 직업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이나 개성으로 자기소개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두 번째 세미나 책은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였다. 적게 일하고 더 잘 살기 위해 노동시간을 단축해야하는데, 여기서 노동시간은 경제적 가치가 매겨지지 않는 가사노동시간을 포함한 시간을 의미한다.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해 노동을 유지하려면 재생산의 공간이 필요한데, 그 공간에서 이뤄지는 가사노동은 대부분 여성의 몫이었다. 노동시간 단축이 단순히 노동해방을 넘어 인간해방이 될 수 있으려면, 가사노동시간을 포함한 노동시간 단축으로 모든 사람이 시간에 대한 선택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우리는 ‘노동 거부’에 주목했다. ‘노동 거부’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이 우리 삶의 중심이 되는 것, 일을 의무화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의미다. 이는 곧 노동력으로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사회에 대한 저항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시간에 대한 선택권을 가질 수 있도록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퇴사연구에서 주목하는 것 중 하나가 ‘퇴사 이후의 불안정한 생활을 어떻게 보내는지’이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청년수당정책을 시행하고 있는데, 만약 세대 간 가치관의 차이로 조직문화에 적응하기 어렵거나,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해 청년들에게 퇴사가 부정적인 경험이 된다면 이는 사회가 책임을 분담하고 청년퇴사자가 재기할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청년수당과 같은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도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에서 시간은 돈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논리에 공감할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우리는 『사표의 이유』와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 『비노동사회를 사는 청년, 니트』를 세미나 책으로 골랐다. ‘퇴사’에 대한 관심은 일터에서 소진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맥락을 읽는 시도로 이어졌다. 아마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는 자본주의의 유동성에 대해 토론하게 되지 않을까. 마지막 책 『비노동사회를 사는 청년, 니트』는 저자의 공개 세미나 형태로 진행된다. 아직 책을 읽진 않았지만, 언제든 니트 상태가 될 수 있음을 경고하고 니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회 안전망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다.
6번의 세미나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치유’받는 느낌이었다. 퇴사하자마자 시험 준비를 하느라 지친 마음을 돌보지 못하고 새로운 종류의 불안과 패배감에 시달렸었다.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며 그때의 감정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불안을 만들어내며 개인을 닦달하는 자본주의 메커니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지난 시간과 화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퇴사’라는 단어에 감정이 앞서지만, 세미나를 통해 퇴사연구에서 퇴사하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꼭 짚고 넘어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의 퇴사연구가 노동과 자본주의의 문제를 드러내는 사회연구이자 구조 안에서 고통 받는 개인에게 치유의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따뜻한 연구가 되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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