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언론. 어느 새 그 말은 대다수 사람에게 촌스럽게 다가온다.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낡은 시대의 상투어쯤으로 치부된다. ‘21세기 민족언론의 길’이라는 칼럼 제목을 보며 시들방귀로 넘기는 독자들도 적잖을 성싶다.하지만 나는 오늘 기꺼이 촌스럽고자 한다. 낡은 시대의 상투어에 시퍼렇게 담긴 뜻을 나누고 싶다. 굳이 민족언론을 성찰하는 까닭은 다시 8월15일이 다가와서만은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겨레의 운명이 암담하다 못해 깜깜해서다.찬찬히 짚어보라. 남쪽의 대한민국은 세계 경제대국의 반열에 올라섰다고 자화자찬이 넘쳐나지만 바로 그들이 이상으로 좇는 나라, 미국의 유력 일간지에서 ‘정신병동’으로 묘사되고 있다. 북쪽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곧 이뤄질 듯했던 ‘북미 국교 정상화’가 마냥 늦어지면서 연평도까지 포격하는 군사적 모험주의를 감행하고 있다. 그 남과 그 북 사이에 소통은 꽉 막혀있다.EBS강사·민족21에 들이댄 ‘색깔 공세’명토박아둔다. 남과 북은 새롭게 거듭나야 한다. 오늘을 살고 있는 민족 구성원만이 아니라 겨레의 내일을 위해서도 정신병동과 군사적 모험주의는 반드시 넘어서야 옳다. 바로 그래서다. 그 어느 때보다 민족언론의 시대적 요구는 크다. 하지만 어떤가. 들머리에서 강조했듯이 민족언론, 아니 민족이란 말조차 홀대받고 있다. 더 생게망게한 일은 자칭 ‘민족언론’을 부르대던 신문들이다. 그들은 자기 논리에 갇혀 여전히 남북 갈등을 부추기는 데 눈이 빨갛다. 교육방송(EBS)에서 수능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근현대사를 강의하고 있는 교사에게 조선일보가 저지른 ‘색깔 공세’를 보라. “관점 있는 역사 수업, 눈물을 쏙 빼게 만드는 가슴 뭉클한 멘트로 학생들을 열정의 도가니에 빠뜨린 열정쌤”으로 조선일보 스스로 추어올린 교사를 갑자기 ‘친북 반미세력’으로 몰아가는 작태는 단순히 ‘제 버릇 개 못 준다’ 차원에 그칠 일이 아니다. 교사가 강의한 내용을 앞뒤 문맥을 자르고 자극적으로 기사화 한 뒤 그것이 ‘사실 보도’라고 강변하는 모습은 과연 저들이 민족언론 이전에 언론인가를 묻게 한다. 무엇보다 압권은 월간지 민족21의 전·현직 편집국장에게 ‘간첩의 색깔’을 짙게 덧칠하는 보도다. “민족21, 천안함 폭침 주도한 북 정찰총국의 지령 받아”라는 큼직한 통단 제목 아래 ‘지령체계’를 갖춘 도표와 함께 편집한 자극적 기사에서 조선일보는 민족21 전·현직 편집국장이 일본에서 북의 정찰총국 공작원을 ‘접선’해 지령을 받고 남한에서 수집한 정보를 보고했음을 보여주는 증거자료들을 상당수 확보했다고 썼다. 기사는 또한 “압수물 분석 등 증거확보 작업을 거쳐 북한 정찰총국 공작원과 접촉한 것으로 드러난 민족21 관계자들을 소환조사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어떤가. 올해로 창간 10돌을 맞은 민족21은 남북 언론교류의 새 지평을 연 언론사적 의미를 지닌 월간지다. 만일 민족21이 북의 지령을 받은 ‘간첩’들이 제작한 언론이라면 남과 북의 정보당국자들은 모두 줄줄이 사표를 써야 한다. 남은 10년 동안 민족21의 ‘암약’을 방치해왔다는 점에서, 북은 민족21을 창구로 한 ‘공작’에 무능했다는 점에서 모두 그 자리를 물러나야 옳지 않겠는가. 국가정보원이 민족21을 지난해부터 내사했다는 조선일보 보도는 그 시점에 이명박 정권과 각을 세웠던 발행인 명진 스님이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정치적 탄압의 의혹을 짙게 해준다. 국가정보원의 황당한 수사에 감시를 할 섟에 그들이 흘린 기사에 용춤 추는 조선일보의 모습은 ‘국정원 기관지’라는 명진 스님의 비판이 되레 점잖을 정도다. 교육방송에서 근현대사를 강의한 수능 교사를 ‘친북반미’로 몰아가는 행태와 맞물려 있어 더 그렇다.남과 북의 소통, 언론인이 가야 할 길은‘민족의 웅비’를 들먹여오던 언론이 정작 21세기 두 번째 10년대를 맞아서도 국정원과 으밀아밀 정보를 나누며 다른 언론에 ‘간첩’의 색깔을 물들이는 행태는 결코 일회적 사안이 아니다. 그 신문만 보는 영남 독자들에게 민족21을 비롯한 진보진영은, 풍부한 자료로 근현대사를 가르치는 교사들은 어떻게 비춰지겠는가. 바로 그렇기에 민족21은 한국 사회의 여론 다양성을 위해서라도 꼭 살아남아야 할 월간지다. 그런데 터무니없는 혐의로 이를 말살하려는 권력과 그것을 아무런 부끄럼 없이 받아쓰는 신문을 보면 새삼 겨레의 앞날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 정권이 재생산 가능성이 높고 ‘국정원 기관지’로 비판받은 신문은 종합편성 채널까지 거머쥐고 있기에 더 그렇다.조선일보의 모든 기자들이 저 천박한 야만에 동의하진 않으리라고 나는 믿는다. 더구나 이 땅에는 조선일보만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순간도 진실을 열어가려는 젊은 언론인들이 언론현장 곳곳에서 커나가고 있다는 희망이 있기에 촌스러운 나는 ‘들판’에서 다시 설렘으로 쓴다. 남과 북을 소통하고 그 소통을 남과 북의 겨레들과 나누는 데 앞장서는 길, 21세기 남과 북의 언론인들이 걸어가야 할 그 길을 정성들여 쓴다. 민족언론.이 글은 미디어 오늘에도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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