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치권에서 정책 우클릭이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다. 여당에서 이를 주도하는 것은 청와대와 박근혜 대통령이다. 경제민주화가 무리한 것이 아닌지 걱정이라는 발언에 이어 “대기업을 옥죄고 때리고 이런 것은 옳지 못하다”고 박 대통령은 발언수위를 올려나갔다. 그러더니 지난 18일에는 “제가 생각하는 경제민주화는 대기업 스스로 국민과 중소기업의 눈높이에 맞춰 사회에 대한 신뢰를 높여가는 것”이라면서 이른바 재벌의 ‘자율적 개혁’으로 선회한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자율적 상생과 동반성장’ 수준으로 후퇴한 것이다. 그리고 지난 22일에는 “확실하게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아예 5년 전의 ‘줄·푸·세’로 돌아간 느낌이다.물론 여당 안에서도 남경필 의원 등 당내 경제민주화 실천모임 등에서 “양극화나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문제 등이 아직 해결되지 않았는데, 이것을 ‘포퓰리즘’이라고 얘기하면 지난 대선에서 우리가 당의 강령으로 약속하고 공약했던 게 다 뭐가 되느냐”는 비판이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그 결과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 고발권을 약간 손질하는 것 말고는 부당 일감몰아주기 금지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재벌개혁 법안들이 거의 처리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재벌개혁은 강력한 정치적 동력이 붙어야 겨우 작은 성과라도 낼 수 있기 때문에 임기 초반에 때를 놓치면 집권기간 내내 어렵다는 것이 통설이다. 박근혜 정부의 재벌개혁 전망은 벌써부터 매우 어두워졌다고 할 것이다. 여당의 정책적 후퇴가 이토록 심각하면 당연히 야당이 이를 비판하고 견제하는 것이 전반적인 다당제 국가에서 국민의 기대일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전혀 아니다. 민주통합당도 정책적 우클릭 움직임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제안된 당 강령과 정책 개정안에는 ‘보편적 복지’라는 용어나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검토’ 문구 등이 삭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민주화와 관련된 항목에서도 굳이 “기업의 경영활동을 존중하고 지원”한다는 구절을 삽입해 기업의 자유를 강조하고 있다. 아직 결론 난 것이 아니고 논의 중이라고 하지만 명백한 정책적 우클릭 움직임이다. 상황이 이러니 민주당이 여당의 정책적 후퇴를 비판할 근거도 없고 비판하더라도 국민이 수긍할 근거가 없게 된다. 더 나아가 지난 대선에서 여당과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공약이 진정성이 없고 야당 공약을 베꼈다고 비판했는데, 그 비판은 지금 그대로 민주통합당으로 향해야 할 판이다. 대선이 끝난 지 6개월도 안 돼 여야 합작으로 우향우 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들만 답답할 뿐이다. 이 시점에서 시간을 약간만 되돌려 보자. 2010년 무상급식 요구가 번져나가면서 6·2 지방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했다. 그러자 이전까지 위축됐던 옛 민주당은 크게 고무돼 보편복지와 경제민주화를 당의 정강과 정책의 전면에 내걸면서 방향전환을 시도한다. 2011년에는 경제 민주화특위를 구성하면서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를 추구하는 정당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왔고 그만큼 국민의 신뢰도 역시 조금씩 높아졌다. 여기에 위협을 느낀 여당은 2011년 10·26 재보궐 선거 참패 이후 당의 환골탈퇴를 선언하면서 당명까지 바꾸고 야당의 경제민주화 구호를 통째로 가져와 새누리당의 핵심 정책으로 내걸었다. 경제민주화에 식견이 있는 김종인 전 의원을 영입한 것도 같은 시기이다. ‘맞춤형’이라는 단서가 붙었지만 복지공약도 대거 수용한다. 그 결과 여당과 야당의 정책과 공약은 외형적으로 거의 유사해졌고 그 때문에 누가 진정성이 있느냐로 정책경쟁 구도가 바뀌었을 정도다. 여하튼 여당과 박근혜 후보는 정책 대전환을 기반으로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했다. 한 마디로 2010년부터 2012년까지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까지 경쟁적인 정책 ‘좌클릭’ 시기였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선거가 끝나자 모든 것이 바뀌었다. 국민에게서 표를 얻기 위해 경쟁적으로 좌클릭했던 정책들을 하나둘씩 버리기 시작하더니, 이제 여당은 최악의 보수정책인 ‘줄·푸·세’에 근접해가고 있고 야당인 민주통합당도 ‘중도’라는 이름 아래 2010년 지방선거 이전 버전의 정책으로 되돌아가려는 조짐인 것이다. 물론 바뀌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국민의 생활과 삶이다. 세계적인 장기침체의 여파로 우리 경제가 2년째 2%수준의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이라 더 어려워졌다. 경제민주화와 보편복지는 어려운 국민의 삶을 반전시켜보자고 정치권이 약속한 것이었다. 그러나 정치권이 약속을 저버리고 상황 악화를 방관한다면 추경예산 편성이나 10분의 1 토막 난 국민행복기금 정도로 상태가 호전될 것 같지 않다. 구호뿐인 창조경제로 달라질 것도 없다. 그렇다면 어려운 삶을 인내하고 있는 국민들이 정치의 집단적 우클릭 행태들을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경제위기보다 정치위기가 더 걱정이다.*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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