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월가나 한국의 여의도 증권가를 떠올려 보라. 우리의 사회적 경제와는 아무런 연관 없는 곳, 또는 정반대에 위치한 곳처럼 느껴질 것이다. 금융이란 과연 무엇일까, 특히 왜 이자를 받는 걸까? 나는 30년 이상 경제학을 공부했지만 아직도 답을 잘 모른다. 금융이 사회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면 그건 필요한 곳으로 돈이 흐르도록 만드는 중개 기능 때문일 터이다.그런데 정작 현실의 금융은 ‘비 올 때 우산을 빼앗는’ 역할을 하기 일쑤다. 경기가 곤두박질치면 급전을 빌려주기는커녕 오히려 기존 대출도 거둬들인다. 또 돈이 가장 필요한 가난한 사람한테 오히려 높은 이자를 요구하는 곳도 은행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경제학은 이런 현상을 정보의 비대칭성으로 설명한다. 쉽게 말하자면 사람과 미래를 믿을 수 없기 때문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만일 누가 돈이 정말 필요한지 모두 알 수 있고, 미래가 어쩔 수 없이 불확실하더라도 그가 성실히 돈을 갚으려 노력할 것이란 사실을 우리가 확신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아가서 일정한 액수 이상의 돈이 꼭 필요하지 않다면 굳이 비싼 이자를 받으려고 금융상품 목록을 뒤지지 않아도 될 것이다. 이런 가정이 협동 금융의 원리일 테다. 우리가 혼자서 미래의 온갖 불안에 대비하려 한다면 무한정의 돈이 필요하게 된다. 예컨대 섭씨 4도 이상 오르는 기후온난화 속에서 혼자 살아남으려면 초첨단의 빌딩에 들어가야 할지도 모르고 ‘설국열차’를 타야 할지도 모른다. 아니,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내 아이를 낙오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들이는 돈만 해도 얼마인가? ‘나 홀로 살아남기’ 경쟁의 비용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합의하고 실천한다면 그런 엄청난 돈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학교를 나와서 무슨 일을 하든, 그 사람이 누리는 보수와 사회적 인정에 별 차이가 없다면 굳이 의대나 법대, 그리고 경영대에 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처럼 신뢰와 협동에 의해 사회적 딜레마를 해결하거나 상대적 지위 경쟁을 약화시킬 수 있다면 엄청난 돈을 소유할 이유가 없어진다. ‘다 같이 살기’ 전략이다. ‘나 홀로 살아남기’ 경쟁에서 패하기 마련인 99%의 서민들이라면 ‘다 같이 살기’ 전략을 택하는 쪽이 훨씬 나을 것이다. 원시시대 식량 공유의 습관부터 현대의 사회보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다 같이 살기 전략을 실천해 왔다. 사회적 경제에서는, 우연히 돈이 남아돈다면 아주 싼 이자로 또는 무상으로 돈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빌려 주고, 반대로 우연히 돈이 부족한 경우 언제나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캐나다의 데자르댕이나 독일의 라이파이젠과 같은 세계 유수의 신용협동조합이 고리대로 허덕이던 19세기 농촌에서 탄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최근 한국에서 공동체 금융이나 청년들 간의 협동조합 금융이 희망의 싹을 틔우는 것도 이런 원리 때문이다. 나 홀로 살아남기 경쟁을 그만둔다면 이런 세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우선 서로 믿을 수 있는 사람들끼리 시작해서 점점 사람을 모으고 또 여러 곳의 이런 모임을 네트워크로 엮으면 그것이 곧 협동조합 금융이다. 우리는 금융에서도 또다른 세상이 가능하다는 실험을 시작했다. *본 글은 한겨레신문에 게재된 원고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