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달여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던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는 일단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서일필(鼠一匹)’, 아니 ‘서무필’로 끝났다. 19일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경기회복에 대한 추가 증거가 확인될 때까지 양적완화를 미룬다고 발표했다.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고용시장이 자신들이 보려 했던 모습과 거리가 멀고 성장 둔화 우려 때문에 현재의 양적완화를 지속한다고 발표했다. 이번에 전망치를 끌어 내린 경제지표가 연준의 낙관적 전망을 확인해 준다면 금년 말쯤 다시 시도할 언급도 물론 잊지 않았다.미국의 양적완화는 중앙은행이 부실채권 등 민간 자산을 직접 사들여 은행 대신 자금중개기능을 했다는 점에서 전통적 통화정책과 다르다. 해서 비전통적이라는 수식어가 붙긴 하지만, 따지고 보면 중앙은행이 기존 자산의 보증을 서서 은행의 채권 발행을 도운 유럽의 상황도 그다지 다를 바 없다. 이렇게 비상 조치를 취했는데도 이번에 연준이 밝힌 것처럼 경기는 기대만큼 확실한 회복을 보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정책 없이도 리먼 브러더스 사태처럼 지난 5년간 세계가 1930년대처럼 패닉의 구렁텅이로 빠져 들지 않았을까?어쨌든 세계 경제 사상 최초의 시도인 만큼 이 정책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곧 임기를 마칠 정통 경제학자 버냉키로서는 하루 빨리 이 불안한 정책을 거둬들이고 싶었을 것이다. 표준 경제학 교과서대로라면 벌써 인플레이션이 기승을 부려야 했고 정부의 적자 부담 역시 만만치 않다.그런데 왜 연준은 양적완화 축소 계획을 적어도 연말까지 연기한 걸까? 경제학자들은 실업률 지표의 개선(7.5%)이 아예 구직을 포기하거나 질 나쁜 임시직에도 취직했기 때문이며 중산층의 소득은 오히려 감소했다는 사실을 가장 큰 이유로 들고 있다. 또한 정부와 의회의 예산안 협상이 마무리되기 전에 연준이 앞장서서 양적완화를 축소하기엔 부담이 컸을 것이다. 만일 협상이 결렬된다면 재정마저 막히는데 금융줄을 미리 죌 수는 없을 것이다.하지만 나보고 또 하나의 이유를 꼽으라면 부동산 시장 상황에 주목하겠다. 2013년 미국의 주택가격은 12%나 올랐고 이에 따라 모기지 신청자가 증가해서 연준에 희망을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미국 은행들은 오히려 모기지 전문가들을 해고하고 있다. 은행들이 더 이상 주택 거래가 증가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는 증거다. 즉 집값이 꿈틀거리는데도 중산층의 실수요가 따라가지 않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택경기가 활활 불붙을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즉 그 동안 집값이 꽤 내렸지만 소득도 동시에 줄었기 때문에 주택구매라는 일생일대의 모험을 할 엄두가 나지 않은 것이다.이런 추론은 한국의 현재 경제상황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집값을 올리기 위해 가능한 정책을 모두 동원했다. 하지만 다주택 소유자에 대한 특혜에 끌려 부자들이 집을 더 사들인다 해도, 그래서 집값이 꿈틀거린다 해도 실제로 경제가 회복될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박근혜 정부의 시나리오를 경제이론에서 찾는다면 피구효과, 또는 자산효과일 테다. 즉 집값이 오르면 사람들은 부자가 된 기분에 들떠서 소비를 늘리고 이것이 생산과 투자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소비를 더 늘릴 사람들은 누구일까? 부자들은 이미 충분한 소비를 하고 있으므로 돈이 넘쳐난다 하더라도 더 이상 소비를 확대하기 어렵다. 지금 집을 살까 말까 망설이는 중산층은 미래 소득에 자신이 없다면 집을 사지 않을 것이고, 구매한다 하더라도 원리금을 갚기 위해 저축을 늘릴 것이다. 즉 양극화가 심화된 상태에서는 자산효과가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미국이나 한국이나 경제를 살리려 한다면 더욱 약화되고 있는 경제적 불평등 상황을 하루 빨리 개선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들이 외친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 그리고 지금 타오르고 있는 협동조합 열풍은 이런 필요를 반영하고 있다. 국민의 뜻을 외면하는 불통과 독선의 오류는 머지않아 경제 분야에서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본 글은 경향신문에 게제된 원고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