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의 진정한 붕괴가 시작되고 있다. 그 날은 리먼이 파산했던 2008년 9월 15일이 아니라 2011년 9월 17일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해 일자리와 집과 생활비를 걱정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린 99% 미국 시민들이 변화를 요구하는 행동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모든 변화는 객관적 시스템의 붕괴가 아니라 그 시스템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변화를 갈망하며 스스로 움직일 때 시작된다. 관적으로는 이미 3년 전에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았어야 할 신자유주의가 지금까지도 견고하고, ‘재정위기’를 빌미로 오히려 강화되려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었다면, 그것은 단 1%라도 그 시스템으로 인해 이익을 보는 세력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그 1%는 월가에 있었다.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대가 분노를 표현하며 월가에 몰린 이유다. 반세계화 활동가인 나오미 클라크가 시위대 앞에서 “더 이상 부유한 국가와 국민은 없고 부유한 사람들만 있다”고 주장한 그 부유한 사람들의 상징이 월가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에 의하면 월가의 초대형 6대 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씨티그룹, JP모건체이스, 웰스파고, 모건 스탠리, 골드만삭스는 미국 국내총생산의 60%가 넘는 자산을 축적했다고 한다. 선두 4개 대형은행은 신용카드 시장의 2/3를 장악했고 전체 모기지 대출의 절반, 그리고 전체 예금의 40%가까운 시장 지배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뿐인가. 자신들이 축적한 막대한 부를 기반으로 정치권력에 엄청난 로비를 하여 자신들을 옭아맨 규제를 풀면서 통제받지 않는 수익행진을 했다. 1998년에서 2008년까지 이들은 글래스-스티걸 법과 같은 금융규제를 완화하기 위해 50억 달러 이상의 로비자금을 뿌렸다. 금융위기 이후 금융규제를 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드-프랭크(Dod-Frank)법안을 약화시키기 위해 수억 달러, 법안 통과 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 또한 수억 달러를 썼다고 알려졌다. 이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시키고 거의 아무런 대가도 없이 7000억 달러 구제 금융을 받는 장본이다. 그러고도 폴 크루그먼의 표현대로 이들은 “동전의 앞면이 나오면 자신들이 이익을 보고, 뒷면이 나오면 미국 시민들이 손해를 보는”식으로 손쉬운 돈벌이를 해온 것이다. 한마디로 월가의 초대형 은행들은 너무 커서 파산 시킬 수 없는(too big to fail)것을 뛰어넘어, 너무 커서 존재해서는 안 되는(too big to exist)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월가 시위대들의 분노의 표적이 된 월가 초대형은행에 견줄만한 대한민국의 1%는 누구인가. 우리 경제에서 ‘너무 커서 존재해서는 안 되는 존재’는 누구인가. 바로 삼성, 현대, SK, LG로 대표되는 재벌 대기업 집단이다. 삼성과 현대 그룹의 공식적인 자산 총액은 한 해 국가 예산규모를 상회하는 330조원이 넘는다. SK와 LG까지를 포함하는 4대그룹의 작년 매출액 603조 원은 우리나라 국내총생산 규모의 절반을 웃돈다. 이들은 금융위기 이후에도 그 규모를 계속 키워서 2007년 대비 계열사 수자가 최소 30%이상 늘어났다. 현재 삼성그룹이 78개, 현대 그룹이 63개, 그리고 SK그룹이 86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너무 커져서 파산시킬 수 없을 지경이 아닌가. 더욱이 이들은 과거처럼 정권의 눈치나 보는 위약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정권에게 훈수를 두고 여의도 국회에 촘촘하게 로비를 하며 자사 싱크탱크를 동원하여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낼 능력까지 보유하게 되었다. 미국의 월가가 그런 것처럼 진정한 실세로서 권력을 쥐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삼성의 스마트폰 선전의 예로 알 수 있듯이 월가와 달리 부단한 기술혁신과 경쟁력 강화로 얻은 대가이고 때문에 비난받을 수 없는 것인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이미 올해 상반기에 크게 공론화된 것처럼, 하청기업에 대한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 골목상권이나 MRO사업 등에 이르기까지 무분별한 시장 잠식, 통신과 유류를 포함한 각종 독과점 가격 등을 통한 이익추구가 대기업 현금창고를 채우는데 기여했던 것이다. 또한 경제위기 와중에 정부의 규제완화, 감세, 고환율 정책의 지원을 받아 수익행진을 구가했음도 주지의 사실이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고용불안과 경제적 불평등, 불공정의 뿌리이자 부를 독점하는 1%가 있다면 당연히 그 맨 앞자리에 재벌 대기업 집단이 있어야 한다. ‘부유한 월가와 가난한 미국 국민’이 있다면 ‘부자 삼성과 가난한 한국 국민’이 우리 앞에 있는 냉엄한 현실인 것이다. 시위에 참여한 미국 시민들이 ‘월가에게 금융규제를, 증세를, 사법처리를’ 구호로 내걸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는 재벌 대기업 집단에게 규제를, 증세를 해야 하고 불법적인 증여 상속 등에 대해 법의 엄정한 집행을 해야 한다. 한국에서도 99% 국민운동이 번질 조짐이다. 99%를 환영한다. 당사자의 행동이야말로 진정한 변화를 열어갈 최후의 대안이기 때문이다. 99% 한국 국민이 저항해야 할 1%는 재벌 대기업집단이며 요구해야 할 핵심구호는 재벌개혁이다. 이 글은 ‘매일노동뉴스’에도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