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으로부터의 자생력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협동조합 도시를 만들겠다는 발상을 이해하기 어렵다. …반 시장적 성향을 드러내는 사회주의적 조직에 협동조합의 외피만을 두루면 좌편향적 의식과 사고가 걷잡을 수없이 빠르게 퍼져나간다.”
– 임헌조 한국협동조합연대 이사
“좌파는 20여년 전부터 생활협동조합 운동을 시작으로 풀뿌리 지역사회 공동체 활동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풍부하다. … 결국 좌파 지역사회 운동가들이 마을활동가가 될 수밖에 없다. … 지금까지 국내에서 협동조합이 활성화되지 않은 것도 시장에서 경쟁을 거쳐 도태됐기 때문이다. … 협동조합을 활성화시키려면 나랏돈을 넣어야 하는데, 그럴 거면 차라리 그 돈을 복지에 쓰는 것이 낫다. … 서울시 돈은 집어넣지 마라.”
– 김정호 연세대 특임교수
협동조합에 관해 한 인터넷 언론에 실린 인터뷰 중 일부이다. 밑에서부터의 자생력이 중요하다는 점, 관주도의 협동조합 육성이 부작용을 갖고 올 수 있다는 점 등의 지적에 대해서는 공감이 간다. 하지만 ‘반 시장적’, ‘사회주의적’, ‘좌파 지역사회 운동가’ 등을 들먹이며 불필요한 색채를 덧씌우고, 협동조합 생태계 조성을 위한 서울시의 지원 자체를 잘못된 것으로 치부하는 태도에는 공감하기 어렵다.
우리의 협동조합과 사회적 경제는 이제 막 걸음마를 떼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손을 잡아 줄 제도와 지원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언제나 자유방임의 경쟁으로 굴러가는 것처럼 보여도, 역사를 돌아보면 유치산업에 대한 보호정책은 언제 어느 곳에서든 존재했다. 우리의 대기업들도 전후 초기에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정부 차원에 막대한 차관지원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제 관계에서도 자국의 주요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들은 존재한다. 또한 전략적으로 산업정책을 세우고 추진해나가는 일은 국가의 중요한 경제정책이기도 하다. 지금 박근혜 대통령이 창조경제라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뒷받침하는 정책을 추진하려고 하는 것도 같은 일이다. (그 목표와 세부정책이 올바른지는 여기서는 제쳐두자.)
특히 현재의 사회 제도는 일반 기업을 중심으로 설계되고 운영되고 있다. 일반 기업과 다른 소유구조와 분배구조, 그리고 가치지향을 갖는 협동조합으로서는 모든 것이 불리한 상황이다.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조달 문제, 경영성과 측정지표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실무적인 문제를 떠나서, 우리에게는 협동이라는 가치나 협동조합이라는 조직에 대한 경험 자체가 부족하다. 협동조합이야말로 매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뛰고 있는 선수이다.
그런데 협동조합은 공동소유와 민주적 운영이라는 특징으로 인해 소득불평등이나 경제민주화, 지역사회 발전과 같은 우리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된다. 나아가 사회적 경제는 수익추구라는 경제논리로 모든 것이 잠식당했던 우리 사회에 공동체적 가치를 불어넣는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국민들의 호응도 뜨겁다. 이런 상황이라면 더더욱 협동조합이 제대로 자리잡을 수 있는 정책지원이 필요하다.
협동조합의 성공사례로 유명한 캐나다 퀘벡은 1960년대부터 주정부가 협동조합에 관심을 갖고 본격적인 지원 정책을 펼쳐왔다. 경제침체 해소와 사회개혁을 위해서는 지역경제를 살려야 한다고 판단했고, 협동조합이 훌륭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1963년 주정부 내에 협동조합국을 세우고, 1977년에는 협동조합촉진기관을, 1985년에는 협동조합투자제도와 지역개발협동조합지원제도를 도입했다. 2000년에는 노동조합과 연대하여 사회적 경제를 지원하는 기금을 만들었다.
2001년에는 협동조합추진정책을 발표했는데, 협동조합이 퀘벡주 경제에 공헌한 점을 인정하고 주 정부의 모든 기관과 부처가 협동조합의 창업과 성장을 돕도록 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세부적으로는 향후 5년 동안 협동조합 신설수를 50% 증가시키고, 10년 간 순고용 2만 명을 창출하며, 신흥업종에서 향후 5년 동안 협동조합 투자를 25% 끌어올려 협동조합을 다양화한다는 등의 목표를 세웠다. 이후 협동조합들이 서로 파트너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장려하고, 외부투자를 통해 자금공급을 하도록 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했고, 협동조합에 대한 컨설턴트 기능도 개선했다.
덕분에 퀘벡은 건강한 지역경제와 지역 공동체를 얻었고, 성공한 협동조합 사례를 배우기 위한 방문자들을 얻었다. 그렇다고 어떤 분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좌파적이거나 반시장적이 된 것은 아니며, 세금을 낭비하지도 않았다. 그러니 우리 서울도 퀘벡 주정부 만큼은 해보고 걱정할 일 아닐까? 물론 그 과정에서 일회성의 직접 자금 지원이 아니라 생태계를 조성하고 인력을 육성하는 장기적 지원이 될 수 있도록 경계하는 자세 또한 잊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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