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나는 꽤 많은 정치인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논문 들여다보는 게 일인 사람에겐 흔치 않은 일인데, 바로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때문이었다. 기본적으로 양자간 협정인 FTA는 말 그대로 아주 다양하다. 참여정부 이래 우리가 취한 전략은 “거대 선진경제권과의 동시다발적 FTA”이다. 고강도의 충격을 이리 저리 줘서 가장 경쟁력 있는 산업의 이익을 극대화하고 약한 부분도 경쟁 속에서 살아야 하며 혹 죽어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미 FTA와 한·EU FTA는 기실 농업과 중소제조업을 버리고, 수출대기업과 서비스산업으로 경제를 꾸리겠다는 것에 다름아니다. 한국의 삼성 등 재벌, 그리고 기획재정부는 한 마음으로 네트워크 서비스산업, 그리고 의료와 같은 공공서비스 산업이라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노리고 있다. 한국의 서비스, 지적재산권, 투자 분야를 개방하고 민영화하겠다는 미국의 전략과 정확히 일치했다.한·중 FTA는 사뭇 다르다. 중국은 서비스, 지적재산권, 투자 분야의 협상을 기피할 것이 확실하다. 최근 중국·뉴질랜드 FTA 이래 이런 신이슈를 포함한 것들이 있지만 한국에 이들 분야를 강하게 요구해서 제조업의 개방 수준을 높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공공서비스 민영화의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상품무역 분야의 이익도 미국과 EU에 비해서 훨씬 클 것이다. 2010년 대중국 수출은 1168억 달러였고(금년에는 전체 수출의 4분의 1에 이를 것이다) 흑자는 452억 달러로 전체 흑자의 80%에 달했다. 중국의 단순 평균 관세율은 9.7%이지만 관세환급을 고려하면 약 2.7%에 해당한다. 따라서 관세를 0으로 낮추기만 해도 당장 약 55억 달러 정도의 이익을 볼 수 있을 것이다.문제는 농업과 중소기업이다. 한·중 FTA는 한·미 FTA와 한·EU FTA 이후 유일하게 남은 신선채소나 과일마저 궤멸시킬 것이다. 또한 한국과 중국은 아주 밀접한 분업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산업내 무역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데, 특히 전기나 비철금속, 정밀화학, 건설기계산업의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을 것이다.다행히 중국은 자국 기업 하나 하나의 이익을 위해 집요하게 개방을 요구하지 않아도 되는 정치·경제구조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또한 자국의 완성차나 전자산업의 유치산업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한국에도 양보해야 한다. 박태호 신임대표가 “농산물을 대폭 개방하는 높은 수준의 협상은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 것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현재는 국익 최대화를 내거는 제로섬 게임 방식의 FTA 전략 전체를 수정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런 방식으로 전개된 WTO 룰마저도 바뀌어야 하는데(예컨대 신이슈 규정과 농업분야는 모두 개정해야 한다) 구식 FTA를 또 맺는 것은 역사를 거스르는 행위이다. 이제 새로운 교류 형식을 창안해야 하고, 이는 차기 정부가 장기적인 세계 경제 전망과 산업구조, 복지사회에 대한 전략 속에서 결정해야 할 일이다.미국의 대아시아 전략을 고려할 때 한국과 중국 모두 외교·안보적 고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왕 그럴 거라면 장차 세계 속에서 동아시아가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역내 국가 간에 합의를 하고 그에 걸맞은 교류방식을 택해야 한다. 한 마디로 ‘경쟁해’가 아니라 ‘협동해’를 찾아야 한다.누가 봐도 상호이익이 크기 때문에 쉽게 협동해를 선택할 수 있는 사업은 얼마든지 있다. 외환보유액 여유분의 북한과 중국 내륙 투자, 황사 방지를 위한 환경협력, 시베리아 가스관 사업, 중국 쪽 대륙간 철도 연결, IT산업 표준 사업 등 무궁무진하다. 중국과의 국제협정은 FTA가 아니라 공동체적 협력을 목표로 한 새로운 유형의 세계 표준을 동아시아에서 만들 수 있는 기회다. 중국이 홍콩과 맺은 ‘성과확대형 CEPA’는 이런 구상의 맹아적 형태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구상 없이 실행하는 한·중 FTA는 또다른 의미에서 치명적 독이 될 수 있다.이 글은 주간경향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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