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침부터 대기실에는 환자들이 꽉 들어차 있다. 보통 때 같으면 틈틈이 인터넷도 돌아보면서 쉬엄쉬엄 진료할 텐데, 요즘은 그렇지 못하다. 바로 독감 때문이다. 쉴 틈 없이 바쁜 것도 문제지만, 그만큼 환자들과 실강이를 벌여야 할 일이 많아지기도 한다. “이 정도 증상이면 독감이라고 봐야 합니다.”“독감이라고요? 그러면 입원해야 하나요?”“아니, 꼭 그럴 필요는 없고….. 보통 감기 보다는 몸살도 심하고 오래 갈 거지만, 잘 쉬면서 증상만 가라앉히면 됩니다.”“타미플루를 먹어야겠죠?”“꼭 그 약을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조심하시고, 증상을 잘 조절하는 게 최선입니다.”“독감이라면서 치료를 안 하면 어떻게 합니까?”“…..” 이제는 전 국민이 알고 있는 명약, 아니 유명한 약인 ‘타미플루’를 요구할 때 굳이 필요 없다고 말하기 시작하면 그 때부터는 말다툼이 되고 만다. 독감이라면 당연히 치료해야 되는 거 아니냐부터 문제가 생기면 책임질거냐까지 짜증나는 대화가 이어진다. 독감 치료약은 없다2년 전 신종플루의 공포가 전 세계를 뒤덮을 때 상종가를 친 약이 바로 타미플루라는 독감 전용인 항바이러스약이다. 스위스가 본사이지만 미국의 아무개 전 부통령이 많은 주식을 가지고 있다는 소문도 있는 이 약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독감 치료에 효과가 없다고 해서 실제 의사들은 잘 쓰지도 않고, 거의 폐기처분 될 뻔했었다. 그러나 재작년 신종플루가 대유행할 때 효과가 있다고 발표가 나는 바람에 창고에 잔뜩 약을 쌓아두었던 로슈는 엄청난 이익을 거두기도 했다. 독감은 인플루엔자(Influenza)라는 바이러스이다. 바이러스들은 그 변이가 쉽게 되기 때문에 해마다 다른 종류의 치료제를 만들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어서 그것들을 치료하는 항바이러스제는 그다지 효과적으로 만들어지지 못한다. 그 많은 바이러스 중에서 B형 간염 치료제나 몇몇 치료제 외에는 잘 쓰이지 않는 이유도 바이러스의 특징 때문이다. 일선 의사들은 효과가 그다지 없다는 걸 알면서도 독감 치료제를 달라면 그것을 줄 수밖에 없다. 어떨 때는 효과 생각하지 않고 주기도 한다. 왜냐하면 나중에 독감인 줄 알았으면서 왜 치료제를 주지 않았느냐고 환자들이 항의하거나 만일의 사태에서 법적 문제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약이 건강보험으로 되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아서 자기 부담을 해야 하기 때문에 아주 비싸다. 효과도 불분명하고 비싸기만 한 약을 꼭 써야 할까? 독감, 겁내지 말자. 독감(毒感)이라고 표현된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지독한 감기’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감기의 일종이고, 아무 문제가 없는 줄 알게 된다. 그러나 인플루엔자(Influenza)를 뜻하는 독감은 감기와 전혀 다른 원인과 증상을 갖는다. 감기는 콧물, 목의 통증과 몸살과 같은 증상으로 시작되면서 기침으로 이어지는 호흡기 증상을 보이지만, 인플루엔자는 처음부터 인후통(목 통증)이 심하고 고열을 보이면서 까무라칠 정도로 사람을 힘들게 만든다. 감기가 고양이라면 인플루엔자는 호랑이라고 볼 수 있다. 힘든 증상까지는 참을만 하지만, 어린 아이나 어르신들, 면역력이 약하거나 중증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합병증으로 폐렴이나 뇌염으로 진행되어 사망에 이르게 되기가 쉽다는 게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사람들이 인플루엔자라는 존재를 너무 무시하기 때문에 질병관리본부나 전문가들은 독감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이제는 영어식 표현이기는 하지만 인플루엔자라는 말을 그냥 쓰고 있다. 독감이라고 써서 ‘독한 감기’로 오해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고 본다. 인플루엔자가 인류를 괴롭힌 것은 오래됐지만, 처음 그 존재감을 알리게 된 것은 1918~1920년 사이에 대유행하면서 2,000~4,000만 명 이상을 사망하게 만든 스페인 인플루엔자(“Spanish flu”)이다. 이것이 2년 전 우리에게 나타났던 신종플루라는 것과 같은 형태인 A/H₁N₁이다. 1968년 또 유행했던 홍콩 인플루엔자(A/H₃N₂)는 15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2009년 신종플루(A/H₁N₁)도 꽤 많은 사망자를 냈다.(왼쪽) 1918년 스페인 인플루엔자 당시 집단 치료소 장면 (오른쪽) 1919년 미국 적십자 대원들이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망자를 싣는 모습. 당시 사망자는 셀 수 없을 정도이고, 직전의 1차 세계대전 사망자의 두 배를 넘을 정도라고 한다. 한국에서 보통의 인플루엔자들은 계절형으로서 A/H₃N₂형이 많다. 이들은 11월경부터 이듬해 3, 4월까지 발생하기 쉬워서 예방접종도 그 시기를 목표로 하게 된다. 가끔 변종 인플루엔자가 생기면 대유행을 하게 되기도 하고, 특히 2009년의 신종플루는 A/H₁N₁형태를 띠는데, 이것들은 봄, 여름에도 기승을 부렸다는 특징이 있어서 비계절성 인플루엔자라고 한다. 하지만, 흔히 겨울에 찾아오는 계절성 인플루엔자나 변이 비계절성이든, 변종 인플루엔자이든 같은 족속들이어서 예방과 치료는 비슷하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할 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섞인 비말(droplet)이 다른 사람에게 감염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하는 것이고, 대게 감염된 환자와는 2m 이상의 거리를 두라고 하며,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는 가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손에 묻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외출하고 돌아오면 비누로 손을 깨끗이 씻으라고 하게 된다. 그리고 치료약은 별 볼일 없어도 예방접종의 효과는 확실해서 필요한 사람들은 반드시 맞는 게 좋다. 예방법도 있고, 잘 쉬면서 견디면 낫는 것이 독감, 아니 인플루엔자이다. 무섭지만, 실제로는 하나도 안 무서운 질병이지 않은가? 요즘과 같이 인플루엔자 유행주의보(2012년 1월 5일 발령)가 내려지는 시기에는 무리를 하지 않는 게 좋고, 혹여 피곤한 일을 했을 경우에는 하루, 이틀은 푹 쉬어주자. 그리고 손도 자주 씻어주자. 이것이 타미플루보다 더 훌륭한 예방법이고 치료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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