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당하다. 보통 밀월기간이라고 하는 6개월을 지나면서 급락하는 대통령 지지율이 7개월을 훌쩍 넘긴 현 시점에서도 60%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대북정책과 외교효과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국정운영에서는 진척된 바가 전무하다.
대선 시기 공약했던 핵심 내용인 경제민주화와 복지공약은 갈수록 후퇴를 거듭하고 있다. 복지재정을 마련하겠다고 한 세제개편안은 세금폭탄이라는 안팎의 반대로 며칠만에 철회했으며 4.1부동산 대책은 어떻게 해서든 부동산 시장을 떠받들어 보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으나 몇 달이 지나지 않아 약발이 떨어져가고 있다. 추석기간 민생을 챙기며 향후 정국구상을 하겠다는 대통령의 말씀에 지지율은 계속되고 있지만 실제 들려온 내용은 기초연금 공약 폐지 소식이다. 진영 복지부 장관이 책임지는 모양새를 취한다고 한다. 참으로 절묘한 시점과 방식이 아닌가.
기초연금은 박근혜 대통령 후보시절, 어려운 대선 국면을 한번에 전환시켰던 강력한 공약이었다.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씩 지급하겠다던 박후보의 발언은 대서특필되며 노인층의 결집을 이끌었고 어르신들의 노후는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선언은 4대중증질환 보장과 더불어 박대통령의 대표적 복지 공약이 되었다.
하지만 4대중증질환은 가장 많은 돈이 들어가는 간병비, 선택진료비, 병실차액을 제외한 치료서비스만을 보장해 주는 것으로 축소되었으며 가장 심혈을 기울였다는 기초연금은 하위 70%에게, 그것도 차등지급하는 것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그리고 항상 하던 방식대로 외각에서 여론화하면서 분위기를 살피는 중이다. 보수언론에서는 경제 어려움과 공약수정 필요성을 충실하게 보도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인 빈곤은 매우 심각하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OECD 국가에서 가장 열심히 일하지만 가장 가난하다. 빠른 은퇴와 불안정한 일자리로 인한 중고령자의 빈곤수준도 심각하다. 2020년이면 본격화되는 고령사회로 한국 사회 최우선과제는 노인 소득보장문제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현 정부의 모습을 보면 절망적이다.
노인 소득보장은 GDP의 상당수를 노후 소득 보장에 지출하는 구조를 만드는 것과 보편적 공적 보장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고령사회에 도달한 선진국가들은 연금과 의료비에 각각 GDP의 8-9%를 지출하고 있다. 노인 인구가 빈곤의 위협을 벗어나 기본적 생활을 유지하는데 상당한 부를 지출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고령화 속도에 비해 너무 준비가 안되어 있다. 별도의 재정투입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시급하게 일정 수준 이상의 지출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경제에 심각한 부담을 주지 않는 범위에서 가장 빠르게 확대해야할 영역이다.
문제는 노인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는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반면, 재정과 시스템 제도화는 계속 미뤄지고 있다는 점이다.노후소득보장은 사회 전체의 합의를 통해 제도화된다. 경제주체와 노인인구, 젊은 세대간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혀있으며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하다. 따라서 매우 논쟁적, 정치적 과정을 거치게 되며 중장기 로드맵과 고도의 정치력이 요구된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현재의 재정구조를 개선할 생각이 전혀 없으며 한정된 재원안에서 최대한의 여론 효과만을 찾고 있다.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공적지출을 하고 있는 나라에서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노인 인구의 소득문제를 풀면서 추가적 재정대책없이 하겠다는 것이다. 단언컨대 그런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적극적인 재정대책이 우선되어야 한다.
또한 향후 노후 소득보장 시스템을 구축하는 일 역시 요원하다.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은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 각각의 역할과 재원, 지급율과 장기적 재정운영 방식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근본적으로 한국 사회 공적 연금체계와 노후소득보장에 대한 중장기 플랜이 부재한 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특히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바닥을 치고 있다. 연금에 대해 자꾸 말을 바꾸고 제도를 혼란시키는 것은 향후 복지정치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은 엄마의 마음으로, 국민의 행복은 국가가 책임지는 복지를 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내용은 밝히지 않고 재정이 어려우니 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해야 한다는 여론만 조성하고 있다. 논쟁적이고 갈등요소가 있다고 정책추진을 지연하면 문제는 더 증폭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해결은 더 어려워진다. 60%가 넘는 지지율을 자랑할 시점이 아니라 그 힘으로 적극적 공약실천에 나서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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