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최경환 부총리가 최저임금 인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소득주도 성장을 중요 정책으로 제시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도 적극 환영의 입장을 나타내고 있는 상황이다. 만시지탄이긴 하지만, 지금이라도 저소득 노동자들의 소득을 올려 소비 진작과 경제 활성화를 도모하는 편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재로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경기침체 탈출의 유일한 방도라 여겨진다.
그런데 최저임금위원회는 사회적 논의를 위한 객관적 근거를 제시하기보다는 노동계와 재계가 각각 합의 없이 자기주장만 극한을 달리도록 방치하는 행태를 반복해 왔다. 극한 대립의 끝은 대부분 정부의 영향력 하에 있는 공익 대표가 노동계와 재계 주장의 중간 정도를 제시하면서 타협하는 것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여기서 말하는 ‘객관적 근거’란 무엇인가? 최저임금위원회는 미혼단신근로자 가구의 생계비를 조사하여 이를 최저임금 논의의 출발지점으로 삼아야 한다. 기본권으로서의 노동소득 개념이 바로 여기에 들어 있는 것이다.
사회적 기구에서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집단들이 대립을 하고 논쟁을 벌이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이를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논의의 시작에 해당하는 ‘객관적 근거’에 들어 있어야 마땅한 도시노동자 1인가구의 대표성은 결여되어 있는 반면, 공익 대표로 포장되어 있는 행정부의 권한은 과잉되어 있음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표 1. 최저임금 vs 평균생계비
출처 : 최저임금위원회, 통계청 가계조사 data를 분석
주 : 평균생계비 조사년도 기준, 최저임금 적용연도 기준
최저임금 선에 몰려 있는 아르바이트, 비정규 청년노동자들과 여성 저임금 노동자들의 대표자를 최저임금위원회에 포함시키고 이들이 생계비 산출에 참여토록 하든가, 최소한 조사결과를 받아들일 수 있는지 동의를 구하는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라는 전국적 조직의 노동자단체가 대표를 파견하고 있으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아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다른 사회적기구는 차치하더라도 최저임금위원회만큼은 불안정노동자 단체에서 직접 대표를 보내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불안정 노동자들을 대표할 만한 단체가 현실적으로 있느냐, 곧 대표성을 자임하는 크고 작은 단체들이 우후죽순으로 나서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불안정 노동자들을 대표할 수 있는 단체는 어떻게 선정할 것인지에 대한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고, 이들 단체가 최저임금위원회에 참석하는 방식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① 노동 측 위원보다는 정부추천을 받아 공익대표로써 참여하는 방식 ② 조사결과를 심사하는 전문위원회에만 참여하는 방식 ③ 전원회의 또는 전문위 회의에 투표권은 없고 발언권만 주는 방식(참관인 자격) 등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최저임금 위반에 대한 행정적 적용이 실질화되어야 한다. 제도 도입 이후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상승률 자체는 다른 국가에 비해 낮지 않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최저임금 미만의 노동자 수는 줄어들기는커녕 늘어나고 있다. 거의 한국에서만 관찰되는 현상이다. 왜 그럴까? 법의 적용 대상 범위가 확대된 것도 이유 중의 하나겠지만 더 중요하고도 결정적인 이유는 법을 위반하는 범위가 늘어난 데 있다. 법을 위반해도 제대로 적발되지 않고 적발된다 하더라도 낮은 과태료만 내면 되니 위법의 관행이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표2. 최저임금 추이와 최저임금 미달자 현황
정부는 전국의 근로감독관을 현장조사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최저임금 위반에 대한 행정적, 형사적 조치를 더욱 강하게 실시함으로써 최저임금 위반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문화를 구축하여야 한다.
아울러 최저임금 미달 현황에 대한 실태조사도 정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 새사연 연구자들은 가계조사인 경제활동인구조사를 통해 최저임금 미달 규모를 간접적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경활조사를 통한 임금 파악은 신뢰성이 높지 않다. 최저임금 위반 실태에 관한 한 각 지방의 노동청과 고용복지센터 등 공공 서비스 기관을 통한 기관조사를 병행하고 고용보험의 실시간 데이터와 연동시켜 교차 검증을 하여야 한다.
정확한 실태조사는 최저임금 인상의 효과를 사전에 추정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최저임금위원회에 따르면, ‘최저임금 영향률’은 10% 안팎 수준이다. 최저임금 근처에 있는 노동자들의 규모가 그러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최저임금 제도의 영향은 보다 광범위하다. 예컨대, 최저임금을 상승시키는 것은 전체 노동시장의 하방을 밀어 올리는 것인데, 하위계층 뿐만 아니라 중상위계층의 임금도 상승시키는 경향을 가진다. 개별 기업 수준에서는 내부의 임금격차 구조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연쇄효과가 나타나는 것이다.
또한 총 임금뿐만 아니라 임금의 구성요소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에 비해 기본급의 비중이 매우 낮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급여에서 기본급 외에 수당과 인센티브가 어느 정도 비중이 되는지를 한번 상상해 보라. 중소규모 기업의 경우에는 아예 기본급이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지만 법정 수당인 주휴수당 등으로 최저임금 위반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최저임금이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최소선’이 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나아가 최저임금의 인상을 통해 노동시장 내에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복잡한 우리나라의 임금 구성이 좀 더 간결하게 정리되고 이와 동시에 최저임금 위반에 대해 분명히 처벌하는 노력이 경주되어야 할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이 말뿐만이 아니라 실천이 되기 위해서는 위에 열거한 문제들이 장애물이 되지 않게 하는 사전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바야흐로 최저임금 인상이 공개적인 논의 테이블 위로 올라오고 있다. 논의가 보다 풍부해지고, 그 논의가 최저임금 인상을 위한 적극적인 실천을 뒷받침할 수 있게끔 노사정 모두의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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