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대선개입사태가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8월 5일, 국회 국정원 댓글 의혹사건 국정조사 특위는 남재준 현 국정원장을 증인으로 출석시켰다.

그러나 이 자리에서 남재준 국정원장은 아무런 논리도 없고, 맥락도 맞지 않는 일방적 주장만을 반복하여 대한민국 입법기관인 국회의 권능을 무시하는 안하무인격의 독단을 부렸다.




세간의 필부들도 공공장소에서 개념과 논리를 상실한 채 혼자만의 독단을 부리면 시민들에게 규탄을 받고 쫓겨나게 된다. 하물며 정보기관의 수장이라고 하는 자가 끝없는 정쟁을 양산하고 국회 국정조사에서 1970년대에나 통할 법한 막가파식 대응으로 일관한다면 문제가 심각할 수밖에 없다.

남재준 국정원장, 그를 사퇴시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극단적 반북대결주의자

국가정보원은 지난 20세기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 등 친미군부독재정권의 정보기관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21세기들어 이어진 2000년 6.15 공동선언과 2007년 10.4 선언 등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 결과물들과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이어진 수많은 남북접촉들은 이제 국정원장들이 지난 시절 중정부, 안기부 시절의 극우반공주의에서 일정하게 탈피하지 않을 수 없는 흐름을 만들었다.

단적인 예로 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을 보좌하였던 임동원 전 국정원장,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수행하였던 김만복 전 국정원장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국정원장이었지만 남북관계 개선에 일정한 안목을 가지고 대북정책에 개입하였고, 그 결과 6.15 공동선언과 10.4선언이 채택되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 심지어 1970년대에도 이후락 중앙정보부장이 평양을 방문해 7.4 남북공동성명에 서명하고 돌아왔던 전례가 있다.

그러나 남재준 국정원장은 그 반북대결적 관점을 본다면 1980년대의 안기부장 수준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에 대한 남재준 원장의 인식을 보면 그 대결적 사고방식이 확연하다.

NLL은 1953년, 미국이 이승만 정권의 과도한 무력북진통일노선을 제지하기 위해 설정한 한미간의 한계선으로 북한선박의 남하를 막는 선이 아니라 한국선박의 북상을 막기 위해 설정한 선이다. 미국이 한국정부를 규제한 한계선을 한국정부가 북한당국에 요구하고 있으니 군에서 주장하는 “NLL 사수”라는 의미자체가 틀린 말이다.

그러나 남재준 국가정보원장은 “NLL 사수”를 분명히 한 데서 훨씬 더 나아가 8월 5일에 국회에 출석해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NLL(북방한계선)을 포기하는 발언을 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등거리, 등면적”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 당시 NLL을 없애자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이에 동조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남 원장이 ‘(대화록에는) NLL 포기라는 단어는 없었다. (노 전 대통령이) 그런 취지로 발언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라고 답변했다”고 앞뒤 맥락을 강조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그런 발언을 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남재준 원장은 대통령의 발언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몽니를 부렸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NLL의 역사적 근거가 없고 규정력이 없기 때문에 남북대화의 장에서 NLL을 사수한다는 입장을 전면화하면 곧바로 회담이 파탄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미국이 이승만 정부에게 요구했던 선을 억지로 북측에 요구한다면 북한의 입장에서는 남측이 정상적인 정책결정권을 가졌다고 판단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NLL 사수”를 외치는 한, 남북관계가 발전할 수 없는 이유이다.

결국 남재준 원장은 남북관계가 파탄날 수밖에 없는 “NLL사수”라는 발언을 끝까지 물고늘어지면서 노무현 대통령이 “NLL사수”를 안했으니 포기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셈이다. 남재준 원장의 입장을 따를 경우 남북관계 발전은 불가능하다. 남재준 원장이 70년대식 극우맹신적인 반북반공 이념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자가 국정원장 자리에 앉아있는 이상, 남북간 물밑접촉은 불가능하며 남북관계는 발전할 수 없다.

이념대결의 광신자

남재준 국정원장의 8월 5일 국회발언을 놓고 보면 이 자가 정상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사실관계를 넘어선 극단적 이념대결에 심취해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국가정보원의 댓글 의혹사건에 대해 “정상적 대북 사이버 방어 심리전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들어 북한의 대남심리작전이 노골화됐다면서 “정당한 국가안보 수호활동”이라고 강조했다. 국정원 직원들의 댓글 활동 역시 “이적활동을 색출하기 위한 대북선전활동”이라고 밝혔다.

남재준 국정원장은 북한의 대남심리작전이 노골화되었다고 하면서 그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논리가 궁해지니 북한의 공작이라는 주장에 기댄 것이다.

그러나 당시 국정원 요원의 아이디 “좌익효수”가 남긴 댓글 내용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만큼 자극적인 내용들이 많았다. 팟캐스트에서 활동했던 망치부인을 두고는 그녀의 10대 딸에게 “저년도 커서 빨갱이 될 꺼 아님??”이라 하였으며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대표에게는 “때려죽이고 싶게 생겨먹었다.” 안철수 당시 후보를 두고는 “생긴건 절라도 종잔데… 김대중이 숨겨논 아들같이 생겨먹었잖아”라고 하였다. 그 외 “절라디언은 전부 죽이거나 노예로 만들어야 한다.”라고 하는 등 여성을 비하하고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악성저질댓글로 일관하였다.

남재준 원장은 이러한 저질악성댓글들을 국가안보 수호를 위한 정상적인 대북방어 심리전단 활동으로 생각하고 있단 것인가. 이념대결에 광적으로 빠진 나머지 정상적인 사고능력을 상실했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국가기록을 제멋대로 공개

나아가 남재준 원장은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독자적 판단으로 했다”면서 청와대와의 연계설 내지 교감설을 부인했다.

물론 정상회담 대화록을 “독자적 판단으로 공개했다”는 남재준 원장의 발언의 진위는 더 따지고 볼 일이다. 그러나 백번 양보해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판단하더라도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

정보기관의 수장인 국정원장이 중앙정치에 개입한 것이다. 국정원은 정보기관으로써 필요한 정보를 취득해서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기관이지 그 정보의 활용방법까지를 독자집행하면서 정치에 개입할 수 없다. 이는 중앙정보부가 한국정치를 주물렀던 1970년대와 다를 것 없는 민주주의의 유린이다.

또한 남북정상회담이 남과 북의 특수한 관계를 고려하더라도 남북정상회담은 엄연히 유엔회원국 정상간의 회담이다. 그런데 대한민국 정부기관이 정상회담의 대화록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현실은 한국외교의 국제적 대망신이다.

대한민국은 정상회담 대화록을 제멋대로 공개하는 나라로 세상에 알려지고 말았다. 앞으로 우리 정부의 정상회담 대화폭은 매우 좁아질 수 밖에 없다. 해외정상들은 한국정부와 회담을 진행하더라도 “발언이 언제 공개, 폭로될 지 모른다.”는 인식을 갖게 될 것이고 이는 격의없고 폭넓은 대화를 통해 상호간 이해를 높이는 외교의 근본원리를 무력화시키고 만다.

남재준 원장은 한국외교의 초대형 사건을 터트려놓고도 그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이 역시 국가사안보다 이념논란을 더 우선시하는 견해의 표출이다. 정보기관의 수장에 이런 자가 앉아 있다면 국정원의 활동은 앞으로 더욱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이미 빗발치는 사퇴요구

상황이 이렇다보니 시민사회진영을 떠나 정치권에서도, 심지어는 새누리당 의원들조차도 남재준 국정원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7월 17일 “권력기관이 정치에 과도하게 개입해서는 안 된다”면서 남재준 국정원장의 자진 사퇴를 촉구했다. 청와대에 대해서도 정쟁 개입 자제를 요구했다.

민주당은 7월 11일,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남재준 원장의 해임을 요구했다. 배재정 당 대변인은 “국정원의 NLL 도발을 2차 정치 쿠데타로 규정한다. 국정원은 전임 대통령의 뜻까지 제멋대로 왜곡하고 조작했다. 이젠 양지에서 노골적인 정치개입을 하겠다는 의미로 밖에 해석할 수 없다”고 논평했다. 그는 “노골적인 정치개입을 일삼고 있는 직속기관조차 컨트롤하지 못하는 박 대통령의 무능을 탓해야 하나, 아니면 대통령과 국정원, 집권여당의 ‘거대한 커넥션’을 국민들이 두려워해야 하는 것인가”라고 따졌다.

국정원 국정조사 특위 소속 야당 의원들은 8월 6일 “법도 절차도 무시하고, 보안의식도 없는 남재준 국정원장은 더 이상 직무를 수행할 자격이 없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야당 특위위원들은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이번 국정원 댓글 사건의 본질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대선에 개입하고, 국가기밀인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남재준 현 국정원장이 자의적으로 기밀을 해제하고 공개한 것”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이들은 또 “남재준 원장은 오피스텔에서 자행된 국정원 직원의 선거개입을 인정하기는커녕 기밀누설, 미행, 감금 등으로 표현하며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살펴보면 남재준 원장은 재임 이전부터 이미 5.16 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하고 2004년에는 노무현 정부의 군 문민화 시책에 반발해 쿠데타를 연상케하는 “정중부의 난”을 언급하는 등 수준 이하의 집무능력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자이다.

이런 자를 박근혜 대통령은 국정원장으로 중용하였고 그 결과 국정원이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를 통해 중앙정치에 개입하는 초유의 사건이 터져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남재준 원장을 믿었는지 모르겠지만, 남재준 원장도 결국 박근혜 대통령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고 말았다.

역사의 퇴물은 즉시에 사퇴시키는 것이 정답이다. 사상초유의 한미정상회담 수행 중 성추행이라는 국가망신을 시킨 윤창중 청와대 대변인도 시민사회진영의 한결같은 반대의견을 무릅쓰고 박근혜 대통령이 인사를 끝까지 고집한 자업자득이므로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 이번 남재준 원장의 경우도 결국은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