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한 달을 넘기고서야 박근혜 정부가 국정방향과 정책을 속속 내놓고 있다. 2013년 경제운영 방향을 발표한데 이어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고용노동부의 업무보고, 그리고 부동산 시장 정상화(?) 대책까지 내놓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여야 정치권을 포함한 많은 국민에게 제대로 설명되지 못한 개념이 바로 ‘창조경제’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해 대선 공약에서 야당 후보들과 마찬가지로 ‘경제민주화’, ‘보편복지’, ‘일자리창출’이라는 3대 핵심의제를 내걸었지만, 당선 이후에는 여기에서 크게 후퇴했다. 특히 경제민주화는 마치 ‘계륵’처럼 형식적으로 끼어 넣는 정도의 취급을 받고 있다. 대신 집권 초기 각종 무리수까지 감수하면서 창조경제를 전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신설된 미래창조과학부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행정부 구성이 한 달 동안 미뤄진 것이 그 사례다. 당초 미래부 장관으로 내정됐던 김종훈 전 내정자는 잘못된 인사 파동의 정점에 서 있기도 했다.문제는 갈수록 박근혜 정부에서 비중이 커져가고 있는 ‘창조경제’의 실체를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정부 안의 정책 책임자들도 정확히 맥을 짚지 못하고 있다. 유민봉 대통령 국정기획수석은 “도대체 창조경제가 무슨 말이냐”는 여당 의원 질문에 동어 반복성 답변만을 내놓아 질타를 받았다. 창조경제를 일선에서 이끌어가야 할 미래부 장관 내정자인 최문기 후보자 역시 창조경제에 대해 시원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국정의 핵심개념에 대해 그 구체적 실체를 잡지 못한 채 정권이 시작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추상적이거나 주관적인 해석을 떠나서 창조경제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몇 가지 맥락은 있다. 우선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주로 ‘일자리’와 연계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창조경제를 통해 경제 난국을 돌파하고 특히 국정지표인 고용률을 끌어올리기 위한 지렛대로 삼겠다는 것은 박근혜 정부가 반복적으로 강조한 바다. 둘째로 창조경제는 주로 IT기술을 동심원으로 한 기술혁신과 그로 인한 혁신산업 지원에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의 토건산업 지원이나 녹색성장과 구분되며, 최근 복지와 관련해 강조되고 있는 사회서비스 산업 강화와도 구분된다. 특히 박원순 서울시장이 강조해온 사회혁신과도 구분된다. 셋째로 창조경제의 대표적 참조모델이 ‘이스라엘’이라는 것이다. 2000년 세계적인 벤처거품 붕괴에도 상대적으로 지속성을 보이고 있는 이스라엘의 벤처창업과 기술혁신 추세를 벤치마킹해 만들어낸 개념이 ‘창조경제’인 것이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최근 수 년 동안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던 복지국가(welfare state)와는 다른 이스라엘식의 창업국가(start-up nation)를 목표 모델로 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는 대체로, “IT중심의 융합산업에서 벤처 창업을 중심으로 기술혁신을 주도해 일자리를 만드는 창업국가 모델”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지금 시점이 “IT융합 부문을 중심으로 벤처창업 열풍을 만들어서 경기회복을 꾀하고 산업구조조정을 실현하며 일자리를 늘리는” 전략을 짜야할 상황인가. 1990년대 말 벤처육성 붐의 재연은 과연 가능할 것인가. 그런데 여기서 두 가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할 문제가 있다. 1990년대 말 시점은 비록 거품임이 드러났지만 세계적으로 ‘신경제’라고 불릴 정도의 수요확대가 있었던 시기다. 반면 지금은 ‘수요 부족’이 세계화되고 있는 국면, 즉 세계적으로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수요 위축’이 상당히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극히 일부 제품을 제외하고는 혁신적인 기술로 경쟁력이 있는 제품을 생산하기만 하면 무한히 수요가 따라주는 그런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최근 수 년 동안 스마트폰과 SNS가 급팽창하면서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지만, 이것도 내용을 들여다보면 대부분 대기업 위주의 하드웨어 제품이 주도하거나 페이스북과 같은 몇 개의 외국 플랫폼 회사들이 주도하는 경향이 크다. 많이 사례로 드는 모바일 앱 시장은 소문보다 큰 시장이 아니며, IT융합 산업도 대기업 주도로 제한된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어 다양한 벤처 창업공간이 넓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두 번째로, 지금은 세계적으로 금융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이고 코스닥 시장은 2001년 수준에서 사실상 멈춰있는 상황이다. 민간 벤처 투자자금 역시 1990년대 말에 비하면 턱 없이 위축된 상황이며 정부에서 자금 공급을 한다고 해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지금은 수요 측면이나 투자 자금측면에서 대단히 어려운 시기인데 자금도 영업 경험도 없는 젊은 청년들에게 모험적인 벤처 창업을 유도하는 행위는 매우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모델로 한다면서 내세우는 창업국가 비전은 대단히 불투명한 전망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충분한 타산도 없고 계획도 없이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를 피해가기 위해서 창업국가와 창조경제를 선택했다면 적어도 일자리는 창조하기 어렵게 될 것이다.*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 기고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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