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경제 뉴스를 읽어 드릴 정태인입니다.

지난 달 19일, 전 세계의 금융시장을 뒤흔든 ‘버냉키 쇼크’부터 얘기해야겠군요. 미국이 앞으로 양적 완화를 축소할 것이란 발표에 전 세계 주가는 일제히 추락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디에서도 버냉키가 왜 이런 얘길 발표했는지, 그 이유를 찾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연방준비제도의 공개시장위원회(FOMC)는 양적 완화를 그대로 유지한다고 발표했죠. 실업률 6.5% 하한, 인플레이션율 2.5% 상한에 이르기까지는 정책 기조를 바꾸지 않는다는 말도 되풀이했습니다. 지금 미국의 실업률은 7.8% 정도이고, 청년 실업률은 두 배에 이르며 더구나 정규직의 증감으로 본다면 위기 이후 별로 나아진 게 없으니 이런 기조로 봐서 단기간에 위에서 말한 두 목표를 달성하기도 어렵습니다. 물론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얼마간 회복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UN desa(UN의 경제부서인데 세계금융위기 이후 OECD나 IMF보다 더 나은 예측을 해왔습니다)의 금년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은 1.9%입니다. 작년의 2.2%에도 미치지 못하는 거죠. 더구나 세계경제의 마지막 버팀목인 중국의 경제성장률마저 잘해야 7%대에 머물 것이 거의 확실한 지금 미국이 경기회복을 자신하면서 인플레이션을 걱정한다는 건 과도한 낙관입니다. 물론 정통 경제학자 버냉키는 양적 완화라는 비전통적 금융정책을 쓰는 게 꺼림칙했겠죠. 더구나 이 정책은 일단 제로금리에 도달한 뒤에는 경제가 더 나빠지는 걸 막을 수는 있을지언정 경기회복에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바로 케인즈가 말한 유동성 함정의 상황입니다. 우리가 그 옛날 거시경제학적 책에서 봤던 평평한 LM곡선(통화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켜 주는 이자율과 산출의 조합)의 상황입니다(아래 그림 참조). 이 상황에서 양적완화는 LM곡선을 오른쪽으로 수평 이동하는 걸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림에서 수평의 LM 곡선을 아무리 옮겨봐도 균형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반면 IS곡선(실물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켜 주는 이자율과 산출의 조합)을 오른쪽으로 이동시키면 위 그림이 보여 주듯 바로 GDP가 증가하겠죠. IS-LM 분석을 굳이 여러분께 보여 드리는 이유는 이 그림이 이제 표준 거시경제학 교과서에서도 사라졌기 때문입니다(크루그만은 2008년 위기 이후 경제학자들이 제대로 된 정책을 내놓지 못하는 이유는 이런 분석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한탄에 한탄을 거듭한 바 있죠). 물론 시중에 미국 달러가 넘쳐나면 달러화 가치가 떨어지고 수출에는 유리하겠죠. 전형적인 ‘이웃 거지 만들기'(Beggar thy neighbor, 흔히 “근린 궁핍화”라고 번역하죠) 정책입니다. 일본의 아베노믹스 역시 마찬가지인데 이래저래 우리의 수출은 더 어려워질 겁니다. 대외적인 측면을 빼면 지금 미국에 필요한 정책은, 금융시장 안에서 이리 저리 배회하거나 대기업이 투자는 하지 않고 그냥 가지고 있는 돈(사내 유보)에 세금을 매겨서 가난한 사람이나 중소기업에 돌아가도록 하는 일입니다. 이 점은 한국도 마찬가지인데 마침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가 사내유보에 세금을 매기든가 법인세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고 올바른 소리를 했네요. (바로가기 ☞ : 박승 “대기업 유보금 별도 과세해야”)하지만 미국, 그리고 유럽의 보수주의 경제학자와 정치가들은 재정적자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당장 미국 정부는 의회의 결정에 따라 자동 지출삭감(sequestration)에 들어가야 합니다. 금년 나머지 기간만 무려 850억 달러를 줄여야 합니다. 현재와 같은 시기에 효과적인 재정지출은 이미 물 건너간 겁니다. 실로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경우죠. 버냉키는 내년 1월에 교체될 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그런데 이제 내년 1월이면 교체될 게 거의 확실한 그가 세계 경제에 왜 이런 충격을 준 걸까요? 더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원래 호들갑스럽기 마련인 금융시장이 출렁거리는 건 그렇다 쳐도 우리의 언론이 몇 면을 할애하면서도 그 이유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버냉키의 발표를 호의적으로 본다면 자산가격이 부풀어 오르는 데 데 대한 경고겠죠.

반면 한껏 악의적으로 해석한다면 임기 내에 자신의 힘을 한번 과시한 데 불과한 걸로도 보입니다. 하여 현재까지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벤 버냉키 Fed 의장. 그는 경제학자로서 ‘디플레 공황’ 전문가로 명성을 얻었지만 폴 크루그먼 교수 등 진보 진영 학자들로부터 Fed 의장의 리더십을 상실햇다는 혹평을 받고 있다. ⓒ로이터=뉴시스버냉키는 어쩌면 커다란 실수로 판명 날, 시답지 않은 짓을 했으며 우리 경제에도 별 영향이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런 일과성 해프닝과 상관없이 세계 경제와 한국 경제가 계속 수렁 속에서 헤맬 것이라는 사실도 변하지 않을 겁니다. 특히 중국이 경착륙할 가능성은 계속 점검해야 할 겁니다.벌써 저한테 허락된 분량이 다 됐지만 한국 얘길 건너뛸 수는 없겠죠? 경기부터 살펴보면 정부가 금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에서 2.7%로 끌어 올렸다는 게 눈에 띄네요. 작년 9월에 올해 예산 수립의 근거인 2013년 전망치를 4.0%라고 했다가 정부가 출범하면서 반으로 확 내렸다가 또다시 늘리고 가관입니다. 물론 금리를 떨어뜨리고 예산을 대폭 늘렸으니 이 정도 성장률은 달성할 수 있습니다만 2003년에서 2005년 초까지 제가 청와대에 있을 때 경제성장률은 5% 정도였는데 <조선>·<중앙>·<동아>가 나서서 ‘경포대'(경제를 포기한 대통령)니 뭐니 난리를 쳤던 기억이 떠올라서 씁쓸할 따름입니다.한편 정부가 야금야금 민영화를 진행하는 데 경각심을 가져야 합니다. 아니, 당장 나서서 막지 않으면 안 됩니다. 금융위원회가 민영 보험사를 통해서 ‘노후 의료비 보장보험’이라는 새 상품을 출시한다고 발표했는데요. 건강보험이라는 훌륭한 공적 보험을 놔두고 민간보험을 늘리는 건 돈 많은 사람들의 노후만 보장하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지요. 의사인 김종명 ‘내가 만든 복지국가’ 건강보험하나로 팀장의 글을 보시죠. (바로가기 ☞ : (박근혜,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포기하나)한편, 내년도 건강보험료는 겨우 1.7% 올렸는데요. 우리 모두 안심하고 노후를 맞으려면 건강보험료를 더 내서라도 건강보험 보장성을 확대하는 길입니다. (바로가기 ☞ : [정동칼럼]건보료를 올려라, 가입자 단체여!)박근혜 대통령의 ‘줄푸세'(잊어버리셨나요? “세금은 줄이고 규제는 풀고 법은 세운다”죠?)는 철도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습니다. 26일 국토부는 수서발 KTX를 철도공사의 자회사로 운영하겠다는 발표를 했습니다. KTX 노선을 쪼개서 경쟁체제로 만들면 소비자에게 적자를 줄일 수 있고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도 개선될 거라는 얘깁니다. 전형적인 민영화 논리죠. 정부는 이런 비판에 대해서 “민간매각 제한에 동의하는 자금만을 유치하고 이런 내용을 투자약정 및 정관에 명시하는 등 방지 장치를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과연 믿을 수 있을까요?개방, 규제완화, 민영화는 지난 30년간 세계를 풍미했던 철 지난 유행가입니다. 지금 버냉키 쇼크까지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경제위기를 낳은 원흉이기도 하지요. 박근혜 대통령은 정말 옛날을 사랑하는 모양입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이 취향은 우리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릴 겁니다. 더구나 한미 FTA가 발효된 상태에서 ‘노후 의료비 보장보험’이나 ‘수서발 KTX 노선’에 미국 투자가 들어간다면 그다음엔 되돌릴 수도 없습니다. 투자자 국가 제소권을 발동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들이 첫발을 내딛기 전에 국민들이 막는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의 첫 조합원 대상 서비스 <주간 프레시안 뷰> 준비호 1호에 실린 글입니다. 7월 한달 동안의 준비 기간을 거쳐 8월부터는 유료서비스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합니다. 정치, 경제, 국제, 생태, 한반도 등 각 분야의 권위 있는 전문가들이 직접 전하는 뉴스를 보고 싶다면 프레시안의 조합원이 되기를 적극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